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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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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5일 23시 51분 등록

 

얼마 전 어느 일요일, 딸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주 보지 못해서 늘 그립고 미안한 아비의 마음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수화기로 녀석의 철철 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여태 살면서 가장 힘든 게 누군가의 우는 모습을 보는 건데, 사랑하는 딸이 펑펑 우는 소리를 전화로 듣자니 당황스럽고 아팠습니다. 겨우 마음을 가누어 왜 우는가 물었습니다.

 

울먹이며 녀석이 답했습니다. “……학교가 가기 싫어서……”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친구들과 불편한 것이냐, 선생님들과 불편하냐? 아니면 공부하기가 싫은 게냐? 하나씩 물었고 녀석도 하나씩 답했습니다. “……아니…… 학교에 다니는 게 의미 없는 것 같아서……”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습니다. 녀석의 대답에 대해 잠시 생각하느라 나는 짧게 침묵했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기뻤습니다.

 

이제 숲으로 들어와 함께 농사짓고 나무 심고 숲을 지키며 살 수도 있겠다는 기대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녀석이 벌써 저의 눈으로 세상을 프레이밍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열다섯 살에 나는 세상의 기준에 무조건 복종했었는데, 해서 마흔이 다 되도록 미시오라고 써있는 문을 절대 당기지 못하며 살았는데, 녀석은 벌써 주어진 조건, 세상이 입혀주는 옷을 제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것이 과연 나의 옷인가를 스스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내가 딸 녀석의 나이 즈음에 아버지께 그런 말씀을 드렸다면 아버지는 분명 노여움 가득한 표정으로 간단하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전쟁 고아가 되면서 마치지 못하게 된 한서린 경험이 있는 아버지는 아마 미친 놈!’ 혹은 저런 꼴통!’ 이렇게 기선을 잡아 야단을 치셨을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아버지의 그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딸 녀석의 그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나는 분명 어른의 눈에는 꼴통으로 비췄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꼴통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감하는 나는 딸 녀석의 회의를 기쁘게 존중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서야 머리가 나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꼴통을 정의하고 있지만, 먼저 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와 법칙과 패러다임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이 창발적으로 자신의 세상을 열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믿으니까요. 세상이 만들어 놓은 현재의 틀과 규칙에 갇히지 않고 그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나올 수 있는 사람, 그를 꼴통이라 한다면 나는 딸 녀석이 그런 꼴통으로 살아도 좋겠다 생각했으니까요.

 

나는 우는 딸을 달랬습니다. 어떤 결정을 해도 아비는 딸의 편에 설 것이라는 말을 전제로 조금 더 깊이 고민해 볼 주제를 주었습니다. 나는 최고의 교육은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대가 나라면 그대는 녀석에게 무엇을 생각해 보게 하고 싶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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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6 09:22:22 *.36.72.193

며칠 전 졸업생이 제 앞에 앉은 선생님을 찾아 왔습니다.

선생님은 반갑게 맞이 해 주시면서 고등학생이 된 제자들에게

"다음에 왔을 때 살 안 쪄 있으면 쌤 실망할거야."

그러시면서

"고등학생은 살찌고, 뭐고 생각말고 간식 많이 먹으면서 공부 많이 해야해."

하시는 겁니다.

아이들은 호들갑을 떨며 "아, 저 살 뺄꺼에요." 했지요.

 

전 그 오고가는 대화 속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이 공부다. 그러니 제자들에게 가장 자신있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공부하는 방법, 공부 잘하는 법, 성실하게 해야 결과를 볼 수 있는 것 등에 대해서만이다.

이것이 교육의 문제 중 하나 아닐까?'

 

한 인간이 성장할 때 그(그녀)에게

삶이 풍요롭고 깊은 맛이 있음을, 기쁨과 슬픔이 오고감을, 언덕을 올라야 하고, 또 내려와야 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선생들이 많다면 참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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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딸이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비교해보고

누릴 수 있는 것을 취하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은 것은 자신이 채울 방법이 있는지,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조금 더 균형잡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학교가 주는 즐거움 또한 있을테니까요.)

학교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고 있는데

자신이 얻고자 하는 또는 찾고 있는 '의미'에 대한 생각도 깊이 해보면 좋을 것 같고요.

 

그냥 다니던 학교를 자신의 독창적인 눈을 가지고 다니게 되면 또 다른 세상으로 펼쳐질 수 있을 것도 같고..

 

무엇보다 생각의 시간을 보내고 좋은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고, 인정해준다면

여우숲 대표님의 딸의 삶이 행복할 듯합니다.

 

좋은 아빠를 둔 딸이 부럽고,

생각하는 딸을 둔 아빠가 행복해보입니다.

(8기 연구원 최세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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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6 20:01:17 *.97.72.102

여차저차하다가 찾아가 본 커뮤니티가 있는데, 그곳에는 우리 연구원보다 더 여러 층의 사람들이 한데 섞여 공부하고는 하지요. 1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분포되어 수십명이 한데 얽혀서 말예요.

