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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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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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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9일 00시 18분 등록

지난 식목일 한 공중파의 생방송 특강에 출연하고 두 주가 흘렀습니다. 보름 가까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전화와 방문을 받았습니다. 여우숲 근처 사오랑마을 입구의 구멍가게조차 여우숲이 어디냐는 질문을 많이도 받았다고 하니 공중파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싶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피로도 많이 쌓였습니다. 여우숲을 이용하시려는 분들의 문의는 기본이고, 강연 내용에 용기를 얻었거나 마음이 치유되었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전화도 참 많았습니다. 기쁘고 보람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작정 찾아오시는 분들이었습니다. 편지나 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방문하시는 분들을 모두 다 뵈었다가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삶의 리듬이 깨지고 피로를 입을 수 밖에 없어서 프로그램이나 숲 학교 강의가 없는 날에는 약간의 고의성을 가지고 숲을 떠나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따금 무작정 올라오시는 분들을 뵈면 고맙고 미안해서 짧게라도 뵙고 인사와 담소를 나누는 몇 날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늘 전화통을 붙들고 살거나 방문자를 만나는 일로 두 주 가까운 시간을 지냈습니다. 어제와 오늘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울산의 배내골이라는 곳에 20년간 산중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이라 밝히며 무작정 이곳을 찾아오신 부부입니다. 부부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올라와서 짧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 한 장 함께 찍은 뒤 서둘러 떠나려 했습니다. 나는 마침 점심 때도 되었고 멀리서 오셨으니 밥을 함께 먹기로 했습니다. 밥을 먹고 올라와서 그 사이 찾아오신 다른 분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뒤 함께 차를 마셨습니다. 얘기를 나눠보니 남편 분은 에베레스트를 여러 차례 등정하기도 한 산악인이고, 귀농한 분이자 산중에서 느끼는 단상을 기록해 오며 살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 역시 변방에 사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변방에 사는 사람은 한 마디로 꼴리는 대로 살 자유가 있는 사람이죠! 그걸 아니까 방해가 되지 않으려 조용히 다녀가려 했는데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게 되니 참 좋습니다.” 나는 기다리는 다른 분들을 정중히 배웅하고 제법 길게 그분과 담소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 대해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변방에 사는 즐거움을 한 3년 온전히 누렸는데 열기가 지나치니 당황스러운 두 주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은 꼴리는 대로 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산마늘을 주력 농사로 짓는 농부로서 지금 한참 명이나물을 출하해야 하는데, 손바닥 크기 이상으로 잎을 키워내 준 고마운 산마늘을 수확하여 건강한 소비자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주일에 한 이틀 온전히 글과 만나는 시간이 없다는 것도 큰 아쉬움입니다.

 

그나마 참으로 다행한 것은 이렇게 목요일마다 편지를 보내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변방에 사는 즐거움 대부분을 잃는다 해도 편지를 쓰는 시간만은 버리지 않는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은 꼭 지켜야겠습니다. 열기는 늘 거센 파도처럼 일어섰다가 서서히 사라지고 다시 평온을 찾는 법, 곧 잦아들겠지요. 그리고 본질인 것만 다시 자리를 찾아 남게 되겠지요. 내게는 분명히 목요일에 보내는 편지가 그 본질의 하나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변방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삶과 사유를 기록하는 것이니까요.

 

 

나의 변방에 사는 즐거움의 하나인, 그간의 기록 일부를 다듬어 새로운 책을 한 권 냈습니다.

새 책이 여러분에게 위안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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