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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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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8일 14시 14분 등록


언젠가
출장 길에 공항 대합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길과 맞물린 적이 있었습니다.

몸은 이미 파김치가 되었고 더군다나 여행의 기대감에 들뜬 사람들의 물결에 치여 어디던 자리에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내가 앉을만한 좌석은 없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여행객들의 열기에 적당히 어울려서 함께 기분을 만도 했지만 그날 따라 모든 에너지는 바닥까지 완전히 고갈되어 가능하다면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고 그저 몸과 영혼이 잠시 쉬어갈 자리만을 눈이 빠지게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같은 공간은 아무리 봐도 쉽게 찾을 없었습니다.    


이윽고
나는 작은 결심을 했습니다. 아니 결심이라기보다는 항복을 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쟁에서 적군에게 포로로 잡혀 지니고 있던 모든 소지품들을 내어놓듯이, 걸치고 있던 양복의 외투를 벗어 버리고,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버리고, 무엇보다도 의식하고 있었던 타인의 시선을 그대로 벗어버리고 공항대합실 모퉁이 바닥에 그냥 털썩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호흡을 잠시 멈추었다가 천천히 숨을 다시 쉬었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눈을 떴습니다.


그랬더니
어렴풋하게 눈앞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뭐라고 표현할까. 이제껏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보여진다고 할까. 서서 바라보았던 눈높이의 세상은 어느덧 사라지고 앉아서 바라보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고 할까. 내가 조금 전에 했었던 행동은 힘에 겨워서 서있었던 자리에서 바닥에 그냥 주저앉은 것뿐이었는데 그렇게 앉아서 잠시 후에 눈을 떠본 순간 눈에 보여지는 세상이 이전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앉아서
바라보니 사람들의 얼굴은 전혀 없고 그들이 신고 있는 다양한 신발들만 눈에 들어 옵니다. 바쁜 발걸음들이 의미 없이 이리로 몰려왔다가 저리로 몰려가는 광경이 보여집니다. 또한 앉아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칩니다. 어른들은 자기네 공간으로 들어온 새로운 침입자를 대부분 경계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다르게 나와 눈이 마주치자 따뜻한 웃음으로 반겨줍니다. 그들에게 손을 들어 흔들어봅니다. 아이들도 내게 손을 흔들어 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반가웠던 것은 나보다도 훨씬 먼저 그길 위에 앉아있던 사람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드문드문 아주 편한 표정으로 앉아있거나 비스듬히 기대서 책을 읽거나 또는 거의 누워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칩니다. 아이들처럼 손을 흔들어주지는 않지만 대신 짧은 눈인사를 보내줍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바라보던 시선을 바꾸고 조금만 높이를 내리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여진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체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변화란
눈에 보여지는 목적을 의도적으로 바꾸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내가 지니고 있던 습관화된 시선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스스로의 눈높이를 조정할 있을 자연스레 만날 있는 고귀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있었던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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