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ep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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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꿈 벗 가을소풍 다녀왔습니다.
어제는 저녁 늦게 가느라 월악산의 가을 풍경을 감상하지 못했는데,
오늘 아침에 나오면서 까무러칠 듯 아름다운 월악 산길에 매료되었습니다.
참 대단한 모임이더군요. 오직 '꿈'이라는 매개체만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니...
나이, 성별, 직업 등 어느 곳에서도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임에도 꿈을 서로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먼 곳에서 1박 2일의 모임을 스스럼없이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또한 매료되었습니다.
꿈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지요? 그냥 좋게 좋게 살아갈 때는 몰랐습니다. 그 위대한 진리를...
그래서 스티븐 코비가 그랬나 봐요, '위대함의 가장 강한 적은 좋음이다'라고 말이죠.
사방이 좋으면 그냥 거기에 주저 앉게 되니까, 진정한 위대함을 추구하지 않게 되는것이죠.
오늘 가을 하늘은 기어이 옷고름을 풀어 눈부신 쪽 빛 속살을 살짝 내어 보입니다. 시간은 한 없이 여유롭고...
그러나 오늘 저는 이 '좋음'에 안주 하지 않고 제 꿈을 성취하기 위해 한 편의 글을 여러분에 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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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나 나폴레옹보다 시대적으로 훨씬 앞서는 중국의 삼국시대에서도 이와 같이 아군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TPO를 창출하는 유형의 전략을 살펴 볼 수 있다. 삼국지에는 수 많은 전략가들이 출연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조조와 제갈량이 돋보인다.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 인해서 조조는 난세의 간웅이라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후세에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만 근거해서 본다면 당시로서는 가장 성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처음부터 한나라 천자를 보필하여 정통성을 이어 갔고, 국토나 국력, 인재 측면에서도 다른 두 나라(오와 촉)에 비해 월등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손자병법에 대한 최초의 주석을 달 만큼 조조 자신도 전략에 뛰어난 전문가였다. 지금도 가장 많이 읽히는 손자병법의 주석이 그 당시 조조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하니 조조의 학문적 역량 또한 출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조도 당시 최대 군벌이던 원소를 제압하고 북쪽의 평정했다는 초기의 성공에 취해 오만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물리적 역량 측면에서 열세에 있던 오와 촉에 대패하고 자신은 가까스로 목숨만 구해서 도망 나오게 된다. 이 이후로 조조는 매우 신중해지고 더욱 전략적으로 변하게 된다.
조조가 적벽대전의 패배 이후 얻은 첫 승리는 조조의 북쪽을 항상 위협하던 맹장 마초, 한수와의 전쟁에서였다. 위나라 모든 장수들의 마음 속에 드리워져 있던 충격적 패배의 그림자를 걷어 내고, 서북쪽의 군사적 위협을 철저하게 제거한 데 크나큰 의의가 있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비록 지난 몇 개월 동안 교전하면서 위나라 군대가 이기기는 했으나 개전 초기 마초와 한수는 동관이라는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황하 건너 위수 북쪽에서 많은 허점을 드러냈는데도 불구하고 조조는 그 허점을 노리지 않고, 오히려 적이 굳게 방어하는 동관 지역 아래에 주력군을 주둔시키며 많은 날을 마초와 대결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였다. 많은 부하 장수들이 그러한 조조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조의 생각은 달랐다. 적벽대전 이후 훨씬 전략적으로 성숙해진 조조의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조는 적들이 요충지인 동관을 철벽 방어하느라 황하 건너 위수 북쪽에 많은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범한 장수 같았다면 당연히 그러한 허점을 치고 그것들을 발판 삼아 동관을 도모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조는 적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위나라가 군사가 황하를 건너려는 조짐을 보이기만 하면 마초는 황하를 따라 곳곳에 있는 나루터에 군사를 매복시켜 위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는 순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동관 아래에서 지구전을 펼칠 것처럼 군대를 주둔시키고 간간히 전투를 치러왔던 것이다. 그런 차에 소규모 군대를 적들 몰래 도하시켜 적의 측면에서 견제하도록 하여 적들이 꼼짝할 수 없게끔 한 후, 주력군을 황하 북쪽으로 진군시켰다. 만약 이때도 적벽에서 한 것처럼 일을 빠르게 처리한답시고 서둘렀다가는 또다시 끔찍한 패배를 맛보고 말았을 것이다.
