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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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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5일 18시 15분 등록

산의 영혼

(프랭크 스마이드, 1900~1949)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야금야금 찔끔찔끔 이 책을 읽었다. 덕분에 책 읽는 출근길 삼십 분만큼은 산에 있었는데 바로 옆을 지나는 오토바이 굉음도 들리지 않았고 수시로 울리는 경적소리도 잡아 줬으니 고성능 블루투스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탑재된 책이었나 싶다. 까치출판사 만큼이나 난삽한 표지 디자인에 동서문화사의 멋없는 단순함까지 더해져 저 안에 산의 영혼이 깃들었을까, 책을 잡아든 순간 처음 1초간 생각했었다. 1초도 길었다. 우려는 머리말에서부터 깨끗하게 사라졌다. (오해 없으시길, 나는 까치출판사와 동서문화사의 책들을 사랑한다)

 

등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발견의 문제고 언어로 풀어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기꺼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머리말에 새겨 놓은 저자의 다짐. 왜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에는 살짝 비켜서면서도 등산이라는 오름 짓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인간의 능력을 창조주와 같은 위치에까지 상승시킨다는 20세기 초의 오만한 근대 유럽인의 사고가 엿보이기도 했는데 등산을 최종적이고 필연적인 인간 활동의 계기로 본 것에서 헤겔의 향기도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것 또한 기우였다. 20세기 초 영국사람, 나라를 대표해 국제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를 경쟁적으로 정복하던 일이 민족과 국가의 외교적 힘이라 생각했던 때 그는 등반을 둘러싼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일갈하며 나쁜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고 우려한다. 1, 2차 세계 대전을 목도하며 등산마저 싸움터로 바뀌는 세태에 기록경신이나 경쟁심 외에는 다른 동기가 전혀 없이 서둘러 히말라야를 오르는 행위를 살인에 버금가는 위험이라 경고하며 온전한 정신을 되찾기를 바랐다.

 

산에는 분석을 거부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그것이 산의 영혼이다.’ 20세기 초 등산의 경향은 정복이었다. 한 번도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봉우리를 서로 먼저 오르겠노라 나서면서 산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손쉽게 등반하기 위해 오르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도 했던 시기에 그는 산을 정복해 나가는 유럽인이기를 거부했다. 대신 고생스럽고 멋진 하루의 모험, 언덕을 뛰어내려오면 다시 꽃에 둘러싸인 캠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적란운들 사이로 웅덩이처럼 나타나는 새파란 하늘, 초원의 꽃들로 쏟아지는 햇빛을 사랑하는 소박한 등산가로 남기를 원했다.

 

책의 마지막에 유언처럼 새긴 문장에 나는 죽은 지 70년이 넘은 한 남자가 내 옆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얼굴은 엄숙한 한 사람, 히말라야 등반을 마치고 갓 돌아와 까매진 입술에 너덜너덜해진 저고리 밑에서 성실함 용감한 자의 마음이 고동치는 전진하는 자, 동지애와 모험심으로 둘러싸인 한 인격이 내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고 말했다.

 

나는 터벅터벅 산으로 걸어가기에 충분할 만큼의 기운밖에는 요구하지 않겠다. 나는 높은 산 밑에서 물끄러미 올려다볼 수 있는 계곡 정도에서 스스로 만족해야만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소나무에서는 늘 맡았던 향기가 날 것이고 꽃들은 전처럼 신선하고 화려할 것이며 개울은 변함없이 같은 노래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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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8 14:42:48 *.52.254.242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지도자들과 경쟁하면서 느끼던 그 벼랑끝에 선 느낌,

 

온밤을 새우고 또 새며 수 백 만 번이 넘는 반복훈련, 그리고 더 나은 결과가 없다면 이 번에 타는 유럽행 비행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비장함,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을 하고 결코 밀려서 천길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그 굴하지 않는 온 몸과 마음의 열정으로 벼랑 너머로 몸을 날려 벼랑의 틈새에 칼을 꽂고 다시 솟아 오르는 그 순간에 저는 신과 만났었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한다해도, 30분의 1, 한순간의 판단, 한 낱의 사소한 부상만으로도 모든 것은 끝이나는 상황 앞에서

 

그러한 의지와 열정의 인간적인 노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그렇게 일 초가 천년같은 시간과 영원히 멈추어 버린 것만 같은 공간이 있는 그 순간을 넘어 불가능한 결과에 이르지만 

자랑과 긍지보다는 감사와 겸허를 온 몸으로 느낄 때, 어디선가 환청처럼 들려 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 하나이면서 전부다


돌아보는 그 순간에 환상처럼  미소지으며 다가오는 신을 만났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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