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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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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5일 02시 58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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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되면,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는 질문에 곤혹스럽다. 놀고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대충 얼버무리면 '뻔하다'는 표정으로 쳐다 보면 위축된다. 여행사에 다닐 때는 친구나 지인에게서 곧잘 전화가 왔다. 항공권과 싼값에 나온 상품이 있는 지 물어왔다. 약하게나마 내 브랜드가 생긴거다. 회사를 나오자, 이 브랜드는 바로 사라졌다. 퇴사했다고 이야기하면, 더 이상 전화는 오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는 '무엇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하기가 점점 시간이 걸리고, 복잡해진다. '직업이 무엇이냐? 뭐 해먹고 사냐?'라는  질문은 하지않았으면 좋겠는데, 정작 상대가 물어보지 않으면, '내 모습이 백수같나? 혹은 나에게서 백수냄새가 나나? '라는 망상에 빠진다. 일이 없으면 더워도 차갑고, 차가워도 더운 지경이 된다. 망가진다.

지속적인 일은 사람에게 질서를 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규직과 안정적인 직장은 지금 보다 더 줄어들 것이다. 직장인들의 경제활동은 연예인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연예인들은 방송활동 보다는 부수적으로 들어오는 행사가 주 수입원이다. 지속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서는 방송활동도 열심히 해야하고, 새로운 콘텐츠도 개발해야 한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전업작가가 글쓰기만으로 먹고 살려면, 자전거 페달 밟듯이 쉼없이 써야한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더 다양한 포트폴리오와 수입원을 만들 수 있다. '자기관리'란 시간을 배분하는 일이다. 최상의 질을 추구한다고 한없이 늘어질수도 없고, 속도를 추구한다고 내용없이 끝낼 수는 없다. 완벽하게 준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맨땅에 헤딩해서도 안된다. 정글의 삶처럼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조직 안에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파악이 안된다. 특히나 회사를 바라보는 외부인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외부인이 당신 회사는 괜찮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소귀에 경읽기가 된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좋은 면보다는 나쁜 점을 더 많이 보기 때문이다. 지옥같은 상사, 많은 업무, 보이지 않는 비젼만 보면 당연히 좋은면이 안보인다. 불평이 쌓이면, 반드시 언젠가는 나온다. 처음 조직을 나오면, 작가가 빈 원고지를 볼 때의 무력감과 화가가 하얀 캔버스를 볼 때의 막막함을 느낀다.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고, 이제는 혼자 일해야 하기에 그 추진력은 약하다. 처음에는 발끈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쯤 되면, 몸 담고 있던 조직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불평했던 일들은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조직에나 어떤 회사원이건 갖고 있는 고민들이다.

성격이 조급한데, 이른 나이에 퇴사를 해서, 빨리 매운맛을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더 조심스러워졌고, 더 진지해졌다. 상처는 성장으로 치유한다. 성장할 때, 상처는 자양분이 된다. 잦은 이직과 백수시절은 암흑기였다. 좋아하는 일 찾겠다는 의도였는데, 찾을 수 없었다. 막판에는 어떤 일이든 좋으니, 일을 하고 싶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 '쓸모없는 놈'이라는 생각에 파멸할 것 같았다. 당시 힘들지 않았다면, 지금도 감사하지 못하고 여전히 불평만 늘어놓았을 것이다.

닭한마리에 이어, 순대국집을 오픈했다. 인테리어가 끝난 업장에 들어가니, 무엇이 필요한 지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해야할 일도 순서가 잡히고,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손님이 없으면, 시간만 떼운다고 생각한적이 있는데, 현장에 있는 시간은 알게 모르게 나에게 도움이 된다. 사람은 머리뿐만 아니라, 오감으로 배운다. 음식장사는 특히 더 그렇다. 눈과 코, 귀, 피부로 느껴지는 분위기 감지능력이 실력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더니, 사람들도 나를 장사하는 사람으로 봐준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나의 브랜드다.

'브랜드 아이덴터티'구축에 착각하는 것이 있다. 브랜드는 내가 만든다기 보다,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에 결정된다. 내가 일을 해나가는 태도를 보고, 사람들은 나에게 이름을 붙혀준다. 쉽게 말하면, 평판이 나의 브랜드다. 따라서 아무리 머리 쥐어짜서 그럴듯한 네이밍과 이미지를 만들어도, 무의미하다. 브랜드는 며칠만에 나 혼자 만든다기 보다, 몇년에 걸쳐서 자연스럽게 쌓여진다.또한 경력 로드맵도 허상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어떻게 계획하는가? 과거 연공서열에 종신고용이었을 때는 로드맵을 그릴 수 있었다.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1세기를 주도했던, 직업과 직장이라는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일은 단발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직장도 없고, 직업도 의미 없다. 굳이 이름을 부칠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작업의 복잡함과 난이도 정도에 따라서 수수료를 받는다. 00전문가가 아니라, 나의 존재는 내가 만들어놓은 결과물에 결정된다.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서, 결정해도 이미 그 일은 수요가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눈 앞에 보이는 일이 내 일이다. 일과 직업은 매우 심플해졌다. 그리고, 희귀해져간다. 밀림의 사자가 먹이를 찾는 듯하다.

욕쟁이 할머니 만큼은 아니어도, 손님에게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손님과의 유대감이 재미있다. 언젠가 말했지만, 나는 외식업을 끔찍히 싫어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가게에서 일할 때면, 고약한 인상을 하고, 서빙을 보았다. 짜증 나는 손님에게 폭발한 적도 있다. 일은 좋고 싫고가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은 나에게 먹거리를 주고, 질서를 부여해준다. 세상은 먹고 살기 힘들고, 아무도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일은 감사의 대상이다.

발전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일에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을 배워 나감에 따라 궁긍적으로는 관심을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_몰입의 경영297_칙센 미하이]

좋아하기 때문에 집중한다기 보다는 집중하다보니까 좋아하게 된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지 않고, 만든다.

IP *.129.20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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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9.05 11:53:46 *.209.229.61
'닭 한 마리'에 이어 순대국집을 오픈했다면,
두 가지를 겸하는 건지, 아이템을 바꾼 건지요?
많이 바쁘고 신경도 많이 썼겠군요.
이 모든 시도와 경험이 모두 쓰일 날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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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9.09.05 19:06:16 *.129.207.200
'닭한마리'는 미아리에
'순대국집'은 동대문에 있습니다.

4개까지는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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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7 01:21:23 *.66.174.80
두군데 다 체인점본사를 끼고 하시나 봅니다.
전 식당을 직접 운영하진 않지만 식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진에 순대국이란 말이 친숙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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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9.09.07 06:35:34 *.227.177.35
순대국은 체인입니다.

닭한마리는 저희가 운영합니다. 작년에 찜닭 프랜차이즈 가맹했다가 고생한 적이 있어서, 프랜차이즈 본사는 신중하게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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