조조는 황하를 건너 적의 북쪽을 자치한 후에도 그러한 신중함을 견지한다. 황하를 건넌 후 수레를 엮은 울타리를 세워 남쪽으로 길을 낸 것이나 구덩이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으면서 지키기만 할 뿐 공격하지 않은 것은 적들로 하여금 조조군이 자신들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방어에 치중하다 여차하면 남쪽으로 후퇴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이 들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조조군을 완전히 제압할 자신은 없었던 마초가 땅을 나누고 병력을 철수시키자고 제안했을 때,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적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기습적으로 적의 진지로 진격하니 마치 천둥소리가 너무 빨라 귀를 가릴 겨를이 없는 격으로 마초의 군대는 일순간에 초토화되었던 것이다.
이것 역시 주어진 TPO에서 병사들을 움직여 최선을 다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군에게 유리한 ‘결정적인 TPO’를 조성하여 승리를 거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IP *.239.96.3
어제는 저녁 늦게 가느라 월악산의 가을 풍경을 감상하지 못했는데,
오늘 아침에 나오면서 까무러칠 듯 아름다운 월악 산길에 매료되었습니다.
참 대단한 모임이더군요. 오직 '꿈'이라는 매개체만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니...
나이, 성별, 직업 등 어느 곳에서도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임에도 꿈을 서로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먼 곳에서 1박 2일의 모임을 스스럼없이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또한 매료되었습니다.
꿈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지요? 그냥 좋게 좋게 살아갈 때는 몰랐습니다. 그 위대한 진리를...
그래서 스티븐 코비가 그랬나 봐요, '위대함의 가장 강한 적은 좋음이다'라고 말이죠.
사방이 좋으면 그냥 거기에 주저 앉게 되니까, 진정한 위대함을 추구하지 않게 되는것이죠.
오늘 가을 하늘은 기어이 옷고름을 풀어 눈부신 쪽 빛 속살을 살짝 내어 보입니다. 시간은 한 없이 여유롭고...
그러나 오늘 저는 이 '좋음'에 안주 하지 않고 제 꿈을 성취하기 위해 한 편의 글을 여러분에 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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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나 나폴레옹보다 시대적으로 훨씬 앞서는 중국의 삼국시대에서도 이와 같이 아군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TPO를 창출하는 유형의 전략을 살펴 볼 수 있다. 삼국지에는 수 많은 전략가들이 출연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조조와 제갈량이 돋보인다.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 인해서 조조는 난세의 간웅이라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후세에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만 근거해서 본다면 당시로서는 가장 성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처음부터 한나라 천자를 보필하여 정통성을 이어 갔고, 국토나 국력, 인재 측면에서도 다른 두 나라(오와 촉)에 비해 월등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손자병법에 대한 최초의 주석을 달 만큼 조조 자신도 전략에 뛰어난 전문가였다. 지금도 가장 많이 읽히는 손자병법의 주석이 그 당시 조조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하니 조조의 학문적 역량 또한 출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조도 당시 최대 군벌이던 원소를 제압하고 북쪽의 평정했다는 초기의 성공에 취해 오만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물리적 역량 측면에서 열세에 있던 오와 촉에 대패하고 자신은 가까스로 목숨만 구해서 도망 나오게 된다. 이 이후로 조조는 매우 신중해지고 더욱 전략적으로 변하게 된다.
