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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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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5일 04시 12분 등록
“창박게 부는 바람, 죽음의 시늠소리도 드러쓸 것이고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도 거쳐 왓슬 것이다. 잠 못 이르는 이 밤, 바람에게 마는 사연을 듣는다.”
-홍영녀님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서-


홍영녀님은 포천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칠순에 한글을 배워 주욱 일기를 쓰고 계십니다. 자손들이 팔순 생신 기념으로 일기를 책으로 엮어드렸습니다. 슬하에 6남매를 두었지만,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시는데, 씩씩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로워야 한다.”


할머니의 맏딸 황안나님도 개성있는 분입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땅끝마을에서 군사분계선까지 23일간 도보여행을 했습니다.
어느날 지도를 펴놓고 그저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날이 그날인 생활에서 일탈해보고 싶었답니다. 국토종단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검불에 불붙듯 떠나고 싶은 갈망으로 가슴이 들끓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먼 길을 혼자 떠나려 하는지, 잘 해 낼 수 있을지 의구심도 들었지만, ‘산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자기를 놓아두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했습니다. 그래서 그이는 국토종단을 했고, 자신의 책을 갖게 되었고, 더욱 활기찬 일상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황안나씨의 아들며느리도 자기식대로 살고있습니다.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던 큰아들과, 여성동아 기자로 일하던 며느리가 둘 다 사표를 낸 뒤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전업한 것입니다. 그들은 2003년 9월 결혼 이후, 국내외를 발로 뛰며 10권 가까운 책을 펴냈습니다. 최미선, 신석교라는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초이와 돌다리의 색깔있는 여행’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합니다. 태백산으로 프라하로 싸돌아다니는 그들의 삶이 부러울 뿐입니다. 마흔 살의 노총각인 돌다리와 딸 하나를 둔 재혼인 초이가 만나,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니, 그들은 한국사회의 통념을 이중으로 돌파한 투사인 셈입니다.


다시 홍영녀님의 일기를 봅니다. 할머니의 글을 통해 우리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외로움을 타는, 사람의 정조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아무리 아무리 나그네의 발길이 밥부다 하여도 한번쯤 되도라보소. 가을 익어 물 조코 경치 조은 저 절경을 잠시라도 도라보소. 가을이면 온 산이 울긋불긋 담풍으로 물들고, 이럴 때는 사람의 마음이 새삼 지나간 추억을 되도라볼때요.”


어떠세요. 겨우 쉰 살쯤 되어 눈가에 주름살이 생겼다고 인생이 끝난듯이 굴 것은 없겠지요. 홍영녀할머니의 감수성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배우고 느끼고 의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가족처럼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알록달록하게 수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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