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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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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7일 07시 28분 등록

요새 잡초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사실 절벽이며, 바위 틈새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라나는 잡초를 보며 그 생명력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잡초의 생존전략

 

식물들은 저마다 생존전략이 갖고 있습니다. 잡초의 기본 생존 전략은 ‘바꿀 수 있는 건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건 바꾸지 않는다’입니다. 잡초는 약한 식물입니다. 특히나 잡초는 경쟁에 매우 약한데요, 때문에 다른 식물이 자라지 않는 곳을 골라서 자랍니다. 약하기 때문에 환경을 바꾸는 건 언감생심입니다. 대신, 자신을 자유자재로 바꿉니다.

 

그 예로 국화과 잡초인 ‘망초’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망초는 원래 가을에 싹을 틔우고 봄부터 여름에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장소와 때가 자신의 리듬에 걸맞지 않으면, 자기 리듬을 바꿉니다. 봄과 여름에 발아해 몇 주 동안 재빨리 성장했다가, 바로 꽃을 피워버리는 식으로요. 이처럼 잡초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자신의 리듬과 특성마저 조정해버립니다. 이를 두고 ‘가소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가소성이 크다는 건 변화에 능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대상을 구분하고 특징을 정의하면서 사물을 이해하는 존재입니다만, 잡초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잡초는 가소성이 크기 때문에 특정한 분류로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원래 한해살이 잡초였지만 때에 따라 여러해살이 잡초로 바꾼다든가, 꽃이 피는 계절 자체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분류를 뛰어넘습니다.  ‘나는 한해살이니까 이렇게 해야해’라는 게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크기도, 생활패턴도, 자라는 방법까지 자유자재로 바꿔버립니다. 

 

어떻게 잡초는 이렇게 유연할 수 있을까요? 

 

일본의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의 이러한 유연함은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식물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꽃을 피워 씨앗을 남기는 일입니다. 잡초는 모든 것을 다 바꿔도 이부분만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채소나 꽃은 환경에 따라 씨앗을 남기지 않고 죽어버리기도 하지만 잡초는 그렇지 않습니다. 잡초는 어떤 환경에서든 최대한 활약해 씨앗을 남깁니다. 결국 잡초가 이렇게 유연할 수 있는 건 '씨앗을 남긴다'는 목적을 잊지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잡초의 특징을 보면서 중국의 명장 ‘한신’이 생각났습니다. 한신은 젊은 시절 시정잡배의 가랑이로 기어들어간 인물로, 한때 겁쟁이의 대명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신경쓰지 않았고, 순간의 모욕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립니다. 그에겐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그는 하찮은 시정잡배에 불과했지만, 나중에 한고조 '유방'에 합류해 백전백승의 천재전략가로 거듭납니다. 무수한 공을 세우고 대장군에 임명되지요.  한신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작은 모욕이나 다른 사람의 말, 시선쯤은 그대로 넘겼던 겁니다. 

  

이처럼 뭐가 정말 중요한지 아는 존재들은 대범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소소한 것들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우 유연합니다. 그들은 하나의 방법이나 이론만을 맹신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방법 자체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적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길이든, 어떤 방법을 택하든 괜찮습니다. 대체로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자들이 특정 방법에 매달리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얽매이죠.   

 

모든 걸 바꿔도 결코 변치 않는 단 하나

 

세계적 경영석학인 '짐 콜린스'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의 특성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꼽았습니다. 20세기 대표 천재화가로 꼽히는 파블로 피카소나, 180년동안 명품 중의 명품 브랜드로 자리를 지켜온 에르메스 모두 자기분야 최고의 브랜드들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속에서 모든 걸 바꿔도 이들은 바꾸지 않는 딱 하나가 있었습니다.

 

피카소는 끊임없이 화풍을 바꾸며 혁신의 대명사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5살때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20대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에서 당대 화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확립하는 데 힘썼습니다. 이후 신고전주의, 후기인상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 끊임없이 화풍을 바꾸고 스스로의 틀을 깨나갑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표현한다"는 그도 바꾸지 않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 그 너머의 본질을 담겠다'는 자신의 철학이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낯설고 괴이하다'는 비난과 조롱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자신의 철학을 끝까지 고수합니다. 피카소는 생애 가장 성공한 화가였고 이후에도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구용품을 만들었던 에르메스는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마구사업이 존폐기로에 섰을 때 여행용 가방, 시계, 주얼리, 스카프 등 새로운 제품을 만들며 끊임없이 혁신해왔습니다. 계속되는 도전에도 그들이 바꾸지 않았던 단 하나는 '장인정신'이었습니다. 최고급 가죽을 다루던 그들만의 노하우를 살려 다른 제품에도 적용한 것이지요. 에르메스는 철저한 가죽관리와 한땀 한땀 섬세하고 정밀한 박음질, 빈틈없는 내구성으로 유명한데요. 이는 6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 에르메스가 명품으로 자리매김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한국소비자포럼 전재호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는 위대한 브랜드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않는 자기다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사상가 나카에 우시키치는 "인간은 각자 지켜야 할 원칙을 한두 가지만 가지면 된다. 다른 것들은 재깍 재깍 타협하라."라고 조언합니다. 지켜야할 것만 지키고 나머진 좀 놓아주라는 말이지요. 잡초를 보며, 한신을 떠올리며, 또 피카소와 에르메스를 보며 ‘내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모든 걸 다 바꿔도, 바꾸지 않을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결국 이에 대한 답이 나의 가치를 대변해주겠지요.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연연해 하고 있는 건 뭔지,

한번 돌아볼 때입니다.  



참고: 

책 <전략가, 잡초> (이나가키 히데히로) 

나무위키 ‘한신’

신문 <변치않는 자기다움… 일등 상품은 달랐다>, 한국경제, 2021.08.30, 이고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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