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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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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4일 12시 56분 등록

전도연이나 김혜수도 매력있지만 나는 고현정이 더 좋다. 고현정에게는 그녀들에게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스토리이다. 나는 2007년 3월에 고현정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물론 그녀에게 보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당신 참 예뻐요. 당신을 보면 ‘아름다움은 권력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지요. 전설적인 드라마 ‘모래시계’의 정점에서 사라졌던 당신. 이름만 들어도 거창한 삼성가로 시집을 갔지요.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원에 가다가 파파라치에게 사진을 찍혔을 때, 애들 사진만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는 당신에게서 조신한 엄마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 당신이 10년만에 이혼을 하고 다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이혼당시 6세, 8세인 남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얼굴을 보지 않기로 했다지요. 어느 핸가 크리스마스 새벽에, 한강변에서 혼자 포르쉐를 탄 당신이 포착되는 등, 결혼생활이 삐걱거리는줄은 알았어도 이혼까지 할줄은 몰랐다고 측근이 말했습니다. 남의 결혼사를 속속들이 알 재간이야 없지만, 여자에게 주어지는 조건이 명문가의 무게만큼 더 중압적으로 내리누르기밖에 더 했겠습니까.


나는, 화면에서 당신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합니다. 저 연기가 그냥 연기가 아니지. 아직 어린 아이들을 만날 수 없는 어미의 몸부림이요, 재벌가의 후광을 박차고 나와 이혼녀라는 주홍글씨를 붙이기까지 피눈물나는 결단의 소신아니겠나. 내 감수성에 응답하듯 당신의 발걸음에 거침이 없군요. ‘봄날’에서의 조심스러운 행보 이후, ‘여우야 뭐하니’와 ‘히트’에서, 계속 자기영역을 파괴해가는 도전이 눈부십니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뿐만 아니라 넘쳐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연기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당신모습이 보기좋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연기자의 재능과 끼를 발휘하면서 살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처럼 혹독한 댓가를 치루지 않고도 당신의 길을 갈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당신이 연기자로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연기 안에서 맘껏 부숴지고 연기 안에서 맘껏 춤추기 바랍니다. 그것이 자유의 맛이니까요.


마침 가수 백지영이 결혼하는 지인을 보며 울고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습니다. 그 사진을 본 딸애가 말합니다. “어려울 때 많이 도와줬나 봐”

그 말을 들으며, 비슷하게 힘든 일을 겪은 오현경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백지영은 오직 노래실력으로 승부해서 다시 정상에 섰습니다. 내 잘못은 아니었으나, 빠져나올 수 없을 것같던 인생의 올가미로부터 날아올랐습니다. 화려한 비상입니다.


반면 오현경은 결혼을 택했습니다. 결혼은 무책임한 대중의 마녀사냥으로부터 어떤 보호장치도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상처에 상처를 더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결단했듯, 백지영의 정면승부가 오늘의 그를 있게 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길을 감으로써 우리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결혼을 비롯해서 타자가 주는 명예는 진짜 우리 것이 아닙니다.


고현정, 그래서 당신이 소중합니다. 두 번 다시 타자의 굴레와 구원의 길을 착각하지 않기를. 오직 연기로 말하는 연기자의 삶을 살기를. 그렇게 살아가면서 동반자가 나타나면 좋고, 설령 외롭더라도 진정한 자유인의 길을 가기를. 삶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안 뒤에야, 삶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당신에게 환호를 보냅니다.


