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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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하고 글이 안 써진다. 언어창고를 포맷이라도 한듯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렇지 않았었다. 쓰고 싶은 것이 떠오르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릴 때부터 신이 났다. 그러다가 얼추 형태가 잡히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이 짜릿할 정도로 쾌감이 일었다. 하늘에서 빙빙 돌던 솔개가 수직으로 내리꽂혀 병아리를 나꿔채 날아오르듯, 내 글쓰기는 거침이 없었다. 글의 수준이 대단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정도로 글을 쓰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자꾸 브레이크가 걸린다. 음악듣고 산책하고 와인까지 한 잔 마시고도 선뜻 컴퓨터 앞에 앉아지지가 않는다. 연신 시계를 쳐다본다. 글쓰기가 힘들어서 몸이 비틀어진다는 사람들 심정을 이해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나, 도대체 원인이 뭐지? 2,3일 동안 곰곰이 생각한 결과, 그 대답은 ‘너무 재미없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가슴이 설레어 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닌 남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라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돋아나는 생각을 보듬어주고, 물을 주고 키워 더 큰 실험으로 연결할 생각을 놓은 지 오래이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쓰던 원고는 안 써 진다고 밀쳐놓았고, 어느새 강좌에도 익숙해졌으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고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시선이 건조해지고, 감탄이 사라져, 가슴팍에서 메마른 먼지가 일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가만히 있는 것은 퇴보였구나. 생활이든 업무든 늘 염두에 두고 더 좋은 것으로 가꾸어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이렇게 빛이 바래는 것이었구나. 원인을 진단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면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글쓰기가 무엇인가? “내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어디 한 번 쓸만한지 봐주쇼” 내 생각을 여러 사람에게 펼쳐놓는 일 아니든가? 글쓰기는 언어를 통한 존재의 확인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하는 일이다. 그런데 내보일 것이 없는 것이다. 동지섣달은 커녕 만물이 피어나는 봄날이 와도 꽃대 하나 올릴 일 없는 메마른 일상 밖에 없었던 것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재미있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나로서는 득도 수준의 깨달음이었다. 글쓰기가 드디어 나를 사람만드는구나 싶었다. 워낙 말수가 적은데다 지나치게 의미중심적이라 지극히 멋대가리 없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는 내 고질적인 데면데면함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전히 글쓰기를 위해서라도 사람을 만나고, 아티스트데이트를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재미있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글은 감흥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쁘고 좋은 것, 하고 싶은 일에 접했을 때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흥분이 고스란히 글의 행간에 저장되었다가 읽는 사람에게 전달된다. 사회정의를 향한 문제의식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협심이 글에 생기를 준다. 우리가 어떤 일에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의 감각은 최고로 고조된다. 두 눈은 반짝이고, 볼은 상기되고,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연신 벙글거려져 사랑에 빠진 것을 숨길 수 없듯이, 우리의 글에도 활기가 가득 찬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주위에 생기와 부러움을 퍼뜨리듯,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쓴 글은 읽는 이를 자극한다. 반대로 의무감에서 혹은 관심이 덜 무르익었을 때 쓴 글은 ‘식은 피자’처럼 식욕을 돋구지 못한다. 삶에 대한 탐구심부터 회복해야겠다. 늘 배우고 익혀서 나날이 성장하는 자의 자부심으로 무장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창을 활짝 열어야겠다. 나부터 사는 재미에 푹 빠져있어야 독자의 눈길을 잡아챌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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