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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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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6일 01시 03분 등록

시골사람들의 관계에는 애정이란 말이 생기기 전의 애정,

관심이란 말이 생기기 전의 관심 같은 게 건강하게 스며 있었다.

-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

 

병원 옆, 재래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건강지킴이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건강상담, 혈관나이 측정과 동맥경화 상담을 하고, 한쪽에서는 우울증과 불면증, 스트레스 상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홍보도 잘 되어 행사장에는 상인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과 스트레스 상담은 찾는 사람들이 적어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어르신께 이유를 물었더니 답변이 명쾌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우울할 새가 없어.”

“생각 많은 사람들이나 스트레스가 많지..하루 종일 시장일 끝나봐. 누우면 바로 잠들어. 불면? 잠잘 시간도 부족해...”

 

이곳 저곳에서 시장상인들이 내뱉는 걸쭉한 사투리가 들립니다. 일하느라 우울할 새도 없는 시골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직원 가족으로 입원하셨던 서씨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괴산에서도 한참 들어간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가 응급센터로 실려오신 건 경운기 사고 때문입니다. 논두렁을 가던 경운기가 2m 아래의 자갈밭으로 굴러 그대로 처박혔습니다. 운전하던 할아버지는 목뼈를 다치고, 등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였습니다. 시골에서 경운기는 자동차에 비해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생명을 위협하는 큰 사고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아니..아버님. 이 정도로 크게 다치신 줄은 몰랐네요? 너무 힘드시죠?”

“네..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병실을 방문했더니, 미라처럼 온 몸을 붕대로 감싼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습니다.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고 많이 불편할 텐데도, 괜찮다고 하십니다. 가까이서 뵈니, 74세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안색이 밝고 건강한 분입니다. 간병을 하는 할머니의 얼굴이 의외로 밝았습니다. 걱정이 많으시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웃으면 말하십니다.

 

“아이고, 경운기 사고가 났는데도 이 정도면 운이 좋은 거에요. 나는 기쁘지! 목숨은 살았잖아요. 동네 사람들은 모두 죽은 줄 알아요. 저 양반, 일만하다 병원에 누워 있으니 무척이나 갑갑할 거요.”

 

평생을 시골에서 일하며 건강하게 살아온 사람을 만날 수 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할아버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벼농사를 지어 자식들에게 매년 먹을 쌀을 보내주고, 밭농사와 각종 작물들을 키우면서도 염소를 50 마리나 키우고 있었고, 개도 30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고운 말을 쓰시고 몸가짐이 깔끔합니다. 사고가 난 순간에도 병원으로 바로 오지 않았습니다. 피를 흘리며 집으로 와서는 다친 몸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고서야 병원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해야 할 일들과 돌봐야 할 가축들 때문에 어떡하든 빨리 퇴원하고 싶어했고, 그걸 아는 할머니는 완쾌될 때까지 어떡하든 퇴원을 늦추고 싶어 했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가족과 친지들이 시골로 가서 염소들과 개들, 그리고 농사를 돌봐주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도 빨라서 3주 만에 퇴원하셨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납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환자가 되면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치료가 안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실제보다 과장되어 자신을 압도하기 마련입니다. 가족이나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의료진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뭐랄까..태연하고 의연해 보였습니다. 아픔을 부정하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정도 다친 것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골의 건강함이 저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은 일에도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고,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누워서 걱정이 걱정을 키우는 시대, 걱정은 아랑곳없이 시골에서 평생 일하며, 염소를 키우던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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