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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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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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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3일 11시 08분 등록

이번 주 금요일에 호* 화방 가는 거다!”

, 그렇게 좋아?”

그럼, 갖고 싶은 그림도구들이 꽉 차 있잖아. 도구들을 보고 있으면 그리고 싶은 그림들이 막 생각나거든.”

 

한강 밤바람을 맞으며 나누는 모녀의 대화는 정겹기만 했다. 재잘대는 아이의 행복한 표정이 어찌 사랑스럽던지, 나도 모르게 ,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이쁠 수가 있어?’라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제 앞가림도 서툰 엄마가 어린 아이 둘을 돌보느라 도무지 몸 움직일 짬이 나지 않던 시절, 어떻게든 운동할 시간을 만들어보겠다고 유모차를 밀고 오가던 길을 유모차 안에 누워있던 아이와 함께 걷고 있는 이 시간이 꿈만 같았다.

 

올해로 열세 살이 된 딸아이와 밤 산책을 하게 된 것은 두 달쯤 전부터였다. 코로나로 다니던 수영장을 그만둔 이후 도무지 몸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던 딸아이가 별안간 엄마랑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 교복을 입기 전에 살을 빼고 싶어졌다나. 그렇지 않아도 몸 쓰는 기쁨을 전하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던 참이었으니 옳다구나 싶었다. 물론 내 수련과 아이의 운동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싶은 욕심에 같이 요가를 하자고 꼬셔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선택한 것은 걷기였다. 그것도 내가 요가를 가던 밤 시간에. 살짝 당황했으나 요가를 그리 정성스럽게 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에게 운동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음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요가 수련시간을 옮기고 아이의 밤산책에 동행하기 시작했다. 내 입장에서 산책은 메인 수련인 요가 후 아이와 함께 즐기는 가벼운 몸풀기같은 느낌이었던 거다.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일은 전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하게 걷기에 재미를 붙인 아이의 욕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처음에는 집 앞 근린공원을 가볍게 산책하며 한 시간을 채 넘지 않던 걷기가 산책코스를 한강으로 바꾸면서 나갔다하면 만보는 기본에, 이만보를 넘어 삼만보까지 이어지기가 일쑤였다. 엄마랑 걷는 게 너무너무 재미있기만 하다는 딸아이와는 달리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엄마랑 하면 뭘 해도 너무나 재미있어! 엄마, 나 영어공부도 엄마랑 같이 하고 싶어. 일본어도 가르쳐줄 수 있지? 친구들은 벌써 공부가 지긋지긋하다는데 나는 지금까지 잘 놀아서 그런가 배우고 싶은 게 진짜 많아. 다 엄마랑 하고 싶어!”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 틀림없었다.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 안달난 열 세 살이라니! 이런 아이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문제는 체력과 시간이었다. 아이의 산책에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그리 좋아하던 요가 수련을 포기해야했다


꼭 매트 위에서 해야 수련인가? 걷기 명상한다 치면 되지. 그게 진짜 요가지달래고 또 달래보지만 고요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잃어버린 일상은 자꾸만 버스럭거린다. ‘어차피 나도 언젠가는 좀 더 해보고 싶었던 영어공분데 이참에 기회를 얻었다 셈 치지, . 일본어도 가물가물하기는 하지만 아이가 하고 싶다는 데 그걸 못 가르치겠어?’ 추스르고 추스르지만 아무리 셈해봐도 오래 기다려왔던 새로운 일들을 위한 시간을 허물어내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 앞에 자꾸만 서러움이 스물스물 차오르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지. 아직은 더 기다려야하는 모양이지. 엄마랑 하고 싶은 것들이 다 끝나면 그때는 엄마랑 놀자고 해도 싫다고 할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는 여기서 내게 주어진 아이와의 시간을 누려봐야지.’ 그렇게 마음을 비워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어쩐 일인지 몸도 마음도 자꾸만 무거워져만 갔다.

 

그런데 엄마, 벌써 이번 주지? 엄마 요가수업!”

? 그러네!”

 

어쩌면 이리 까맣게 잊을 수 있을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 금요일날 화방에 가기 어렵겠는 걸. 첫 수업이라 그 전날엔 찬찬히 준비를 해야할 것 같거든.”

