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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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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3일 17시 38분 등록

산의 배반

 

 

인생에 내 세울 수 있는 딴짓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일찍이 까뮈는 ‘인간을 일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모든 것은 희망을 이용한다. 그러므로 단 한 가지 거짓되지 않은 사고는 열매를 기대하지 않는 불모의 사고다. 삶의 가치는 그것의 불모성에 의해 측정된다.’ 고 했다.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할수록 삶의 가치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완벽을 기해야 하는 월급쟁이 회사인간과 딴짓의 대립되는 가치는 이처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은밀하게 보완하고 받쳐주며 나를 속이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고 나는 내 속내를 검증하려 이 글을 쓴다.

 

세계 유수의 일류 혁신기업들이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딴짓을 장려한다는 기사가 많다. 현대 경영은 실제, 업무와 아무런 연관성 없지만,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무한정의 휴식과 딴짓을 통해 이들이 창조적으로 업무에 기여하는 과정과 그 효과성을 검증했고 공간과 시간을 파괴해가며 자발적인 딴짓을 장려하고 있다. 주어진 시간에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주어지지도 않은 시간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내 놓아야 하는 시대적 상황과 맥락이 만든 야만 같다는 생각, 세상은 진화했고 진화하는 중인가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는다. 마치 그것은 오래된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 같기 때문이다.

 

지배자는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 물음의 진의는 어떻게 하면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통치 당하게 만들까와 같은데 역사적으로 아주 긴 시간을 인간은 이 지배의 논리와 메커니즘을 고민해왔다. 15세기까지 세상의 중심이 신과 신앙이었던 시대부터 오늘날 기업 경영에 이르기까지 이 맥락은 다르지 않다.

 

반면 피지배자는 지배로부터 저항하고 반항하는 방식과 논리를 만들어내며 지배의 논리를 깨뜨리고 벗어나려 하지만 깨뜨리려는 노력 자체가 사실 지배의 지배를 위한 길이므로 지배와 피지배는 길항하며 쌍을 이루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자신의 존재를 바로 세우는 역설로 나아간다. 마치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맥놀이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모던이라 명명된 것들은 포스트모던으로 덮이고 포스트모던은 대항하는 포스트모던의 출현으로 다시 모던이 되는 것처럼. 자신의 꼬리를 물어 삼키는 뱀의 아가리, 고대 신화의 우로보로스(Ouroboros)적 자기모순을 안고 무한으로 순환하는 세계의 비유다. 이렇게 반대되고 또 상반되는 것들이 서로를 도와 가며 암약하는 모순의 월급쟁이 삶을 정확하게 겨냥해 놀리고 있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강요된 자발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경우엔 가차 없다. 사실 그들이 허용한 자율은 자율이 아닌 것이다. 성과를 내면 상을 주며 칭찬하고, 승진시키고 보너스와 인센티브를 듬뿍 안기는 일 자체가 완벽한 지배를 꿈꾸는 지배의 메커니즘이다. 15세기 유럽, 종교적 지배를 위한 사목(司牧)통치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살면서 가장 많이 한 일은 등산과 주간업무보고다. 등반이라는 글자 끝에 조심스럽게 가家를 붙이고 싶어 한다. 이 지랄 맞은 삶을 아름답게 하는 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간댕이라 여겨 직장인 신분으로 어찌하여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Mt. Everest, 8,848m) 정상에 올랐고 내친김에 북미최고봉 데날리(Mt. Denali, 6,194m) 정상에 다녀온 적이 있다. 분명 내 딴짓은 월급쟁이 삶에 큰 위협이었다. 그러나 오늘 물어야 한다. 혹시, 혹시라도 나의 산이 월급쟁이라는 뼈아픈 사실을 붙잡도록 만든 배후는 아니었을까? 회사인간은 언젠가 나와 무관해질 정체성이라 떠벌리고 다녔지만 악취나는 그 정체성을 아직도 꼭 붙들고 놓지 않는 이유를 나는 어쩌면 산에게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IP *.161.5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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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7 08:03:23 *.169.176.67

늘 보편적이지 않은 생각,  그리고 오늘은 글을 읽으면서 '대립하는 것은 상호보완한다'는 음양의 이론적 근거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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