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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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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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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7일 07시 44분 등록

 

지나간 시간은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재미있고 인상깊은 장면들만 생각나고, 지루했던 일상들은 잘 기억나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삶이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기를 바라지만 그런 장면은 적고, 대개는 일상의 반복입니다.  ‘영화는 지루한 부분이 컷트(Cut) 된 인생’이라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표현은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런데 온통 지루한 장면으로만 상영되는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요?

 

음성 꽃동네에 1박2일로 다녀왔습니다.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을 대상으로 가톨릭병원의 가치와 사명을 되돌아보게 하는 봉사체험 교육입니다. 꽃동네는 사회복지시설로 장애인, 부랑자, 행려자, 부모 없는 신생아 등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버림받고 상처입은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그들에게는 험한 산과 강을 넘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밥을 먹는 것이 엄청난 일입니다. 그 많은 인원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힘들게 식사를 하고, 식사 정리를 하고 나면 또다시 끼니 때가 됩니다. 밥은 먹고 사는지 안부를 묻는 일의 소중함이 이곳만큼 절실한 곳은 없습니다. 하루 세끼를 먹는 일에 하루의 전부를 쏟아야 하는, 똑같은 장면들이 일년 내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지루한 장면이 365일 무한반복되는, 그 생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자문하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봉사체험을 정리하며 ‘모든 생명에는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답을 주십니다. 불편하지 않은 이들의 눈에 지루해 보이는 그 일상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한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고귀한 증거의 현장입니다. 또한 꽃동네 곳곳에 적혀 있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은총' 이라는 말의 의미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대단하고 커다란 의미를 찾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저녁에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장애체험 및 죽음과 부활의 체험입니다. 참가자들은 하반신마비, 시각장애 등의 장애체험을 하고는 유서를 쓰고 관에 누워 자신의 죽음을 미리 경험합니다. 어두운 방에 놓인 관에 들어가 눕자, 곧 문이 덮히고 망치로 탕탕탕~ 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고무망치지만, 매우 실감납니다.) 관 속에 누워있을 때는, 가족과 지인에 대한 애틋함, 서운함, 그리움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엄습해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줄기 굵은 눈물이 흐른 것은, 삶에 대한 진한 애정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저는 한 가지 결심을 하고 나왔습니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두 사람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너는 죽은 뒤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고 질문했다. 물론 제대로 대답하는 학생이 없었다. 선생님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도 너희들이 대답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50 세가 될 때까지도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건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피터 드러커’는 13세 때 들은 이 말을 죽을 때까지 화두로 삼았습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그를 가르쳤던 필리글러 신부입니다. 드러커는 “나는 사람들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자신의 책을 통해 그 질문에 답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많은 자기계발 서적들은 드러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테니스 신동이었던 ‘안드레아 예거’입니다. 1980년 15세 나이로 윔블던 역사에 최연소 선수였던 안드레아 예거는, 성공과 명예를 누렸지만 부상과 탈진으로 대중으로부터 멀어집니다. 테니스 신동 시절, 그는 여러나라 병원을 돌며 병든 아이들과 인연을 갖게 됩니다. 그후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불치병에 걸린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바로 콜로라도의 목장으로 데려와서, 일주일씩 병실 밖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2001년 안드레아는 TV 인터뷰를 통해 “당신은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즉시 대답합니다.

“나는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실제로 그런 기분이 들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지만, 죽음이란 결국 ‘기억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삶의 끝에서 가져갈 것이 기억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한 나의 죽음은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저장되는 것이니, 어떤 기억을 가져가고 남길 것인지는 결국 각자의 몫입니다. 피터 드러커처럼 내가 원했던 기억을 가져갈 수도 있고, 안드레아 예거처럼 내가 기억되지 않는 삶으로 남기를 원할 수도 있겠지요. 생각해보니, 지금 이 곳은 훗날 어떤 기억을 가지고 가게 될지를 결정하는, 미래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곳이군요.

 

꽃동네에 계신 분들은 천차만별입니다. 더할 나위 없는 치유의 공간이지만, 대부분 말이 없고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사랑의 결핍은 깊은 내상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쪽 눈은 보이지 않고, 왼쪽 다리를 쓰지 못하시던 할머니 한분이 떠오릅니다. 가족에게 버려져 30년이 넘게 꽃동네에서 살아왔으니, 아마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실 것입니다. 할머니는 저와 마주칠 때마다 밝고 화사한 표정으로 먼저 말하셨습니다.

“이곳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관 속에서 했던 작은 결심 하나와 할머니의 낭낭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저의 ‘미래의 기억’입니다.

월요일 아침! 좋은 기억으로 하루를 채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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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11:12:17 *.42.252.67

관 속에서 한 작은 결심 하나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그 작은 결심을 풀어나가며 다짐하는 당신의 결심이 다른 사람들의 두 예문보다

 

마음에 다가왔을 것 같은데.....

 

평범한 하루가 가장 행복한 하루임을 알면서 늘 무언가 거창한 것을 기다리는

 

나를 다시 반성해 보는 하루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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