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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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주 전 쯤에 내가 자주 이용하는 세탁소가 프로모션을 했습니다. “겨울옷을 맡겨라, 20% 할인한다!” 따뜻해진 날씨를 이미 겪고 있는 사람들은 문자 메시지를 받고 춘심(春心)을 일깨웠을 것입니다. ‘아 이제 정말 두꺼운 옷을 세탁해서 정리해야겠다.’ 나도 두꺼운 털 옷 두 벌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오늘 결국 다시 그 옷을 꺼내 입고 말았습니다.
벌써 숲 바닥에 명이나물 지천으로 올라와 지난주에는 첫 잎을 뜯어 쌈도 싸먹었는데, 벌써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그 작은 꽃망울 소담하게 틔워냈는데, 밭둑에는 꽃다지 꽃 노란 빛으로 막 피어나고 있는데, 개구리 저녁마다 개골개골 울기 시작한 지가 벌써 보름이 넘은 것 같은데… 어쩌자고 하늘은 다시 실개천 물에 살얼음을 만드는가 싶습니다.
된서리 가득한 차가운 새벽 숲을 거닐면서 그렇게 막 봄 꽃을 피워내는 녀석들을 근심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산마늘 잎사귀를 어루만져 보다가 이미 짝짓기를 끝내고 배불러 오던 도롱뇽의 집, 옹달샘에 쪼그리고 앉아 살얼음 낀 물속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생강나무 꽃은 어떻게 저를 시샘하기 위해 찾아온다는 이 추위를 견딜까 싶고, 땅바닥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반 뼘도 되지 않는 키에 팥알보다도 작은 꽃을 피우려던 꽃다지는 무사한가 싶어서 이곳저곳 안부를 묻고 서성여 보았습니다.
생강나무 꽃이 말했습니다. 냉이도 꽃다지도 산수유 꽃도, 도롱뇽까지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너 머리 검은 짐승이여, 너나 걱정해라! 너희 털을 버린 인간들의 역사야 기껏 몇 만 년이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너희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긴 세월 동안 지구와 함께 살았느니, 찬바람, 늦은 된서리, 춘설(春雪) 모두 경험하며 살아냈느니, 꽃피기 전에 반드시 찾아오는 이런 시샘 추위의 시련쯤이야 미리 알고 대비하고 있음이라!”
살펴보면 생강나무 그 작은 꽃도, 꽃다지 그 콩 톨보다 작은 꽃도 보슬보슬 고운 털 입고 있습니다. 명이나물 잎사귀에는 이 정도 추위쯤은 견뎌낼 천연 부동액 이미 담겼고, 냉이나 개망초, 지칭개 뿌리 잎에도 서릿발 흩어놓을 장치 모두 있습니다. 나를 꼭 닮은 나의 꽃 피우고 싶은 나도 그 꽃 시샘하는 마지막 추위 찾아오는 날, 저들처럼 대비하고 견디며 건너고 싶어집니다. 꽃이 피기까지는, 그리고 꽃이 다시 열매가 되기까지는 시린 날 몇 번이고 저들처럼 견디며 건너야 한다는 것 알게 됩니다. 날이 춥습니다. 오늘 그대 따숩게 입고 나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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