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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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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6일 01시 10분 등록

집사님 그거 아세요? ”

마땅한 호칭이 없을 주로 받는 호칭인데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빨리 집을 사세요…”라는 격려로 받는다. 그걸 상대는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겟지만.. 연말에 가계로 찾아와서 이웃이 안좋은 소식을 전해줬다.

 집사님 큰애 다니는 학교에 자폐증 있는 있잖아요?  개내 부모.. “

 모르는데애들 픽업은 아내가 주로 해서..”

 하튼 개네 아버지가 정육점을 새로 오픈햇는데얼마 전에 돌아가셧대요.. 심장마비로.. 동안 장사가 안돼서 어쩌다 한번 가보면 수심이 가득하고 뒤뜰에 담배가 수북했는데어느날 가계 전화가 하도 안되어 엄마가 가계가 보니까 아빠가 바닥에 쓰러져 계신걸 발견했대요…. 그니까 집사님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예요..”

 

조금 들어 보니까 실리콘벨리에서 일하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단다. 언뜻 매치 안되던 스토리가 미국에서 경기가 안좋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와서 일하다 금융위기 해고되어 다른 찾다가 근처 마트 정육파트에서 근무하다 나이가 이제 독립할 때라 있는 끌어 모아 몰빵 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지 모르겟지만 100% 생고기 취급. 냉동육을 취급 안해 맛으로 승부를 본다는 전략이었는데 손님이 찾기 힘든데 장소에 가계를 열었으니 외려 생으로 남는 고기는 쌓이고 냉동육은 안한다고 선전햇으니 남은 고기 처리에 힘들었을 하다.. 음식장사를 해봤다고 나름 그림이 그려지는데..

관심은 스토리를 요즘 실력이 안늘고 실수를 많이 하는 아줌마들에게 얘기해서

" 제발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해주세요. 장사 안돼면 저리 죽을 수도 있어요.”   “쓰러지면 가슴을 안고 쓰러져야지.” 다짐을 했다..  ? 머리를 쥐고 쓰러지거나 사타구니를 잡고 쓰러지면 왠지 각이 나올거 같아서.. 기왕이면 멋있게 쓰러져야지….

해서 일하는 아줌마들에게 아무 일도 아닌 슬쩍 썰을 풀었더니

 .. 브라이언네 집이요? 안됏어

이미 알고 있다.

 ? 어떻게 아셔요? “

 " 사장님. 여기는 자폐아들 부모끼리 모임이 있어요그리고 성당 다니잖아요그래서 장례를 성당에서 햇다는데 한사코 저는 오게 하더라고요그래서 거기에도 두가지 추측이 있잖아요심장마비라는 말과 자살햇다는 동안 얼마나 속상햇겠어요… “

. 이분도 성당 다니시지….

 그러니까 이민 오면 좌우간 교회는 장례팀이 있는 교회 다녀야 해요..  아니면 성당다니던지..”

 

그래서 원래 의도와 달리 다른 결론이 내려졌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장례를 치를 있나 알아보자!!

 사장님네 교회정도면 아마 있을걸요?”   안심이다..

 

살면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리던 기반이 무너질 때가 있다. 그래서 앞이 안보일 때가 있다.

아주 당연하게 여겼던 건강. 쌈지 . 알량한 명예와 자존심. 주변의 신뢰관계들이 어느 순간 흔들리면 불안하게 되고 상황의 전개에 따라 공포로 변하기도 한다. 사람이란게 원래 이리 연약한 존재이기에 아마 종교에 의지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벌어진 비극을 보면서 속으로는 나의 일이 아닌걸 안도하고 소심하게 고맙기도 이유일 터이다.

 

원했던 아니건 이미 벌여진 타인들의 비극과 실패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있을까?

 

먼저 우리는 그의 슬픔에 공감을 있다. 이미 벌어진 비극은 그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동시에 입장에 공감한다. 우리는 동정심에 사로잡히며 메시지의 보편적 의미를 추리해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비극과 실패를 보면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는 그를 통해 실패의 유래와 원인을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많이 아는 것은 많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역지사지를 통한 겸손함을 배울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운명에 무기력한 존재인데 이번에는 다행히 운이 좋아   비극이 나를 찾지 않은 것에 감사를... 그리고 번에도 이번처럼 운이 좋기를 다소 소심하게 바라는 것이다.

해서 비극은 실패나 패배에 대한 단순한 관점을 버리고, 우리 본성의 뿌리 깊은 우둔과 일탈. 게으름 등을 너그러이 애처롭게 바라보게 하는게 싶다.

 

 

이렇게 비극에 담긴 다른 시각들을 촘촘이 뜯어보면 마치 성공과 행복만이 존재이유인 것처럼 몰아가는 주위환경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힘을 얻을 있다.

또한 비극과 실패의 결과가 자신을 그리 심하게 짓누르지 않을 것이고 작은 자신의 행복에 만족하는 겸손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단지 그것이 비겁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작년 무섭게 1000만을 향해 돌진하는 영화 변호인 듣고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햇다. 그러다 3월이 되면서 인터넷에 떠서 보게 되었다. 역사는 일부분 수의 문제이니 1100 이상이 관람했다면 사회현상의 의미를 읽어야 하리라. 생각과 함께..

근데 결과치고 언론은 조용한 같다. 평범한 사람의 비극이 사건을 계기로 비범하게 탄생하고 도약하여 다시 비극이 되었다는 실제 역사는 논외로 하더라도 30년의 지난 세월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연결되어 안으로 들락날락 자유롭기 때문에 아직은 할말이 정리가 안되서 그런걸까?  

 

어찌 되엇건 묘하게 이그러져 울먹이는 학생들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여러 가족들에게 일어난 비극을 보고서 저런 비극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기를하며 널리 많은 사람들이 겸손하고 간절해 지기를 누구들은 희망하지 않을까?   1100만이나 넘게 봐서 홍보효과는 테니 말이다.  

 

어쨌든 그것도 비극이 주는 이점인가생각하면 씁슬하다.

그래도 그것은 계속 움직이겟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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