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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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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2일 11시 53분 등록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여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대답은, 윌리엄 진서가 말한 ‘인간적인 온기가 있는 명료한 글’이다. ‘인간적인 온기’란 글 쓴 사람이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면 자연스럽고 진솔한 글이 된다. 글이란 언제나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밑의 어둠에 대해 쓰라.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그럴듯해 보이는 주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와 고민, 실수와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라. 사람들은 글을 읽으며 공감을 원한다. 자신처럼 작은 일에 울고 웃는 사람을 발견하여 동질감을 느껴 편안해지고 위로받으며, 댓글 등의 방법으로 개입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한다.  남자들이 더 그런 것 같다. 여자들이 주로 자기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비해 남자들은 공식적으로 입증된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솔직한 글을 쓰는 남자가 돋보이기도 한다. 최근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중년남자의 심리를 솔직하게 드러낸 요인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 좋은 글의 요건은 ‘명료함’이다. 도대체 이 글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글쓰기의 기본인데도 불구하고 종종 무시된다. 글을 쓰다 보니 샛길로 빠지기도 하고, 글 쓰는 사람 자체가 주제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짧은 글에 너무 많은 생각을 담을 때도 있다. 윌리엄 진서는 ‘글 하나에 한 가지 생각’을 강조한다. 두 가지나 세 가지가 아니라 단 한 가지 생각이라는 것. 그러니 글 쓰는 사람은 수시로 질문해야 한다. 이 글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그 이야기를 충분히 했는가? 


보통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내가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경우일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쓰고 싶은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라. 그리고 나서 글의 전체에 걸쳐 그 생각을 구현하는 글을 쓰면 된다. 글을 고칠 때도 마찬가지다. 그 ‘하나의 생각’을 관철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문장은 군더더기다.


‘인간적인 온기와 명료함’이 ‘어떻게 글을 쓸까’ 하는 방법론이라면 여전히 ‘무엇에 대해 글을 쓸까’하는 문제가 남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적인 것은 어떤 것도 나쁘지 않다. 살면서 강한 인상을 받은 것 중에서 우선 내게 글로 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켜야겠지.  나아가 읽는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대단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빙긋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재치나 한 번 따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이디어,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대리만족 까지 아주 소소한 것도 좋다. 내가 받은 인상을 충실하게 표현하면 이것은 저절로 생겨난다. 내 삶을 완성하고자 애쓰는 기운이 저절로 세상을 완성하는 것처럼, 내 주제에 전념하면 거기에 자연스러운 아우라가 생긴다.


사연 많은 인생사를 구구절절 풀어내서는 글의 밀도가 떨어진다. 반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사소함에서는 인생사가 거의 배어나오지 않는다.  공룡의 손톱만한 뼈 화석만 있어도 공룡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일화도 삶을 드러낼 수 있다. 오랜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의 뼛조각 한 점을 찾아라.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이 할 일이다.


▣ 공룡에 대한 부분은, 박덕규의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쓰기’에서 인용

IP *.251.13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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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10.04.22 13:16:29 *.210.111.17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겐 여전히 어려운 숙제네요.
도대체 '뭘' 쓰고 싶은 걸까요?
그냥 '쓰는' 걸 좋아하나봐요.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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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4.22 20:14:59 *.251.137.86
미영씨 본인은 무얼 쓰고 싶은지 모른다고 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다 알 걸요.^^
살지도 못하고 안 살지도 못하는 중년부부의
지지고 볶고 엎치락 뒤치락 하는 일상사...
그걸 그렇게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는 데 미영씨의 장점이 있는 거구요.
죽죽 풀어내면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끈을 생각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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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10.04.22 18:03:20 *.72.153.59
저도 끙! 
생각은 오래 묵혔는데 글은 재워두지 않아서 그런가 정리가 안되네요. 그래서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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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4.22 20:18:26 *.251.137.86
내 경험으로는, 거기까지 쓰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심리적인 결단으로나, 물리적인 지면 채우기로나.
그만큼 썼다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써보아야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되고 채우게 되니까요.
그러니 계속 쓰는 것이 나아가는 길일 밖에요.
일단 써 놓았으면
다음에 다시 무엇인가로 통합되고, 나아가서 쓰일 데가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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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10.04.22 23:56:11 *.166.98.75
어제도 A4 다섯장 정도 써놓은 원고에 delete키를 눌러버렸습니다. 어디선가 뻔히 본 글, 리서치 조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의 글들이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지적하신대로 '사연많은 인생사'를 구구절절히 풀어낸 것 같아서 그만 지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웃긴것은요.... 지워버리면 마음이 편할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제가 다시 쓰는 원고지 위에 지운 원고를 기억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마음의 갈등은 남아있는데,
휴... 아직도 어떤게 좋은글인지, 글쓰는 목적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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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4.23 11:00:12 *.251.137.86
조언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재엽씨의 진솔함에 마음이 움직여 한 마디 보태니 너무 허물말기를!
글쓰기강좌를 시작하고 내 글쓰기에 보탬이 많이 되었는데 그 중 최고는
'구체성'을 얻게 된 것.
글쓰기에 첫 발을 떼지 못해 갑갑한 사람,
어느 정도 익숙해 졌지만 표피에 머물고 있는 사람 등등
그 중 한 사람을 떠올리면서 해 주고 싶은 말을 집약적으로 하다 보니
내 글 그리고 나아가 내가 '쓸모' 있어진다는 느낌이 참 좋아요.

재엽씨가 글을 통해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 말을 꼭 들려주고 싶은 사람을 떠 올리면서 쓰면
위에서 말한 혼란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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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10.04.23 09:36:23 *.131.41.34
보통 글이 써지지 않을때는 내가 그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잘 모를때다
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어디서 읽었던가 가물가물한데
"다른 이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려면
그것은 이미 네 가슴속에서 불타고 있어야한다"
글도 그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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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4.23 11:03:06 *.251.137.86
예, 나경씨.
근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글이 손 끝에서 저절로 쓰여지지 않으면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글은
충분한 사전 준비, 무르익은 생각, 분명한 의도에서 쓰여지는 건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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