이 글을 썼을 때는 아직 고현정이 날개를 펼치기 전이었다. 10년간의 공백으로 연기에 대한 감을 잃었을까봐 두렵고, 개인사에 억눌려 언행이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그녀는 ‘선덕여왕’의 미실 역으로 정상에 올랐다. 시청자들은 그녀의 신들린 연기에 빨려들었고, 그녀에게서는 여왕의 후광이 뻗쳐 나왔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개인사 따위로 폄하될 수 없는 위치로 등극하였다.  소신을 가지고 오래 가는 여배우의 탄생만으로도 기쁜 일이지만, 내게는 그녀가 이룬 쾌거가 좀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 온다. 혼자 힘으로 재벌가의 구성원보다 더 화려한 부와 명예를 차지한 것이 통쾌하기 그지없다. 혹시 알랴. 그녀를 보며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재벌가의 며느리가 있을지? 그런 뜻에서 고현정은 다양하고 개성있는 삶을 전파하는 데 단단한 역할을 했다. 주체적인 삶이 주는 영화가 얼마나 큰지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현정은 한 인터뷰에서 “내 연기는 내가 포기한 소중한 것들에 대한 위로”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TV를 보며 배우로서의 엄마를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나는 애들이 한참 예쁠 때 마음껏 사랑해 주어서 아쉬운 것이 없어요. 우리 아이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고 있는데 인생에 고통 하나가 없다면 그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이 말을 들으며 내가 고현정에게 느낀 매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삶의 이면을 알아버리고도 삶을 사랑하는 자, 자신의 삶을 장악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의연함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보여주듯이 겪을 것 다 겪은 후에 확인한 나의 길, 그 길에서 있는 힘을 다 해 도달한 지점, 고통으로 이룩한 평화가 내 삶이다. 내 것만이 내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일파만파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건네준다.


막 케이블TV 엠넷에서 주최하는 ‘수퍼스타K 2'가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처음에는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이 너무 잔인해보이고, 선정적인 흥미를 강요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서바이벌’이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관심있게 지켜보게 되었다. 노래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합숙하며 우정과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가운데 경쟁은 냉정하게 계속된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삶의 단면을 지켜 보았다. 떨어져 살던 엄마가 방청석에 찾아와 주었으며, 미국인아버지도 약속을 지켜 와 주었다. 천재성을 지닌 소녀가 무대불안증으로 일찍 퇴장했는가 하면, 자기표현이 과도한 참가자가 네티즌으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탈락자들은 자신이 탈락했다는 사실보다도 멤버들하고 헤어지는 것을 더 아쉬워했다. 그리고 이제 승부는 두 사람으로 좁혀졌다.


미국에 거주하는 엄친아 존박과 환풍기를 설치하는 허각의 승부는 작지만 반전이 있는 드라마였다. 키크고  댄디한 매력남이 이길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이어졌다. 스타는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기에 문자투표의 비중이 무려 60%였다. 내 생각에는 존박시나리오가 너무 일찍 나왔다. 너무도 당연시되었기에 그대로 된다면 김빠진 맥주같을 그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는 중에 허각의 자신감이 뒤늦게 터져나왔다. 그것은 이번이 마지막 무대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나왔다. 내세울 것 없는 환경에서 비롯된 위축감이 오기로 바뀌기도 했을 것이다. 서서히 사람들의 시선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존박에게 열광하는 여자팬들에게 이 승부를 맡겨둘 수 없다는 사명감, 노래실력으로는 절대 빠지지 않는 허각의 인생이 역전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번져갔다. 나와 딸은 기꺼이 허각에게 문자투표를 밀어주었다.



각1.JPG


허각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며 예능보다는 콘서트를 열심히 하는 가수가 되어달라고 주문하는 이승철의 심사평은 감동적이었다. 그가 허각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듯 만점에 가까운 99점을 주었을 때, 허각의 표정이 감격에 떨었다. 나는 그 두 사람에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나중에 이승철이 눈물로 허각의 인생역전을 축하해 주는 것을 보며 우리 모두 감동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토리, 좀 더 감동적인 스토리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스토리의 제왕이라면 단연코 소설가 김영하일 것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스토리공부를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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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10.24 17:08:13 *.197.63.13
변경과 인연하게 된 이후 본의 아니게 TV와 멀어져 인터넷에 연일 떠오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무언지 잘 몰랐는데, 이제야 잘 이해되네요. 그래요, 우리가 보고 싶고 느끼고 싶고 달성하고 싶은 그것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삶의 진한 이야기와 펄펄 끓는 휴머니티가 스며져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참 지나치게 약고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야무진 선택들만이 확연히 난무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더러 있곤 하지요. 마치 세상을 다 알고서 좀 더 근사하게 살아가려는 듯한 모습에 질려버릴 때가 있다고나 할까요.

고현정과 삼성에 대해서는 역시 큰 물에서 노는 사람들 답게 신사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해요. 졸렬하지 않은 면이 보기에 좋더라고요. 서로를 살게 해주고 일체 비방하지 않으며, 가능하면 도와주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곤 하지요. 그런 면에서 삼성 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물론 자신의 정체성을 연기에서 찾을 수 밖에는 없는 고현정의 남다른 고뇌도 이해가 되고요.