조조가 적벽대전의 패배 이후 얻은 첫 승리는 조조의 북쪽을 항상 위협하던 맹장 마초, 한수와의 전쟁에서였다. 위나라 모든 장수들의 마음 속에 드리워져 있던 충격적 패배의 그림자를 걷어 내고, 서북쪽의 군사적 위협을 철저하게 제거한 데 크나큰 의의가 있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비록 지난 몇 개월 동안 교전하면서 위나라 군대가 이기기는 했으나 개전 초기 마초와 한수는 동관이라는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황하 건너 위수 북쪽에서 많은 허점을 드러냈는데도 불구하고 조조는 그 허점을 노리지 않고, 오히려 적이 굳게 방어하는 동관 지역 아래에 주력군을 주둔시키며 많은 날을 마초와 대결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였다. 많은 부하 장수들이 그러한 조조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조의 생각은 달랐다. 적벽대전 이후 훨씬 전략적으로 성숙해진 조조의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조는 적들이 요충지인 동관을 철벽 방어하느라 황하 건너 위수 북쪽에 많은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범한 장수 같았다면 당연히 그러한 허점을 치고 그것들을 발판 삼아 동관을 도모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조는 적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위나라가 군사가 황하를 건너려는 조짐을 보이기만 하면 마초는 황하를 따라 곳곳에 있는 나루터에 군사를 매복시켜 위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는 순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동관 아래에서 지구전을 펼칠 것처럼 군대를 주둔시키고 간간히 전투를 치러왔던 것이다. 그런 차에 소규모 군대를 적들 몰래 도하시켜 적의 측면에서 견제하도록 하여 적들이 꼼짝할 수 없게끔 한 후, 주력군을 황하 북쪽으로 진군시켰다. 만약 이때도 적벽에서 한 것처럼 일을 빠르게 처리한답시고 서둘렀다가는 또다시 끔찍한 패배를 맛보고 말았을 것이다.
조조는 황하를 건너 적의 북쪽을 자치한 후에도 그러한 신중함을 견지한다. 황하를 건넌 후 수레를 엮은 울타리를 세워 남쪽으로 길을 낸 것이나 구덩이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으면서 지키기만 할 뿐 공격하지 않은 것은 적들로 하여금 조조군이 자신들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방어에 치중하다 여차하면 남쪽으로 후퇴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이 들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조조군을 완전히 제압할 자신은 없었던 마초가 땅을 나누고 병력을 철수시키자고 제안했을 때,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적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기습적으로 적의 진지로 진격하니 마치 천둥소리가 너무 빨라 귀를 가릴 겨를이 없는 격으로 마초의 군대는 일순간에 초토화되었던 것이다.
이것 역시 주어진 TPO에서 병사들을 움직여 최선을 다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군에게 유리한 ‘결정적인 TPO’를 조성하여 승리를 거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제갈량은 사실 훌륭한 전략가라기보다는 훌륭한 정치가였다고 평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러나 유비가 죽은 후 그 유명한 출사표를 쓰고 출정한 몇 차례의 북벌 원정에서 벌어진 몇 차례의 전투에서는 귀신 같은 전략의 묘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1차 북벌 원정에서는 아쉽게도 아끼던 부하 ‘마속’의 실수로 그 유명한 읍참마속이라는 고사를 남기고 실패한다. 그 이후 출정한 2차 원정에서는 진창이라는 곳에서 위나라의 학소라는 장수와 결정적인 전투를 치르게 된다. 학소가 진창을 굳게 지켰기 때문에 제갈량은 진창을 손에 넣을 수 없었는데, 위나라에서 구원병까지 파견하자 촉나라 부대는 다시 한중 지역까지 물러나와 진을 쳤다. 이에 제갈량은 위연과 강유를 불러 군사 5000을 이끌고 사흘 안에 진창을 공략하도록 공개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관흥과 장포에게는 비밀리에 다른 작전을 지시했다. 위연과 강유가 병사들을 정비하여 진창에 도착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미 진창성의 망루에는 윤건을 쓰고 깃털부채를 든 제갈량이 나타나, ‘너희 두 사람이 늦었구나’라고 하였던 것이다.
