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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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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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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일 01시 28분 등록

 혹시 책상 위에 사전 한 권 놓고 계신지요? 인터넷의 정보와 전자기기들이 넘치도록 풍성해진 요즘은 사전을 따로 두고 계신 분들이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따금 사전을 들추는 것이 즐겁습니다. 모르는 단어를 찾을 때도 그렇고, 보다 적절하고 정확한 단어를 문장 속에 넣고 싶을 때도 그렇습니다. 아니면 그저 보석처럼 아름다운 우리말의 멋을 느끼고 싶을 때도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사전의 우리말은 말광입니다. 독과 항아리를 여러 개 모아두는 장독대를 장광이라 일컫는 것처럼 말을 모아 목록으로 만들어둔 것을 말광이라 표현한 속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멋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의 말과 생각은 언제 처음으로 그 목록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슬픔 속에서 태동하였습니다. 알다시피 훗날 한글학회가 되는 조선어학회가 빼앗긴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해 1943 <조선말 큰 사전>을 기획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하지만 외세강점이 끝나고 민족간의 아픈 전쟁이 이어지면서 그 사전은 남한에서는 1957년에야 완간되었고, 북한에서는 3년 뒤에나 완성되었습니다. 누릴 것이 많았던 조선의 선비들은 말의 목록을 만들지 않고 지냈는데, 끔찍한 핍박과 결핍을 겪으면서야 비로소 말의 목록은 만들어진 것이지요.

 

이후 우리말 사전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세상이 풍요로워지면 풍요로워질수록, 또한 가까워지면 그럴수록 말은 풍성해졌고 담아야 할 말광 역시 두터워졌습니다. 하지만 사전은 여전히 좁은 테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내가 숲과 함께 살고, 숲의 언어를 듣기 시작한 뒤부터였습니다. 인간이었던 내가 이제부터는 간절히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우리의 사전에 인생(人生)은 있습니다. 하지만 목생(木生)이나 견생(犬生)은 없습니다. 우리의 사전이 인간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겠지요. 하긴 책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만이 누리는 문화의 산물이니 나의 생각은 억지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숲과 자연에 학교보다 더 큰 스승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가슴으로 느끼고부터 나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언어의 목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확장된 언어의 목록을 담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삶을 인생이라 한다면, 나무의 삶은 목생이다. 개의 삶은 견생이요 풀의 삶은 초생이다. 아직 인간인 사람들에게는 이 주장이 억지처럼 느껴질 것을 알지만, 이것은 어쩌면 인간이 망쳐놓고 있는 이 지구 생명공동체를 구할 수 있는 강력한 인식체계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우리말 사전을 만든 시초 동기는 강제로 빼앗긴 말을 지키기 위해 위대한 선인들이 본능적으로 참여하고 헌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풍요로움 가득하지만 불안함 또한 넘치는 시대, 이 시대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전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사전이 보태어 담아야 할 더 큰 말은 생명의 말이어야 할 것입니다. 분별을 위한 말뿐 아니라 공감하기 위한 더 큰말이 많이 담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사람이 타인과 다른 생명의 삶을 나의 그것과 대등한 위치에 둘 줄 아는 눈과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인간의 세상도, 생명의 공동체도 지금보다는 훨씬 평화로울 것임을 확신하니까요.

 

그나저나 내 삶이 끝나기 전에 최소한 네이버 사전에라도 목생이니, 견생이니, 초생이니 하는 단어를 등재할 수 있을까요? 상관없습니다. 여우숲의 강좌를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뜻을 가슴으로 읽는 능력을 갖게 될 테니까요. 그것이 우리 숲학교 오래된 미래가 품은 목표의 하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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