 

그곳에서 보면 간혹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나온 아이들이 제법 눈에 띄기도 하더이다. 변경연에도 가끔 고등학생들이 제법 근사한 글을 남기기도 하지요. 그런데 처음 그곳에 와서 그들이 쓰는 글들을 함께 읽노라면 학창시절 꽤나 우수했던 아이들이 무언가를 달리 해보겠다고, 혹은 막연한 기대나 일종의 멋을 부리는 마음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나와서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솔지히 후회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특히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상당한 갈등이나 격차를 느끼며 후회에 따른 강박 증세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조바심 때문인지 너무 공부에 몰두하다가 병이 나거나 제도권에대한 거의 맹목적인 거부감으로 새롭게 혹하며 달려드는 모습이기도 해요. 그렇게 학교를 나와서도 무언가에 대해 목말라 한다는 거죠. 물론 그곳의 취지는 멀리 깊게 공부해 나가자는 취지지만요. 학교든 공동체든 일장일단이 있게 마련이기도 하지만 학교에 비해 소규모의 공동체는 여러 면에서 다양성이 현격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기도 해요. 우선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서도 그렇고 숲에서 사는 일과도 같이(?) 제한되는 것들도 많이 있답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제도권(학교)의 공부가 왜 싫은지, 무엇이 어떻게 못마땅한 것인지,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는 건지, 일시적으로 단지 어느 한 부분이 싫은 건지, 전체적으로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인 건지, 그리고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 것인지 등을 정말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한  연후에 선택하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왜냐면 대한민국이란 곳에 살면서 우리나라의 실정이라는 것도 있고, 또 대학이나 대학원 등에 가서 깊게 공부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게 너무 멀고 지루한 일인가요? 그렇다면 모색이 필요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일상에서 학교라는 거대한 또래 집단을 만나기도 쉽지 않잖아요. 물론 우리가 동창 전부를 만나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요.^^

 

경우에 따라선 제도권이 가진 유익들을 멋지게 활용해 볼 수도 있는 거고요. 실은 얼마 전 변경연 연구원 8기 레몬 김이준이라는 친구의 30세 이립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그 친구의 호방한 스케일에 감동을 먹은 것도 사실이랍니다. 이 친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제도권까지도?)들을 네트워크화 해서 재미나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이더라고요. 혼자서나 끼리들만의 모임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인맥과의 어울림, 그리고 그 안에서 소탈하고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모습이 어찌나 놀랍고 멋지던지요. 아마도 변경연의 공부가 무르익으면 크게 한 몫을 할 재목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내심 들었답니다.  

 

나 역시 늦게 변경연에 와서 깨달은 것이고 어쩌면 아직도 우문 중에 있기도 한데,  현재의 따님에게는 무엇보다 정말 자신에 대한 탐구가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기본적으로 바탕이 되어야 인생에 대하여 그림을 그리고 박차고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 지, 무엇이 재미 있고 없으며, 무엇을 하면 신나고 기분이 좋은지 등을 면밀히 탐구하여 찾아내고 구체적으로 아는 데 힘을 기울인 연후에 선택해도 늦지 않을 거란 것을 타일러 주었으면 해요. 어쩌면 이미 단계를 넘어선 것 같기도 하네요. 

 

 

白烏(모두가 검은데 혼자만 흰까마귀)라고 불릴 만큼의 기가 센(?) 아빠에 그 피를 닮은 녀식이니 오죽하겠는가마는^^

 

요즘의 아이들을 보면서 때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이다. 제도권 교육이 줄 수 있는 유익과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공동체의식이나 문화 등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너무 쉽게 마다하고 우선 제 좋은 것, 편한 것만을 취하려 드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기도 한다는 거죠.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요즘 학교가 학교가 아닌 만큼( 예전에 비해 학교(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사명, 책임의식, 권위, 의무 등이 너무나도 망각되어버린 까닭에)  때로 믿을 만한 훌륭한 대안 교육 기관이나 스승이라도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전문성 있게, 예를 들어 가수 보아나 피켜스케이터 김연아 등과 같이 무언가를 향해 뚜렷하게 나아갈 방향성이 제시되어 있다고 하면 특별하게 선택해 나갈 수 있고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이도 저도 아닌 그저 막연한 생각만으로 대처해서는 절대 안되겠다는 겁니다. 죽도 밥도 아닌 경우가 될 수 있기에 말예요. 아닌 말로 그나마도 못 버티면 세상에 나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거든요. 자기가 좋아하는 집단에 들어가 그들하고만 어울려 살면서 만족할 수 있다면 모를까, 세상의 경계를 너무 선명하게 긋고나서 그게 또 벽이 되어 갈팡질팡하거나 섞일만 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도 문제가 될 테니까요.

 

모르긴 해도 그 나이의 또래에 비해서는 매우 의식이 뚜렷해 보이기에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지만 돌다리도 두둘겨 가랬다고 깊이 고민해 본 연후에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수밖에 달리 무슨 뾰죡한 수가 있겠나 싶기도 하네요.

 

그리고 요즘 세대의 1) 한 2~30대 초반의 앞선 의식(?)의 선배들과 만나 이야기 해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좀 성숙해 보이니만큼 또래집단 보다는 조금 연상의 언니 오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듯해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본 괴짜 김이준8기연구원을 추천합니다.(그녀가 넘 바쁠라나?) ㅋ

학교에 안 가면 그저 죽는 줄 알고 아무 생각없이 가방들고 다녔던 나나 내 또래와는 다른 부모나 선생님과도 다른 또 다른 생각과 세계를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2) 부모가 본 아이의 재능과 아이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 잘 매치되는 경우라면 무엇을 선택하든지 별 문제 없으리라고 봐요. 무엇을 하든 어떤 고민이든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요 위안과 지원이 되는 거니까요. 

 

 

                                 딸래미의 눈물이 곧 함박웃음으로 변화되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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