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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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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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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2일 17시 58분 등록

틀려도 괜찮다 잘하고 있으니 너무 애쓰지 마라

 

오늘 저녁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딸의 대답은 늘 명확하고 똑 부러진다. 반면 아들의 답은 유보적이거나 우유부단하다. 성격 탓이겠다. 어디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도 둘의 대답은 마찬가지다. 한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이라도 이렇게 다르다. 일요일, 한가한 오후 3, 너의 의견을 가지라는 지청구를 놓고 돌아섰지만 해주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틀려도 괜찮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부족하면 배우면 된다, 잘하고 있으니 너무 애쓰지 마라. 돌아서던 차에 느닷없이 질문은 내게로 향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떤 인간인가, 너는 너의 의견을 가지고 있나 의문이 들었다. 낯선 질문도 아니었고 처음 던져본 질문도 아닌데 마음의 방향이 나로 향할 땐 언제나 당황스럽다.

 

르네 데카르트는 17세기 사람이다. 세계의 변하지 않는 확실성과 명증성을 좇아 전 생을 바친 사람이다. 수학이라는 확고부동함을 접한 이후 합리적이고 딱 떨어지는 수학적 모델을 자신의 내면연구를 위해 사용했는데 방법서설성찰은 그의 신앙에 가까운 확실성 페티쉬의 결과다. 나도 그에게서 배운 방법을 써먹어 본다.

 

태어난 직후 나는 내 의지선택과는 무관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가족, 국가, 동네, 학교, 친구. 그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그 사건 각각에 대처하며 선택했던 내 행위들이 나를 만들어 갔을 테다. 내가 맞닥뜨린 상황과 사건들의 총체는 가 되었다. 또한 그것이 앞으로의 나를 이끌어가는 관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든다. 상황과 사건들이 나를 이루었다면 나는 내 안에서 오로지 나만 가질 수 있는 틀림없는 것이라는 게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상황과 사건들은 나만의 고유한 것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법한 사회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동시대인들에게 주어진 같은 환경이니 내 고유한 것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내가 했던 모든 종류의 공부가 얼마나 내가 되었고, 내 행동에까지 스며들었을까? 나는 무엇으로 구축되어 있고 나에게 속해 있는 것들 중에 틀림없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끝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의 바깥에서도 나일수 있는가? 나는 내 안에서 인가? 내 의지라고 말하는 것들이 나의 의지가 맞는가? 나는 나조차 기만하는 상황과 사건들의 나가 아닌가? 그것들을 벗어난 나를 찾을 수 있는가?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또 시작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Evil is privation of good’, 악은 선의 결여라고 말했을 때 악은 그 오리진을 상실한다. 세상은 선으로 덮여 있고 선이 충만하지 않은 것들이 점점 악으로 기우는 식이다. 상황과 사건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그 상황과 사건들이 나라는 존재까지 정의한다면 그것들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과정이 나로 들어가는 길일 텐데 이때 선은 포장된 나이고 악은 포장이 뜯겨진 나다. 결국 나를 찾으려면 악으로 악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세상의 악을 드러내는 일이다. 아무래도 나는 악이다.

 

그러고보니 이제껏 나는 나의 눈으로 나를 본적이 없다는 무서운 결론에 이른다. 나는 나를 억압하는 자들의 눈으로 세상을 봐왔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지배 메커니즘의 비밀이기도 하다. 피지배자들은 지배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피지배 상태가 유지된다. 이를테면 주인의식을 강요하는 회사의 시선을 다시 생각해 보자.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피지배 상태의 직원들의 눈을 지배자인 주주, 사장의 시선으로 갈아 끼우는 작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공고하게 하거나 유지시킨다. 부단한 교육과 조직 문화라는 집단적 최면을 이용해 사람들은 지배질서 아래로 속속 예속됐다.

 

그들의 예속은 사실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기업에 예속되지 않으면 살 길이 없고 노동을 제공하지 않고선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으로 주인의식이 함양됐는지 모른다. 혹은 제대로 알았더라도, 이익을 신봉하는 집단에서 개인에게 강요하는 협박임을 알고 있더라도 그 일 외에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갈 수 없으므로 알면서도 억지로 주인의식을 머리 속에 집어넣었는지도 모른다. 억압하는 자들의 눈으로 더는 세상을 보지 않지만, 억압하는 자의 지배 아래로 예속된 한 개인이 느끼는 삶의 부조리를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도대체가 지루한 시간을 축내며 시시한 일을 하지 않고서는 살 길이 없다.

 

그러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자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때 자유라는 것은 억압의 부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압은 자유다라고 말한 시인 이성복의 말은 옳다. 억압할 게 없어진 억압이 자유를 얻는다. 그래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안다. 무엇으로부터 놓여난다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속박의 반대는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죽음과 같은 형이상학의 고유명사에서나 존재한다. 산다는 것, 먹고 그 먹은 걸 싸질러야 하는 동물성이 지배하는 조건의 세계에서는 자유, 해방, 죽음 같은 형이상학적인 말들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안다. 혹 그 천상의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하거나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왔을 때는어느 날 죽음이 나비 날개보다 더 가벼운 내 등허리에 오래 녹슬지 않는 핀을 꽂는 때일 테니. 억압은 내가 등에 업고 가야 할 배낭 같은 것, 내렸다가 둘러멨다가 무겁다가 가볍다가 결국 무게가 사라지는 부조리.

 

사는 건 어렵다. 먹고 사는 문제는 테스형 할배가 와도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하는 나의 문제일 텐데 누가 나에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사는 건틀려도 괜찮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부족하면 배우면 된다, 잘하고 있으니 너무 애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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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8 04:02:55 *.9.140.150

저의 짦은 소견으로 삶은 종합 선물 셋트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여러 부품들이 관계와 역할에 따라 질서를 형성하고 시간을 알려주는 옛날 탁상시계와 같은 시간을 알려주는 플러스 알파가 있는 통합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삶은 개인의 성향과 환경 그리도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관계와 비중에 따라 각각 다른 성향(개성)으로 나타나고 재구성되고 재해석되면 발전한다고 봅니다.   

저의 관심은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받는 그런 부사나 형용사가 붙는 내용보다는  보다 더 본질적인 것에 충실합니다. 

좋은 날씨가 있는 것이 아니고 좋은 날씨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는 것이고, 옳은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라 옳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그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는 것, 먹고, 싸고, 자고, 숨쉬는 것, 

그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그산은 그산이 아니고 그 물은 그물이 아니며 그래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그말대로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지만 현혹되지 않고 크게 고통받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자유로워지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지 않죠,  신(神), 곧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사람으로 부르죠.  

 삶속에서 끝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뜻을 세우고 꾸준히 생각한다면 

그것은 잡념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믿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본능이 아니며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삶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인간최고의 정신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과 목적지를 알려주는 길이 되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님은 자신의 삶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으신지요? 매일의 한 걸음은 그 믿음 실천의 한 걸음인지요?

맞고 틀리고나  잘하고 못하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것, 말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곧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  

님으로부터 많은 배움이 있어 위로가 됐으면 해서 용기를 내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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