 

바보같이 눈물이 핑 돌았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그리 정성을 다해 준비하던 수업날짜를 잊었을까? 이런 내가 하고 싶던 것들을 다시 다 접고 엄마로서만 살아내는 것은 과연 가능한 걸까?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하고 있는 걸까? ‘사랑을 명분으로 스스로에게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내가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사랑이란 과연 건강한 걸까? 애써 외면하던 질문들이 여전히 매섭기만 한 강바람처럼 나를 두드려댔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걷는 중, 먼저 말문을 튼 것은 딸이었다.

 

나는 괜찮아. 화방은 엄마 수업 끝나고 가면 되지, . 나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조금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없잖아.”

서영아, 서영이가 엄마랑 있는 시간을 좋아해줘서,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을 정확히 말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엄마도 너랑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고. 그런데 말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영이가 하고 싶다는 걸 다 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할 수 없는 거라 미안해하지는 않을 거야. 대신 너에게 꼭 필요한 데 엄마가 할 수 없는 것은 같이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 하고 싶은 일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다. 덕분에 내내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하던 뒤늦은 엄마표 영어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고, 밤산책은 한 시간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하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아빠와 긴 산책을 하자는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열세 살은 아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없는 엄마를 온전히 소화하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이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이란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 최선임을 믿는 힘이라는 것을. 그래서 사랑이 깊어질수록 자책이나 죄책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못한 것은 자책이나 죄책감의 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다.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할 수 있는 것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여기에 비법은 없다. 하나씩 하나씩 탐구하고 실험하며 자신의 경계를 살펴가는 수 밖에 없다. 탐험을 통해 자신의 경계를 확인하고 나면 또 하나의 시험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렇게 천천히 작게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는 조바심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 우리에게는 다시 한 번 선택지가 주어진다. 하나는 조바심을 단숨에 해소시켜줄 비법이나 지름길을 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많은 시간을 이 허망한 지름길 찾기에 허비한다.) 남은 길은 사랑이란 내게 허락된 만큼이 최선임을 믿는 힘임을 기억해내고 주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그 일에 집중하는 수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넘어지고 넘어져도 거듭 일어나 또 그 자리에서 주어진 그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나 역시 아직 초보 수련자라 틈만 나면 조바심에 휘청이며 비법을 찾아 두리번대곤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것이 사랑의 수련임을 알지도 못한 채 매트위에서 보냈던 오랜 시간 덕에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충분함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덕분에 조금 더 수월히 비법 찾기의 허망한 유혹을 알아채고 수련의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지난 11월부터 5개월 남짓 바로 이 작은 지혜를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요가 안내자로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을 시작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또 한번 나의 경계를 탐험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간절함만큼 치열했던 모색의 시간들 덕분에 이제 요가 안내자로서, 17, 13살 남매를 키우는 엄마로서 어디쯤이 나에게 가장 친절한 자리인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제 당분간은 고요히 그 자리에 머물며 바로 이 지점을 선택했기에 내게 찾아와 줄 수많은 기쁨들을 누리는 일에 집중해보려 한다. 그것이 때로는 고통과 괴로움의 옷을 입고 올 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게 온 그것이 내게 필요한 최선임을 의심하지 않는 수련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사랑을 배우고 익혀 나누며 사는 존재로 익어가는 것이 한 생명체로서도, 엄마로서도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믿는 새로운 아사나(자세)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매트 위에서도, 일상에서도!

IP *.140.208.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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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8 07:59:50 *.52.254.111

좋은 엄마이시군요 ! 

 제가 선수를 가르치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는 데,  그것은 ' 선수는 훈련을 하고 약속을 지킬 것' 입니다.  '그것이 최고가 되는 유일한 길이다  ' 라고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실성과 함께 지키지 못할 약속, 지나치게 많은 약속은 아예 하지 않는게 좋죠, 지키기 어려우니까요,  

프로필 이미지
2021.04.08 09:39:13 *.70.30.151

꼭 필요한 약속을 지키는 훈련!! 

그리 살 수 있는 사람이,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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