제갈량은 이미 진창성의 장군인 학소가 중병에 걸려 누워있다는 첩보를 접하고 학소 부대로 하여금 느긋한 마음을 가지게 하려고 위연과 강유에게 사흘 안에 진창성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공개적으로 내린 것이다. 그런 명령을 내려 놓고 자신은 관흥과 장포에게 비밀리에 명령을 내려 간단하게 군사들을 점검한 뒤 그날 밤 한중을 빠져 나가 밤새도록 진창성으로 달려 간 것이다. 심리적으로 안심하고 있던 적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물리적으로도 적들이 군사를 배치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이미 진창성 안에 투입되어 있던 간첩들이 때를 맞추어 성 안에 불을 지르고 고함을 지르며 혼란을 부추기니 진창성의 위나라 병사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게다가 학소가 중병으로 누워 있으니 이런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아 줄 리더가 없어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제갈량은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난공불락의 진창성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귀신에게 홀린 듯 눈이 휘둥그래 해진 위연과 강유에게 제갈량은 ‘상대방이 생각지 못한 때에 출격하고, 상대방이 준비하지 못한 때에 공격하라’라는 병법의 한 구절을 얘기하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제갈량의 사례는 앞선 조조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TPO가 확연히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아군에게는 결정적으로 유리하고, 적군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TPO를 스스로 창출해 냈다는 것이다.
제갈량은 이미 진창성의 장군인 학소가 중병에 걸려 누워있다는 첩보를 접하고 학소 부대로 하여금 느긋한 마음을 가지게 하려고 위연과 강유에게 사흘 안에 진창성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공개적으로 내린 것이다. 그런 명령을 내려 놓고 자신은 관흥과 장포에게 비밀리에 명령을 내려 간단하게 군사들을 점검한 뒤 그날 밤 한중을 빠져 나가 밤새도록 진창성으로 달려 간 것이다. 심리적으로 안심하고 있던 적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물리적으로도 적들이 군사를 배치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이미 진창성 안에 투입되어 있던 간첩들이 때를 맞추어 성 안에 불을 지르고 고함을 지르며 혼란을 부추기니 진창성의 위나라 병사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게다가 학소가 중병으로 누워 있으니 이런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아 줄 리더가 없어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제갈량은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난공불락의 진창성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귀신에게 홀린 듯 눈이 휘둥그래 해진 위연과 강유에게 제갈량은 ‘상대방이 생각지 못한 때에 출격하고, 상대방이 준비하지 못한 때에 공격하라’라는 병법의 한 구절을 얘기하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 진창성 기습 작전의 핵심은 첫째는 기밀이고 둘째는 신속이다. 위나라에서도 학소의 병이 위중하다는 것을 알고 장합이라는 장군을 파견해 진창성을 대신 지키고자 했다. 적의 눈과 귀를 속이기 위해 제갈량은 겉으로는 느린 척하면서도 안으로는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위연과 강유에게는 사흘 안에 진창을 점령하라고 함으로써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헷갈리게 하고 자신은 한밤중에 몰래 출병하여 서둘러 진창성에 이르렀던 것이다. 3000의 군사를 이끌고 학소를 대신하러 오던 장합이 미처 도착도 하기 전에 제갈량은 기습적으로 성을 함락한 것이다
제갈량의 사례는 앞선 조조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TPO가 확연히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아군에게는 결정적으로 유리하고, 적군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TPO를 스스로 창출해 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전투에서나 한신의 배수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전략의 개념은 ‘전쟁이나 전투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병사들을 그 어떤 TPO 하에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역량’에서부터 시작하여 제갈량, 조조, 프리드리히, 나폴레옹 등을 거치면서 ‘물리적 힘의 원리를 극복할 수 있는 TPO를 조성하여 상대적으로 적군을 압도하는 우위의 창출 ’로 진화하여 왔다. 다시 말해 ‘주어진 TPO에서 원하는 성과를 내는 방안’이라는 관점에서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TPO를 창출하는 방안’이라는 관점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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