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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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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3일 01시 53분 등록

어느새 6기 연구원들의 레이스도 막바지에 달했군요. 6기가 출범하면, 선생님께서 계획하신 10년의 중반을 넘어서는 거지요. 우리는 책을 쓰고 싶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서 만났지요. 나는 잔정이 없는 편이지만 연구원들에게 뿌리 깊은 우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는 세간의 관심사보다는 ‘창조’와 ‘성장’같이 추상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불과 2년 전 처음으로 북페어를 할 때만 해도, 연구원들의 원고가 책이 될 만한지에 대해 선생님조차 확신이 없으셨지요. 연구원들의 책이 속속 출간되는 요즘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안 하지요.  갈수록 ‘첫 책’의 주제를 확정하는 시점이 당겨지고 있어, 앞으로는 연구원 2년차에 출간하는 사람이 늘어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그대에게 ‘첫 책’을 내는 것에 대해 서둘지도 말고 조급해 하지도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는, ‘첫 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첫 책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작년 12월에 첫 책을 출간했지요. 2006년에 2기 연구원을 수료했으니 만 3년 만의 졸업이었습니다. 그 동안 초조하고 의기소침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지레 주눅이 들어, 연구소의 크고 작은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했구요.

제 책은 잘 팔리는 편이 아닙니다. 겨우 2쇄 찍고는 철통처럼 막혀 있습니다. 오래 버티느라고 섣부른 기대가 다 사라진 뒤인데도 낙담이 되는군요. 내가 과연 책쓰기와 강연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이거 잘못하면 ‘첫 책’이 외면 받는 데서 오는 좌절이, ‘첫 책’이 늦어지는 데 따른 낙담보다 더 클 수도 있겠다 싶네요. 그 때는 순수한 갈망으로 밀고 올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시장의 반응에 따라 내 역량을 의심해 보게 되니까요.

연구소의 출간 경험이 일천할 때에는 ‘첫 책’의 의미가 과중했지만, 어느 정도 출간사례가 누적된 지금은 다방면의 논의가 나와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케팅도 포함해서요.- 어느 편집자에게서 ‘첫 책이 성공하지 못하면 더 어렵다.’는 말도 들어보았는데요, 그렇다면 보다 경쟁력 있고 완성도 높은 원고를 위해 한 박자 더 숨을 고르는 일도 필요한 거지요. 기초체력을 다지며 오래 움츠렸던 사람이 더 멀리 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첫 책’에 대해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책을 쓴다는 일자체가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어느 저자는 500여 권의 책을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저자들에게 저술은 보다 어렵고 신중한 작업입니다. ‘나는 학생이다’를 쓴 왕멍은 100편이 넘는 중단편을 썼으며,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오른 대가입니다. 그런 그가 ‘나는 학생이다’를 쓰는 데 4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평생 걸려 깨달은 것을 후학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인 것이지요.

스티븐 킹은 40여 권의 소설을 쓴 프로작가입니다. 이력서를 읽으니 그의 재능은 타고난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책이고 초고를 쓰는 데 3개월을 넘기지 않는다는 그 역시, ‘유혹하는 글쓰기’의 초고를 쓰는 데는 18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소설을 쓰는 일은 늘 즐거운 일이었지만, 비소설은 그렇지 않았다고 그는 토로합니다. 제가 요즘 꽂혀 있는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의 저자도, ‘어처구니없을 만큼 오랫동안 이 책의 완성을 인내심 깊게 기다려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 역시 상이란 상을 모조리 휩쓴 일본문학계의 거두로 보이는데 말이지요. 이런 것들을 모두 감안하면, 잘 팔리지 않더라도 ‘저자’가 될 수 있었던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첫 책’에 오매불망하는 그대, 서둘지도 말고 멈추지도 말 일입니다. 조급해하기보다 배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이제껏 주로 개인적으로 해결하던 문제들을 광장으로 가져와 토의하고 공동해결을 모색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저마다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 1인기업가로 우뚝 선 연구원들의 네트워킹을 생각만 해도 뿌듯합니다.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기량을 키우는 그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하룻밤 만에 김 훈이 될 수는 없다. 그건 김 훈도 마찬가지다. 멋지지 않습니까? 그대의 승리를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톰 울프나 노먼 메일러 같은 작가들은 뛰어난 집을 지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만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 여러 해 동안 노력했으며, 마침내 멋진 탑과 공중정원처럼 우리는 꿈도 꾸지 못한 장식을 완성했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누구도 하룻밤 만에 톰 울프가 될 수는 없다. 그건 톰 울프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생각쓰기, 32쪽-


IP *.88.56.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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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3.04 12:48:05 *.36.210.15
글탐이 이런 방향성과 모색을 가지고 지속되어지길 바라고 아물러 저마다의 이야기도 새록새록 나올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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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3.04 18:43:18 *.108.48.82
내 말이~~ ^^
써 가면서 시동 걸리는 타입 아니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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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서
2010.03.07 00:06:09 *.71.76.251

 그럼요. 선배님.  천천히 아직도 늦지 않게 잘 가신걸요. 저도 그 뒤따라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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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3.07 16:58:38 *.88.56.230
잘 지내지요? 사이트에 더러 근황 좀 드러내 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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