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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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오늘은 하루 종일 편안히 쉬었다. 어제까지 그래도 무언가 어수선했다면 오늘은 푹 쉬는 하루였다. 새벽에 잠깐 깨서 화장실 다녀오고는 또 잠에 빠져든다. 7시가 되어서 예배 준비를 하시는 시간이 되어서야 다시 눈을 뜬다. 참 잠도 잘 잔다. 눈을 뜨고 일어난 채로 문 밖으로 나가면 거실 한 가득 이곳 식구들이 인사를 한다. 눈곱도 그대로인 얼굴로 아침 인사를 해도 왜이리 편안한지, 한 식구처럼 창피해지질 않는다. 목사님이 준비해 오시는 따듯한 물 한 컵에 숯가루 두 숟갈로 하루를 시작한다. 예배를 하고 아침 포도밥을 먹는다.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나와는 달리 동기 할머니도 서선생님도 10분이 다 걸린다.
동기할머니는 올해 일흔 하나 되시고, 서선생님은 목사님과 동년배 예순 둘이다.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더 사신 분들과 얘기를 하며 포도밥을 먹는다. 할머니는 감으로 김치를 담그면 맛있다며 레시피를 알려주신단다. 나물이며, 근처 나무들의 이름을 줄줄 꾀고 계신다. 역시 존경스런 경험치다. 햇빛 좋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잠시 왔다 갔다 어슬렁대다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대나무 숲 근처에 내가 담배 피우는 장소가 있다. 올 때 넣어온 두 갑이 이제 거의 바닥이다. 그래도 평상시 같으면 하루 한 갑이었을 테니 많이 줄었다. 이왕 담배중독도 고쳐지면 금상첨화겠다.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의지 빼고 그냥 되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 즉 도둑놈 심보가 안 떼진다.
오전 내내 책을 읽다가 정오쯤 낮잠이 들었다. 1시반 효진씨가 밥 먹으란 소리에 깼다. 포도밥은 늘 성에 안 차지만 그래도 먹을 때 마다 감사해진다. ‘이게 어딘가’ 싶으니 말이다. 오후에 한 시간이 넘게 서선생님과 둘이 얘기를 하게 됐다. 두 아이와 엄마는 곯아 떨어지고, 할머니는 덕산 장날 구경 나가셨다. 역시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그 많은 경험들에 기분이 좋아진다. 아프리카와 중국 등 비즈니스 여행의 경험들을 얘기해 주셨는데, 어느 점쟁이의 여행작가가 돼라한다는 내 우스개 소리에 하면 잘 하겠다며 덕담을 해 주신다. ‘아구~ 정말 잘 어울릴까? 왜 그런 느낌을 받으실까? 내 어떤 면이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냥 꾹 참았다. 그냥 그런 느낌일 경우가 많은 법이니까…….
냉 찜질을 누워 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져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복대를 하고는 밖으로 나와 왔다 갔다, 고개 들어 산 한 번 보고 사방을 둘러보며 상념에 잠겼다. 여행을 하자니 경제적인 것이 마땅치 못하고, 여행 자체로는 허무해질 것이 염려되고, 경제적인 것을 해결하자니 당분간의 돈벌이가 이것 저것 떠오른다. 무얼 해야 보람되면서도 단기간에 여행경비를 마련할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 외에 이민웅 선생님의 동옥고 판매가 떠오르고, 대전 박사 아빠들의 벤쳐 사업을 돌보는 일도 떠오르고, 보험 일도 마지막 일년 동안 제대로 마무리를 짓고 싶어졌다. 결혼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데 나는 과연 결혼을 해 상대방과 가족들에게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를 낳는다면 여행은 물 건너 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두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된 지금, 내가 과연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워진다.
유난히 둘째 아이가 울며 보채는 정도가 심하다. 악을 쓰며 엄마 품을 떠나지 않는 욕심 많은 아이를 보며 몇 대 때려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벌써 아이들에겐 무서운 호랑이를 대신한 무서운 이모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특히 목사 내외분이 출타를 한 탓에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포도밥은 떨어졌는데 포도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체중계의 건전지는 떨어져 작동이 안되고, 마실 물도 없고, 방바닥은 전에 없이 차가워지고, 욕실에 물도 안 나온다. 지저분하고 정신 없이 어질러 진 건 이제 익숙해 질만한데, 오늘 닥친 상황은 난감했다. 머릿속에선 불평과 불만이 도깨비 방망이질 같다. 그러면서 내심 이런 오만 방자하고 불손한 나 자신을 보게 됐다. 얼굴도 모르는 손님을 스스럼 없이 받아 주시고, 믿고 출타한 주인장에게 불평이라니……. 겸손해져라! 겸손해져라! 겸손해져라!