저는 다시 침묵과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 해요.^^ 빛이나 희망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탐하기보다 직시함과 부족함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하며, 차분히 당면의 문제들을 풀어보아야겠어서요. 여태도 그 지경이냐면 할 말 없지만 이제라도 현주소를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할 테죠. 물론 침묵 마저도 글로 형언해 볼 수 있기를 갈망하면서요.^^
재미있게 읽었네요.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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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10.25 09:09:58 *.108.48.61
'어둠', '허울좋은 명분' 같은 말에 잠깐 가슴이 철렁했지만
직시와 심도있는 고민이라면 언제고 있어야겠지요.
내가 고현정을 볼 때마다 관심이 가는 것은,
그녀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사는 것도 흔치 않겠다 싶어서인데요.
그 시선을 그대로 내 삶에도 적용해 본다면,
내 삶이 어떤 이야기가 되어야 할 지
그야말로 직시하고 심도있는 고민을 하고,
그 대답에 따라 그 길만 가야겠지요.
이제 한눈팔 시간도 별로 없으니...

여태도 그 지경이냐 그런 생각 안해요.
마음을 따라 담대하게 가기를,
그 과정에 만족감과 성과가 함께 하기를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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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일
2010.10.24 21:09:42 *.180.231.159
편지는 부쳐야 쓴 보람이 있죠. 지금이라도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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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10.25 09:11:40 *.108.48.61
ㅎ ㅎ 그 말씀은 제 편지에서 진정성이 읽힌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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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0.24 21:14:42 *.129.207.200
명석님도 아름다우세요. 

위 글을 읽으며, 소설 써나가셨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장편의 글을 쓰셔서, 이름을 높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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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10.25 09:18:12 *.108.48.61
분명히 더 낫고 열심히 쓴 책인데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책을 볼 때 가슴이 철렁하지요.
서점 종사자의 손에서 매대에 눕혀지느냐, 책꽂이로 가느냐의 차이!
이래서 첫 책이 성공해야 한다는 거구나 싶어요.

인간과 삶에 대해 좀 더 총체적인 말이 하고 싶어지면 소설이 써 보고 싶어질지도.
능력은 택도 없지만, 덕담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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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4 23:45:29 *.230.26.16
아름다운 글입니다.
그동안 올라온 글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곧 감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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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10.25 09:23:08 *.108.48.61

어느 정도 글을 쓰다보니 내 속내의 발산보다는 자꾸 독자 생각을 하게 되어
직관과 멀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독자 생각을 한다는 것이 더 메마른 글을 건네게 되는 거지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참인데 그걸 알아봐주었다니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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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10.26 15:23:18 *.192.234.192
집에 케이블 TV가 나오지 않아서 슈스케를 보지 못했지만(사실 볼 생각도 없었음)
하도 화제가 많이 되서 대략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는 알고 있었죠.
맞습니다.
스토리의 힘은 강하다.
허각이 존박을 이긴 것은 스토리다.
외모보다 스토리의 힘이 세다.

그래서 그런가요.
이것저것 머리 속에서 따지는 게 많아서 그런가요.
갈수록 책을 쓰는 게 더 힘들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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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10.27 09:52:52 *.108.48.83
나도 두번째 책 쓰다보니 내 문장이며 관심사가 너무 빤한 것 같아
빨리 내겠다는 욕심을 버렸네요.
연구원 1년차 2년차 시절의 초심과 직관을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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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1 13:19:40 *.124.233.1
고현정, 백지영, 슈스케, 김영하 그리고 스토리..
새로운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도와주시네요..
선생님의 글들은 단행본 참고 기다렸다가
몇 개의 글을 단행본처럼 한꺼번에 읽어야 속이 후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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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11.01 22:00:46 *.122.248.185
꾸준히 읽어주어서 감사할 뿐임다.^^
하고싶고 할 줄 아는 것이 딱 한 가지 뿐이니
계속 걸어나가는 수 밖에 없겠지요.
그 과정이 후배들에게 하나의 사례가 된다면 더 이상 기쁜 일이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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