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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일 01시 59분 등록
흑산도 푸른 바다와 파도를 안고 지금 막 돌아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음력설 즈음에 봄바람 불기 시작하면 어딘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봄 2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한 일이 두 달 남짓 남도를 떠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유의 바람이 뼈 속에 박힌 직장인을 녹여내기 시작했었지요. 그때 3가지 결심을 했었습니다.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한 자유의 시간을 넘치도록 향유할 것이다. 그리고 내 본업을 통해 기여하고 나를 다 쓰고 떠날 것이다. ” 이것이 배낭을 지고 떠도는 동안 내 머리와 가슴을 스쳐가는 매운 바람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 바람의 맛을 안 것 같습니다. 왜 봄이 되면 그렇게 바람이 몰아치는 지도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언 것을 녹이는 데는 바람이 최고입니다.

다시 7년이 지나 그 여행의 한 자락을 다시 음미했습니다. 흑산도 일주도로를 따라 오른 쪽으로 쪽빛 바다를 끼고 산을 오르내리며 춤추듯 펼쳐진 그 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내 곁에 오랜 벗 한 사람이 함께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만나 40년 동안 삶을 같이해 온 사람입니다.

우리는 선착장이 있는 흑산도 예리항의 산 넘어 맞은 편 쯤에 있는 사리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다산 선생의 형님 되시는 손암 정약전 선생이 머물던 초가집이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고 그 건너편에 작은 분교가 하나 있습니다. 재작년까지 학생들이 아홉이었는데 많이 졸업해 떠나고 지난해에는 겨우 전교생이 네 명이었다 합니다. 선생님은 두 분이고, 행정일을 보는 분이 또 한 명이 있다합니다.

흑산도 선착장이 있는 예리 마을 다음으로 큰 마을이지만 젊은이들은 떠나가고 이제는 빈 집이 즐비한 마을이 되었다 합니다. 우리가 묵은 집도 세 남매들이 다 뭍으로 떠나고 이제 나이 들어 노인이 되어 가는 내외만 살고 있었습니다. 섬의 격리와 노인의 외로움이 얼굴 가득합니다.

아침이 되어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동쪽 바다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올라 넘실댈 때 우리는 산 중턱에서 그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세 번 만세를 불렀습니다. 삼일절이었으니까요. 다시 한 시간 남짓 걸어가자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배지임을 알리는 비가 하나 나왔습니다. 이 꼿꼿한 선비의 이름을 들으면 풀 먹여 다려놓은 빳빳한 깃이 목 줄기에 사각거리며 닿는 기분입니다. 잘 살아라. 예, 선생님.

바다를 보고 온 날은 가슴 속에 푸른 것이 남아 있습니다. 바다는 낮아 늘 굽어보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가서 보면 늘 바다는 우리의 눈높이만큼 올라와 가득 차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쌓아놓은 위대한 업적이 바로 푸른 바다입니다. 바다를 보면 푸른 기운이 뻥하고 막힌 구멍을 뚫어 놓듯 시원합니다. 첫 봄에 흑산도 푸른 바다를 선사합니다.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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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02 10:45:35 *.115.160.91
서해의 남단 대흑산도는 가거도, 태도(상태. 중태. 하태도의 3개섬), 홍도, 그리고 만재도를 그느린다. 그 중 가거도(옛날에는 소흑산도라 불리었다)에서 파도가 없는 조용한 날에는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들 한다.

가거도는 험한 파도와 억센 산이 어우러진 절해의 고도이다.
"언젠가 선생님과 함께 한국의 제일 먼섬 소흑산도 여행도 해야 겠습니다."
산과 사냥, 바다와 낚시는 인간이 처음 삶을 영위 할 때부터 생긴 경제적인 활동입니다. 마음도 녹이면서 엄청 큰고기의 당기는 맛도 함께 하실 것입니다.
물속과 물밖의 사투를 느끼면서 변화경영의 진수를 한번 더 깨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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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7.03.02 11:32:59 *.155.113.171
소장님, 봄을 타시는군요? ^^
바다를 보고 다시 처음 마음이 되어 살짝 들뜬 모습이 보기좋습니다. 저도 이 봄이 가기 전에 흑산도에 가서 만세삼창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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