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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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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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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7일 00시 26분 등록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장을 보기 위해 40분 동안 카누를 저어 나간다. 모터를 이용하면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40분씩 걸려 카누로 간다고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노젓기를 즐긴다. 이때 나는 일주일 중에 가장 느긋한 시간을 보내며, 좋은 생각이 많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수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운동이 되니 기분도 좋다. 모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터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은 ‘더 나은’ 방법이 아니라 단지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사랑하는 네이프(Nafe)의 부모님을 처음 뵙던 날, 아버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담배 태우나?”

 

우물쭈물하며 한 나의 대답. “네.”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글 쓰고 강의한다고 했지? 그래, 우리가 태우는 담배는 생각하는 담배야.”

 

긴장하고 떨리던 그날, 아버님 말씀을 듣고 내 마음은 미소 지었습니다. ‘아버님도 그러시구나.’ 나는 예감했습니다, 아버님께서 우리 결혼을 허락하시고, 축복해주실 것임을.

 

오래 전에 담배를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겉멋으로 입에 물었습니다. ‘겉담배’였지요. 시간이 지나 담배는 일상이 되었고, 시간이 더 흘러 그것은 쉼표가 되었습니다. 내게 담배 태우는 시간은 윌리엄 코퍼스웨이트의 노젓는 시간과 비슷합니다. 홀로 담배를 피우며 여유를 느낍니다. 그 여유 속에서 이상하게도 생각이 떠오르고, 글감이 솟아오르고, 마음이 흐르기도 합니다. 이 글도 담배 하나 태우고 쓰고 있습니다.

 

담배 태울 때 말고, ‘모터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40분 동안 카누를 타고 노를 저으며 가는’ 것과 같은 시간이 또 하나 있습니다. 골목길을 걸을 때입니다. 나는 골목길을 좋아합니다. 어디선가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다’는 글을 보고 나는 미소 지었습니다. 나도 그 느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동네에는 골목길이 많습니다. 가끔씩 나는 홀로 골목길을 탐험합니다. 골목길을 들어설 때마다 아련함과 애틋함, 어떤 향수가 나를 감쌉니다. ‘골목길’은 삶과 존재에 관한 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외부의 지형을 통해 마음 속 골목길을 탐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잊혀졌던 추억 한 조각이 느닷없이 솟아오르는 곳은 늘 이런 곳입니다. 묻혀 있던 마음 한 조각에 문득 빛이 비추는 순간도 이런 때입니다. 햇살이 낡고 좁은 골목길을 비추는 순간처럼 말입니다.

 

지금도 어디를 가든, 골목길이 보이면 그리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평지, 오르막, 내리막, 어떤 길이든 낡고 좁은 골목길이 나는 좋습니다. 넓은 길로 더 빨리 편하게 갈 수 있음에도, 난 골목길을 걸으며 담배 한 개비 입에 뭅니다. 이때 작은 여유를 만끽합니다. 그 여유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솟아오르고, 마음이 흐르고, 영혼이 눈을 뜹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한두 번, 일주일 한두 번은

고요에 싸여 모터를 이용하면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40분씩 걸려 카누로 가는 시간, 그런 짧은 여행이 필요합니다.

자아가 사라지는 순간, 영혼이 눈을 떠 의식이 확장되는 시간이 있어야만 합니다.

 

sw20120710.jpg 

*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저, 이한중 역, 핸드메이드 라이프, 돌베개,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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