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장재용
  • 조회 수 1512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21년 3월 16일 18시 11분 등록

둘러갈 것

 

 

히말라야를 걸을 땐 길을 꼭꼭 씹어 삼키며 걷는다. 없는 스텝도 만들어 가며 걷는다. 곧장 내지르지 않고 발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걸어야 한다. 그래야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텝 하나쯤 생략하고 보폭을 크게 하거나 둘러 가는 길을 곁에 두고 곧장 지르는 길을 택하면 잠시 잠깐 느리게 가는 사람을 앞지를 수 있지만 예의 고소증세에 시달리게 된다. 길은 결국 정상에서 만난다. 길은 만나지만 사람은 못 만날 가능성이 높다. 빨리 가려는 사람을 히말라야가 받아준 걸 본 적 없다.

 

길을 질러간다 해서 정상에 이르는 길이 짧아지는 건 아니다. 산은 빨리 오르는 자를 먼저 받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둘러가는 이에게 산은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차로 세 시간이면 가는 길을 능선의 마루금을 걸어서 30일에 가 닿으면 자신이 간 모든 길을 기억하고 말할 수 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이름 모를 풀들과 바람과 얘기하고 눈부신 풍광들을 차곡차곡 쌓아 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깊어진다.

 

사람들은 빨리 가는 얕은 사람보다 느리게 가는 깊은 사람을 좋아한다. 스토리가 없는 삶에 사람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인생의 그늘 하나 없는 사람은 재미없다. 세상에 진실한 두 가지가 있다. 자기 입으로 씹어 삼킨 밥과 자기 발로 걸어간 길이다. 밥은 먹은 만큼 내 몸을 살찌우고 발은 둘러간 만큼 근육을 만든다. 인격 없는 인간이 볼품없는 만큼 근육과 상처 없는 밋밋한 민 다리엔 아무도 업히려 하지 않는다.

 

나선螺線을 기억하라. 소라의 껍질은 휘휘 둘러 끝에 닿는다. 그것이 직선이었더라면 소라는 살아남지 못했을 테다. 꼭 그와 같이 직선의 인간은 안타까운 것이다. 둘러가 본 적 없고 둘러갈 생각이 없는 사람은 어느 장소에서나 어느 주제에 대해서나 할 말 다하는 사람일 텐데 그런 사람은 유머와 반어를 알지 못하는 불행한 자다. 유머를 설명해야 할 때 우리는 허탈하다. 그 사람과는 맥락 있는 얘기를 피한다. 시를 산문으로 고쳐 쓰면 더는 시가 아니게 된다. 시의 입장에서 얼마나 곤혹스럽겠는가. 둘러간다는 것은 행간의 비약과 복선을 품은 삶이다. 논리를 따져 묻거나 논리적 이해의 영역인지 수사학적 전회의 영역인지 알지 못하면 시와 같은 삶은 살지 못한다.

 

조금 사납게 말하면 논리와 합리는 인간을 쓰레기로 만든다. 부드럽게 말하자면 논리와 합리는 사람을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점수, 등수, 기준, 통계 등의 합리성 범주 안에 들어온 자들을 선별하고 구분하는 세계에서는 범주에 더는 들어가지 못한 자들을 필연적으로 차별하거나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배제하고 억압한다. 대학 가야 사람이고 취직해야 인간 되는 세상에서 대학가지 못한(않는) 사람과 취직하지 못하는(않는) 사람들이 당하는 수모를 생각하라. 그들은 조금 둘러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곧장 가는 사람이다. 목적지 도달에만 혈안이 되어 엑셀을 밟는 드라이버는 창밖에 들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먼 산에 지는 해가 얼마나 황홀한지 알지 못한다. 우리 생이 꼭 그와 같으니 죽음으로 곧장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지만 쫓기고 쫓기다 결국 막다른 곳이 무덤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서는 안 될 일이다. 산의 방식은 둘러가는 것이다. 둘러가지만 첨단에 닿는 것이 산의 진심이다. 그러나 빨리 갈 때를 경계하고 높이 오를 때를 두려워하라. 오른 만큼 거칠게 내려서야 하니 아무렇게 핀 봄 꽃들을 보며 서서히 내려서기를 바라거든 지금 잠시 둘러가는 것도 방법이다.



IP *.161.53.174

프로필 이미지
2021.03.20 07:37:01 *.215.153.124

둘러가는 삶,,

산을 오를때도, 직장에서 근무할때도, 가족과 함께 생활 할때도 새겨듣고 실천해야겠습니다.


남미 구스코에 가서도 천천히 천천히 둘러가야 한다고 며칠전에 들었습니다. 고도가 높은 도시라서,,

프로필 이미지
2021.03.20 17:16:38 *.52.45.248

타국에서 말귀를 잘 못 알아듣던 선수들이

가끔 장난 칠 때면 똑바로 바라보는 저에게 지적 받으면 "빨리 빨리" 하면서 도망갔습니다.   

많이 반성하게 하는 글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96 목요편지 -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다 [3] 운제 2019.01.03 696
4195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하라는 부엉이를 받았습니다. [1] 어니언 2023.02.23 696
4194 가족처방전 – 가족은 어떻게 ‘배움의 공동체’가 되었나 [2] 제산 2018.09.10 697
4193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중학생이 법구경을 읽는다고요? 제산 2018.11.19 697
4192 [일상에 스민 문학] - 남북정상회담의 무거움 정재엽 2018.05.02 698
4191 [일상에 스민 문학] 휴가 책 리스트 정재엽 2018.07.24 698
4190 목요편지 - 너무 더운 여름 [1] 운제 2018.08.09 698
4189 목요편지 -그 꽃 운제 2018.11.08 698
4188 영화 다시 보기 [1] 어니언 2023.05.18 698
4187 [라이프충전소] 꿀잠 프로젝트를 가동합니다 [4] 김글리 2022.09.02 699
4186 [수요편지] 자기계발의 본질 [1] 불씨 2023.05.17 699
4185 결심의 과정 [2] 어니언 2023.10.12 699
4184 [일상에 스민 문학] 휴가 책 이야기 2. 정재엽 2018.08.22 700
4183 [수요편지] 위대한 근대인 [2] 장재용 2019.04.03 700
4182 화요편지 - 함께라면 어디라도, '다음 달에는' [1] 종종 2022.05.10 700
4181 목요편지 - 5월의 노래 [2] 운제 2018.05.24 701
4180 [일상에 스민 문학] - 한 청년과의 만남 [4] 정재엽 2018.10.03 701
4179 목요편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운제 2018.12.06 701
4178 [월요편지 97]#따로_또_같이 프로젝트 3월, 두 번째 인생 [1] 습관의 완성 2022.02.27 701
4177 [라이프충전소] 나는 어떤 방식으로 해내는 사람인가 [7] 김글리 2022.04.21 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