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있어서 저도 늦게 글을 올렸습니다만, 다른 분들도 연휴를 즐기시느라 새 글이 올라와 있지를 않네요. 염체 무릎쓰고 '재미 있는 전략이야기'를 올립니다. 4편과 이어지는 것이라 바로 위에 올리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네요....
꿈벗 23기가 따로 운영하는 카페에도 같은 글을 올리는데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들이 늘어 나고 있습니다. 동건친구께서 꾸준히 댓글 달고계신데, 얼마전에는 출장에서 돌아 오신 총무님도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딸랑, 두 명... 그래도 이렇게 댓글 달아 주시니 눈물이 나도록 감사합니다.
지금 초벌 쓰기 한 작품을 계속해서 올리다 보니 재미 있다가 없다가 하는데 꾸준히 읽어 주시고 좋은 의견들 주시면 두벌, 세벌, 네벌 쓰기 하면서 일반인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또 교양지식을 함양하는데도 손색이 없는 작품을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시오노 나나미와 같은 풍의 글을 쓰고자 합니다. 하나의 테마를 잡고 다 아는 얘기임에도 거기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그 아줌마, 아니 할머니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꼭 그렇게 된다기 보다도 열심히 노력해 보는거죠....^^
추석을 넘기고 나니 가을 날씨가 마치 전설에 나오는 날씨처럼... 이 세상같지가 않네요...
자주 자주 들르시고, 좋은 얘기들 많이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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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쟁 당시 프리드리히 대제는 동시대에 무모한 전쟁의 대명사인 스웨덴의 칼대제를 반면교사 하여 초강대국들과의 전쟁에서 처음부터 승리를 목표로 하지 않고 ‘시간 끌기’를 목표로 하였다. 당시의 상식은 전쟁은 승리를 쟁취하여 경제적 이익을 탈취하고자 수행하는 것이었음- 전쟁의 목적은 적을 격파하는 것이지, 단순히 패배를 피하는 것이 아니다.- 에도 프리드리히의 목표는 당시로서는 상식을 깨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렇게 전쟁의 목표가 상식에서 벗어나자 그가 수행하는 전투 및 그 방식도 상식에서 벗어났으며 이를 적들이 예측할 수 없었다. 가령, 동맹국들이 서로 협조하기 힘들도록 동맹국들의 중앙에 위치하고 항상 적이 증원되기 전에 아군을 집중하여 효과적인 전투를 치러냈다. 한 순간에 적보다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싸우다가 적이 증원되면 멀찍이 빠지는 전략을 쓴 것이다.
이로 인해 ‘이기지도 않고 지지도 않는’상태가 7년간 지속되었고 결국 프로이센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던 러시아부터 연합에서 탈퇴하기 시작했으며 종국에는 초강대국의 연합이 스스로 와해되어 7년 전쟁은 승리와 패배 없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하지만 프리드리히 대제는 그가 세웠던 목표 ‘시간 끌기’를 통해 적들의 와해시켰으며 이로 인해 약소국의 이미지를 벗고 명실상부한 유럽의 강대국 반열에 오르는 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격의 전쟁은 그 당시 유럽에서 혁신적인 것이라, 프랑스의 군사상가인 기베르 백작은 7년 전쟁을 연구하다 프리드리히 대제가 전쟁에서 일으킨 이러한 혁신에 영향을 받아 ‘la strategique’라는 개념을 개발했는데, 이 단어가 바로 현대적 의미로서 strategy의 시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프리드리히 대제 사후 20년 뒤, 이 ‘la strategique’에 가장 완전하고 비길 데 없는 의미를 부여한 영웅이 탄생하였으니 그가 바로 ‘전쟁의 신’인 나폴레옹인 것이다. 나폴레옹은, 적어도 서양에서는 아직까지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항상 전쟁을 벌이기 전에 며칠씩 고심하며 주요 전투들을 기획하여 자신의 의도대로 전투를 이끌고 가는 주도면밀 함을 보였다.
나폴레옹은 보통 전쟁을 기획할 때, 사나흘씩 혼자서 큰 방의 바닥 위에 깔아둔 지도 위에 엎드려 색깔을 입힌 핀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여기서 그와 싸울 것이다. 스크리비아 강의 평원에서 .”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그 예외가 워털루 전투처럼 치명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기획했던 대로 진행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초인적인 선견지명은 컴퓨터처럼 정교한 두뇌가 계산을 통해 얻어낸 산물이다. 적의 장군이 택할 수 있는 모든 대안들을 고려한 뒤에, 나폴레옹은 하나씩 차례대로 우연성이 개입해서 초래될 효과를 고려하며 각각의 사태에 대한 해답을 만들어 갔다고 하니 가히 전생의 신이라 할만하다.
