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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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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0일 12시 43분 등록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제목의 책이 있다. 다분히 촌스러운 제목이지만, 이 책은 제목 값을 한다. 20여 년 간 글쓰기강좌를 통해 수많은 작가지망생들을 도와준 현장성 강한 노하우가 즐비하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쓰고 싶은 책과 아주 흡사하다. 누군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 책보다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말놀이’들은 아주 유용하다. 오랫동안 글쓰기에 대해 생각만 해 왔거나 글을 쓰고 싶은데 도저히 첫 발이 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도움을 받으면 그야말로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그 중에서 ‘의인화’기법에 대해 소개해 본다.


‘의인화’기법이란 어떤 무생물이든 하나를 잡아서 그것의 입장에서 글을 써 보는 것이다. 일기장, 볼펜, 이면지, 전자렌지, 컴퓨터, 히터, 달력, 양말 한 짝, 자전거, 도둑고양이 등... 쓸 것은 무궁무진하다. 일종의 투사 projection 기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에 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상당히 익숙한 방식이다.  우리는 무심결에 눈앞의 대상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내 차는 불쌍해. 한 번도 세차를 안 해주니.’ 혹은 ‘만년필이 생긴 뒤로 글씨를 쓰는 일이 늘었어. 쓰면서 생각하는 일이 점점 좋아지니 만년필의 공이 지대해. 만년필도 뿌듯하겠는 걸.’ 같은 생각을 좀 더 발전시키면 된다.


하루에 한 가지씩 15분 정도 쓰다보면  글 쓰는 버릇이  몸에 배고, 글이 술술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이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 하루 15분의 성찰, 하루 15분의 습작이 얼마나 요긴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무엇이 되어볼까 두리번거리다가, 컴퓨터 옆에 있는 이면지의 마음이 되어 본다.

‘내 고향은 아마존, 너무 멀리 왔다. 힘차게 물을 빨아올리고, 햇볕을 흠모하며 그저 쑥쑥 자라나면 되는 것이 내 일이었지. 그러다가 어느날 내 몸뚱이는 무참하게 잘리고, 그것으로 내 좋은 시절은 끝났어. 긴 공정과 유통과정 내내 솜털 하나까지 유린되는 기분이었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내돌려지곤 했어.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핑핑 돌아가. 어릴 적 내 고향의 하루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오랜 방랑 끝에 겨우 안착한 곳은 대한민국  변방의, 늦깎이 작가지망생의 공부방이야. 아! 내 주인은 나를 너무 함부로 다뤄. 자기 딸이 조그맣고 예쁜 글씨로 빼꼭하게 쓰는 것을 보지도 못하나봐.  커다란 글씨로 서 너 군데 휘갈기고는 던져 버리면 그만이군. 내가 얼마나 긴 유랑 끝에 이곳에 왔는지, 또 이곳을 떠나 어떤 수모를 당해야할 지 안다면 차마 그러지는 못할 거야.  제발 나를 조금이라도 더 여기에 머물게 해줘. 다시 낯선 곳으로 팽개치지 말아줘. 나는 이제 떠난다는 것이 두려워.’


헉! 별로 기대하지 않고 쓰기 시작했다가 깜짝 놀랐다. 이건 정말 기대 이상이다. 글씨가 크고 산만하여 아무 데나 메모해 놓는 습관이 질타를 받는 기분이다. 이런 식으로 쓰는 훈련을 계속한다면, 감정이입능력이나 상상력이 확장되는 것은 시간문제겠다. 박경리 선생님이 ‘돌멩이 하나를 두고도 장편소설을 지을 수 있다.’고 한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참고도서: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 예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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