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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5일 04시 18분 등록

개인브랜드 시대에 직장인은 현업 말고,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자신의 업무를 콘텐츠화 해야한다. 피터드러커는 전문가는 자신의 지식을 일반사람에게 쉽게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제 그 일은 의무가 아니라 필수다. 소비자는 같은 값이면,친절하게 설명이 많은 상품을 선택할 것이고, 같은 음식점이라면, 블로그를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 먹을 것이다. 글은 모든 콘텐츠의 기초다.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은 출판강국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도 년간 수많은 종의 책을 출간하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딱 10배다. 부러운 것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도 많고, 보는 사람도 많다. 잡지사는 판매만으로 운영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광고를 실어야 하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개성있고, 실험적인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

영화는 시나리오를 써야하고, 이벤트, 사업 또한 기획서를 써야 한다. 글쓰기에 대한 압박은 더 심해질 것이다. 무엇을 하든, 글 잘쓰는 CEO, 글 잘쓰는 정치가, 글 잘쓰는 큐레이터, 글 잘쓰는 대학교수, 글 잘쓰는 장사꾼....처럼 직업 앞에는 '글 잘 쓰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인정을 받는다.

인정 받는다는 것은, 타인이 나를 '기억한다'는 이야기다. 생활속에서 무언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을 떠올린다. 여행을 갈 때, 보험에 관해 물어볼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때 떠오르는 속도와 강도가 해당 사람의 브랜드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타인이 나를 불러주지 않거나 기억하지 못하면 도루묵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사람(the one)'은 많지 않다. 일이 희귀해지는 시대에, 누군가 나를 기억해서 연락을 준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일도 부익부 빈익빈인데, 일을 완결하면 포트폴리오가 생기는 것이고, 그 포트폴리오가 또 다른 일을 부른다. 일이 없는 사람은 포트폴리오가 없기에, 일이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

마켓팅과 홍보는 이런 필요성 때문에 전문화 되었다.  예전에는 '잘하기만 하면' 입소문이 났다. 지금은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마켓팅 전략을 세우고 다각적으로 홍보를 해야한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가수나 배우들이 해외로 진출한다. 어느 음악평론가는 곡이 좋고, 노래 잘 부른다고 해외 진출을 낙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승부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포지션에 최대화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는 선인세만 10억이 넘었다.(그나마 체면유지 할 수 있는 것은, 이번 배용준이 출간한 책 판권이 일본에서 8억원에 팔렸다. ) 라이센스를 딸려면, 한국의 출판사들이 일본의 출판사에 가서 경쟁 피티를 해야한다. 일본의 그 오만함이 한만디로 가관이지만 어쩔 수 없다. 무라카미표 콘텐츠가 워낙 좋기 때문이다. 혹은, 좋다는 인식이 대세다. 너도 나도 산다. 판권을 따오자마자 번역해야 하고, 한국책으로 디자인을 다시 한다. 출간이 늦을수록 독자는 흥미를 잃고, 매출은 떨어질 것이다. 10억이면, 출판사의 사활이 결정되는 액수다. 분초를 다투는 싸움이다.  이번 1Q84의 한국어 출판은 무라카미하루키보다, 번역자와 출판사의 노력이 더 눈부셨다. 도대체가 이렇게 빨리 책이 나올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국내에서 또 홍보를 해야한다.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버스와 인터넷, 신문기사등 신비롭게 포장하고, 널리 알린다.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질, 홍보, 그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만큼 '그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 또한 콘텐츠의 질과 홍보 사이의 균형도 맞추어야 하기에 자기관리도 철저히 해야한다. 내 일만 열심히 해서는 안되고, 그렇다고 물건없이 영업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개인이 자신을 홍보하는 기초적인 방법은 '글'이다. 전문가란 얼마나 쉽게 설명하는가?로 판별할 수 있다. 자기 분야를 쉽게 글로 풀 수 있다면 그는 전문가다. 외국어를 잘하려면 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하는데, 국어를 잘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논리적인 언변은 역시 논리적인 글쓰기에서 비롯한다. 글쓰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도 조직안에서는 프리젠테이션 할 일이 많다. 프리젠테이션은 자료의 나열이 아니라, 서술의 압축이다. 때문에 고구마줄기 처럼 술술 서술할 수 없다면, 프리젠테이션 자료또한 만들 수 없다. 서술이란, 곧 글이다.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은 다르다. 인생사를 책으로 쓰면 10권도 모자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하얀 원고지 앞에서는 막막하다. 어디서 부터 갈피를 잡아야 할지를 알 수 없고, 관념의 결정체를 적당한 분량으로 대상화하는 기술이 모자르다.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그림 그리기 처럼 익혀야 할 기술이고, 운동처럼 매일 해야하는 훈련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훈련'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불확실한 세상에서 성과를 올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훈련은 기획과 결과 사이의 거리 좁히기다. 생각한대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면, 훈련된 사람이다. 훈련은 방법이 없다. 많이 하면 훈련이 된다. 글을 못쓰는 이유는 글을 처음부터 잘 쓸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림도 잘 그릴려고 하는 사람이 못그린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부터 그려나가라고 조언한다.

내가 그린 그림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글쓰기의 즐거움은 글쓰기 자체에 있다. 글쓰기는 수갈래로 얽혀진 오솔길을 걷는 것 같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나올 지 알 수가 없다. 그 막막함이 오히려 즐거움이다. 내 안에서 진행하는 흥미진진한 탐험이다. 하나의 길을 정복하고, 뒤를 돌아보면 나만의 생각과 철학이 생긴다. 곧, 정리가 된다. 이런 정리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세상살이에서 등대다.

안철수, 빌게이츠, 스티븐 잡스는  페이퍼워크에 강하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며, 말도 잘하고, 책도 출간한다. 이들이 책을 쓰는 이유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정리가 되기 때문이다. 글쓰기 결과는 많은 이에게 혜택을 주지만, 글쓰기 자체는 밥먹는 것처럼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다. 책읽고, 글쓰는 것은 사고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양을 주는 듯하다. 정리하고, 핵심을 발견하고 발전시킨다.

두번째 글을 못쓰는 이유는, 자기 콘텐츠가 없다. 콘텐츠란 경험이다. 즉, 머리가 아니라 피부와 몸으로 겪은 내용이 콘텐츠가 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뼈대가 필요한데, 자신이 온전히 경험한 내용이 뼈대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은 타인의 경험, 곧 독서다. 때문에, 독서 없는 경험은 공감대를 얻기 힘들고, 경험없이 독서만으로 쓴 글은 웬지 헐겁고, 답답하다. 갈기 갈기 찢어버리는 사자의 발톱이 없다. 치열하게 살고, 읽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

글쓰기 방법론은 글쓰는 즐거움을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림 그릴 필요성도 못느끼고, 그리기 싫다는데 빛의 방향과 원근법을 배워서 무엇하겠는가? 기술은 더 잘하고 싶을 때, 배운다. 그때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걸신 들린 사람처럼 책을 보고 해당 전문가를 찾을 것이다. 글은 잘 쓰려하지 말고, '열심히' 쓸 뿐이다.

 어떻게 '그 사람'이 될 것인가? 우선 현업에서 '그 사람'이 되자. 하기 싫고, 적성이 안맞아도 일단 '그 사람'이 되고 보아야 한다. 열심히 부딪히고, 생각하고 글로 적어야 할 일이다. 나는, 지금 있는 곳에서 위로 올라가지만, 내려 올때는 골라 내려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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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니
2010.02.20 00:44:58 *.194.117.143
가슴에 깊이 새겨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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