나폴레옹 전략의 핵심은 열세한 병력이라도 결정적인 지점과 시간에 상대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투입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식량의 현지 조달, 스스로 결정하고 기동하는 사단 편성, 그리고 계획적인 분산 및 집중의 원칙을 적용하였다.나폴레옹 이전에는 진격할 기동로를 따라 보급 물자 창고를 사전에 준비했으나 나폴레옹은 이를 폐지하여 기동의 혁신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혁신된 기동력으로 인해 당시 유럽에서는 ‘나폴레옹 군대는 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발로 싸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적군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나폴레옹으로 하여금 적에게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력을 전개하고, 아군을 분산시키지 않은 상태로 적을 공격하고, 자신의 측방을 노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적의 측방으로 기동, 공격하는 ‘배후 기동 작전’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전략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폴레옹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배후 기동 작전’은 공격을 위해서든 방어를 위해서든 자신의 군대를 강력한 정면 진지에 두는 것을 선호하는 장군들의 성향을 이용해 전투의 혼란 속에서 절반의 병력을 적과 정면으로 교전하려는 것처럼 위장했고, 그 사이 나머지 병력은 적의 측면이나 배후로 비밀리에 기동시키는 것이었다. 측면 공격이 노출되었음을 감지한 적은 일순 당황하게 되고, 당면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열을 재배치 하게 되는데, 이 때 단결력과 균형이 깨지는 엄청난 약점이 노출되는 것이다. 그 때를 나폴레옹은 놓치지 않고 집중 공격하여 돌파구를 만들고 적을 분산시킴으로써 적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전투의지를 꺾고 승리를 쟁취하였다.
‘전쟁론’의 저자인 클라우제비츠의 말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항상 최소한의 인력과 노력을 들여 완전한 승리를 얻고자 열망했다고 한다. ‘앞으로 나는 전투에 패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 1분의 시간도, 단 1명의 병사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그의 어록을 봐도 얼마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전투를 열망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 결과, 그는 병력을 총동원하고 전력을 다해 밀어 붙여서 승리를 하더라도, 아군 역시 만만치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싫어했다. 이러한 전투는 필연적으로 비경제적이고, 어느 한 편의 완전한 승리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령 고대의 전쟁은 이렇게 비경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대신 그는 적을 정면에서 위장공격으로 포위한 후, 적의 후면이나 측면에 자리 잡기 위해 기병대의 경계진이나 자연 장애물로 가려진, 최대한 빠르고 안전한 경로로 그의 주력 부대를 이동시켰다. 일단 이러한 작전이 성공적으로 완수되면 그는 자연 장벽이나 ‘전략적 장막(보통 강줄기나 산맥)’을 점령해 모든 횡단로를 차단하고 그래서 그의 적을 측면 보급선에서 고립시키고 증원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 후 나폴레옹은 가차 없이 적군을 향해 진격해 적에게 두 가진 선택권을 남겨 주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곳에 싸우거나, 항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후 기동 작전’이 주는 이점은 분명했다. 적군은 기습당하는 동시에 측면에서는 통신로와 보급로를 차단 당해 사기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적이 심리적으로 와해가 되면 물리적으로 와해시키는 것은 죽을 각오로 덤비는 적을 와해시키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인 전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은 언제나 적의 심리를 먼저 공격한 후, 물리적 전투를 시도하였다.
이렇게 프리드리히와 나폴레옹의 시대를 거치면서 전략의 개념을 한 단계 더 진화하게 된다. 프리드리히나 나폴레옹 이전까지 전략이 ‘전쟁이나 전투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병사들을 그 어떤 TPO 하에서도 병사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하였다면 그 이후에는 전략을 ‘힘의 원리를 극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TPO를 조성하여 한 순간에 상대적으로 적군을 압도하는 우위의 창출 ’로 혁신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고대 전쟁에서 환경을 전제 조건으로 받아 들이고 주어진 환경에서 병사들을 장군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중요시 했다면 프리드리히나 나폴레옹은 적을 심리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결정적인 환경의 창조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전쟁에서의 CSF (Critical Success Factors)도 ‘병력의 수’에서 ‘병력의 수를 극복할 수 있는 TPO의 창조’ 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