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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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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일 01시 22분 등록

“아~ 아파요. 누르지 마세요.”

“진단을 정확히 해야 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여기는요?”

“아~~ 그만.아파요..그만해요..”

“당뇨 있으시죠! 얼마나 약 드셨어요?”

“5년 째요”

“상태가 안 좋습니다. 관리를 안하셨네요.”

 

당뇨환자들은 발가락 끝에 염증이 잘 생깁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소홀히 다루면 발가락이 붓고 썩기 쉽지만,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악화되기 싶습니다. 자칫하면 발가락 절단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로 버티다 심한 복통으로 오는 소화기 환자가 늘고, 입원을 권유해도 그냥 집으로 가는 환자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불경기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쪽에서 중년의 남자가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알콜중독인데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 합니다. 어디에서 다쳤는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것을 119 구급대가 모셔 왔습니다. 어렵게 확인된 가족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배우자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내는 전화기 전원을 꺼 놓았고, 대신 중학교 2학년 딸아이가 연락이 되어 응급실로 찾아왔습니다. 딸은 아무 말도 없이 몇 시간 동안 아빠의 침대를 지키더니, 새벽에 같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새벽에는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습니다. 과속으로 차선을 침범하여 교통사고를 낸 화물차 운전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응급수술을 하기도 전에 사망했습니다. 행정처리를 하던 직원은 사망한 운전수의 나이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물어봅니다.

 

구석진 침대에는 젋은 대학생이 정신을 못 차리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누워 있습니다. 근처 대학교에서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나 봅니다. 선배들의 호령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먹고는 토하다가 목에서 피가 나와 새벽에 응급실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보호자로 따라 온 선배라는 이가 군대 신병인가 봅니다. 머리를 빡빡 밀고 사복을 입었지만 군기가 바짝 들었습니다. 간호사가 검사를 위해 환자의 자세를 같이 옮기자고 하니, 큰 소리로 외칩니다. “이병..OOO! 제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응급 수술실에는 이마의 상처를 꿰매는 의사와 온 힘을 다해서 울어대는 다섯 살 아이, 간절한 눈빛으로 울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가 보입니다. 아이의 비명과, 의사의 달램과, 부모의 안타까움이 뒤섞여,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응급실에도 계절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으로 오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봄에는 어린아이들이 아파서 많이 오고, 새학기를 맞아 혈기 넘치는 젋은 청년들이 술병이 들어서 옵니다. 여름에는 휴가철 탓인지 찾아오는 환자들도 적고, 가을에는 등산이나 자전거 사고 등 레포츠 관련 환자들이 많습니다.

 

응급실 야간수납을 7년째 하는 직원이 이런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3년 전쯤이었어요. 임산부 한분이 화장실에서 쓰러져서 병원에 오셨는데, 결혼한 지 1년 밖에 안 된 신혼부부였어요. 그런데 도착 당시 거의 사망한 상태였거든요. 의사들이 결국 ‘시피알’(CPR /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사망선고를 했는데, 그 남편분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시더라구요. 임산부와 뱃속의 아이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거에요. 의사에게 시피알을 계속 요구하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직접 아내 가슴에 손을 얹고 시피알을 하더라구요. 1시간을 넘게 시피알을 하는데, 그 모습이 짠해서 지켜보던 의사와 간호사 모두, 같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급한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119 구급대가 환자를 싣고 들어옵니다. 간호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의사들은 차트와 영상을 쳐다보며 계속 무언가를 적고 있습니다. 응급실 안에서는 환자들의 신음소리, 응급실 밖에서는 다급함을 알리는 보호자들의 전화소리가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응급실은 창(窓)이군요. 사회와 세상을 보는 창이자, 살아오며 맺었던 사람들과의 관계의 창입니다.

그 창 너머에 벌거벗은 사람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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