효진씨에게 페이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목사님께서는 ‘그냥 편할 대로’라고 하셨단다. 대부분 100만원 정도로 소개를 받으니 두 아이까지 150만원을 오는 날 드렸단다. 나도 분명 사모님 주머니에 꽂힌 종이 봉투를 슬쩍 본 기억이 있다. 나는 아직 돈에 대한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글쎄, 대개의 내 성향으로는 서로 불편한 돈 얘기를 시원히 먼저 꺼내 마무리를 짓는 편인데, 이번엔 그러고 싶어지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그냥 있어보고 싶어진다. 무슨 심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느껴지는 대로 간다.
잠도 실컷 자고, 책도 재미있게 읽었고, 얘기도 충분히 하니 참 편안하다. 아까는 잠깐 담배 한 대 피러 바깥에 나갔다가 밤 하늘 별을 보게 됐다. 해가 떨어지면 깜깜 절벽인 이 곳에서는 그저 고개만 들면 별이 쏟아지는 것을 닷새나 지나서야 보게 되다니, 그 동안 난 어디에 고개를 박고 살았을까?
곧이어 목사님 내외가 들어왔다. 교통사고란다. 목사님 혼자 운전하시다 졸음운전으로 다리를 좀 다치셨는데, 차는 꽤 견적이 나올 듯 하단다. 천만 다행이다. 어제 내가 운전 얘기를 드렸건만 사고가 나다니,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싶기도 하고 내심 걱정과 안도가 교차한다. 앞으론 정말 걸어서 읍내를 다녀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제 모든 식구들이 탄 차가 아니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사모님은 예수님이 굽어 살펴주셔서 큰 사고가 아니라 신다. 믿어지지는 않지만, 위기의 순간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의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늦은 감사 예배 시간엔 나도 절로 찬미가를 부르게 되었다. 지금껏 입 다물고 자리만 지켰건만, 찬미가가 절로 나온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하실 것 같다.
2007-10-14 10:5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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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 종일 편안히 쉬었다. 어제까지 그래도 무언가 어수선했다면 오늘은 푹 쉬는 하루였다. 새벽에 잠깐 깨서 화장실 다녀오고는 또 잠에 빠져든다. 7시가 되어서 예배 준비를 하시는 시간이 되어서야 다시 눈을 뜬다. 참 잠도 잘 잔다. 눈을 뜨고 일어난 채로 문 밖으로 나가면 거실 한 가득 이곳 식구들이 인사를 한다. 눈곱도 그대로인 얼굴로 아침 인사를 해도 왜이리 편안한지, 한 식구처럼 창피해지질 않는다. 목사님이 준비해 오시는 따듯한 물 한 컵에 숯가루 두 숟갈로 하루를 시작한다. 예배를 하고 아침 포도밥을 먹는다.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나와는 달리 동기 할머니도 서선생님도 10분이 다 걸린다.
동기할머니는 올해 일흔 하나 되시고, 서선생님은 목사님과 동년배 예순 둘이다.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더 사신 분들과 얘기를 하며 포도밥을 먹는다. 할머니는 감으로 김치를 담그면 맛있다며 레시피를 알려주신단다. 나물이며, 근처 나무들의 이름을 줄줄 꾀고 계신다. 역시 존경스런 경험치다. 햇빛 좋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잠시 왔다 갔다 어슬렁대다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대나무 숲 근처에 내가 담배 피우는 장소가 있다. 올 때 넣어온 두 갑이 이제 거의 바닥이다. 그래도 평상시 같으면 하루 한 갑이었을 테니 많이 줄었다. 이왕 담배중독도 고쳐지면 금상첨화겠다.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의지 빼고 그냥 되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 즉 도둑놈 심보가 안 떼진다.
오전 내내 책을 읽다가 정오쯤 낮잠이 들었다. 1시반 효진씨가 밥 먹으란 소리에 깼다. 포도밥은 늘 성에 안 차지만 그래도 먹을 때 마다 감사해진다. ‘이게 어딘가’ 싶으니 말이다. 오후에 한 시간이 넘게 서선생님과 둘이 얘기를 하게 됐다. 두 아이와 엄마는 곯아 떨어지고, 할머니는 덕산 장날 구경 나가셨다. 역시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그 많은 경험들에 기분이 좋아진다. 아프리카와 중국 등 비즈니스 여행의 경험들을 얘기해 주셨는데, 어느 점쟁이의 여행작가가 돼라한다는 내 우스개 소리에 하면 잘 하겠다며 덕담을 해 주신다. ‘아구~ 정말 잘 어울릴까? 왜 그런 느낌을 받으실까? 내 어떤 면이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냥 꾹 참았다. 그냥 그런 느낌일 경우가 많은 법이니까…….
냉 찜질을 누워 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져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복대를 하고는 밖으로 나와 왔다 갔다, 고개 들어 산 한 번 보고 사방을 둘러보며 상념에 잠겼다. 여행을 하자니 경제적인 것이 마땅치 못하고, 여행 자체로는 허무해질 것이 염려되고, 경제적인 것을 해결하자니 당분간의 돈벌이가 이것 저것 떠오른다. 무얼 해야 보람되면서도 단기간에 여행경비를 마련할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 외에 이민웅 선생님의 동옥고 판매가 떠오르고, 대전 박사 아빠들의 벤쳐 사업을 돌보는 일도 떠오르고, 보험 일도 마지막 일년 동안 제대로 마무리를 짓고 싶어졌다. 결혼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데 나는 과연 결혼을 해 상대방과 가족들에게 이기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를 낳는다면 여행은 물 건너 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두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된 지금, 내가 과연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워진다.
유난히 둘째 아이가 울며 보채는 정도가 심하다. 악을 쓰며 엄마 품을 떠나지 않는 욕심 많은 아이를 보며 몇 대 때려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벌써 아이들에겐 무서운 호랑이를 대신한 무서운 이모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특히 목사 내외분이 출타를 한 탓에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포도밥은 떨어졌는데 포도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체중계의 건전지는 떨어져 작동이 안되고, 마실 물도 없고, 방바닥은 전에 없이 차가워지고, 욕실에 물도 안 나온다. 지저분하고 정신 없이 어질러 진 건 이제 익숙해 질만한데, 오늘 닥친 상황은 난감했다. 머릿속에선 불평과 불만이 도깨비 방망이질 같다. 그러면서 내심 이런 오만 방자하고 불손한 나 자신을 보게 됐다. 얼굴도 모르는 손님을 스스럼 없이 받아 주시고, 믿고 출타한 주인장에게 불평이라니……. 겸손해져라! 겸손해져라! 겸손해져라!
효진씨에게 페이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목사님께서는 ‘그냥 편할 대로’라고 하셨단다. 대부분 100만원 정도로 소개를 받으니 두 아이까지 150만원을 오는 날 드렸단다. 나도 분명 사모님 주머니에 꽂힌 종이 봉투를 슬쩍 본 기억이 있다. 나는 아직 돈에 대한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글쎄, 대개의 내 성향으로는 서로 불편한 돈 얘기를 시원히 먼저 꺼내 마무리를 짓는 편인데, 이번엔 그러고 싶어지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그냥 있어보고 싶어진다. 무슨 심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느껴지는 대로 간다.
잠도 실컷 자고, 책도 재미있게 읽었고, 얘기도 충분히 하니 참 편안하다. 아까는 잠깐 담배 한 대 피러 바깥에 나갔다가 밤 하늘 별을 보게 됐다. 해가 떨어지면 깜깜 절벽인 이 곳에서는 그저 고개만 들면 별이 쏟아지는 것을 닷새나 지나서야 보게 되다니, 그 동안 난 어디에 고개를 박고 살았을까?
곧이어 목사님 내외가 들어왔다. 교통사고란다. 목사님 혼자 운전하시다 졸음운전으로 다리를 좀 다치셨는데, 차는 꽤 견적이 나올 듯 하단다. 천만 다행이다. 어제 내가 운전 얘기를 드렸건만 사고가 나다니, 드디어 올 것이 왔나 싶기도 하고 내심 걱정과 안도가 교차한다. 앞으론 정말 걸어서 읍내를 다녀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제 모든 식구들이 탄 차가 아니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사모님은 예수님이 굽어 살펴주셔서 큰 사고가 아니라 신다. 믿어지지는 않지만, 위기의 순간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의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늦은 감사 예배 시간엔 나도 절로 찬미가를 부르게 되었다. 지금껏 입 다물고 자리만 지켰건만, 찬미가가 절로 나온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하실 것 같다.
2007-10-14 10:5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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