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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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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8일 17시 54분 등록
스물 다섯번째 날

포도밥만 스물 세번째 날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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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친다. 짜증을 넘어 화가 나고, 반항심을 넘어 미움이 되고, 무언인지 모를 울화가 울컥대서 미치겠다.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거슬리고, 때마다 소리쳐 꺼지라고 하고 싶다. 금연의 금단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증상이 심각하다. 아마도 금식의 한계가 온 것 같다. 하루 종일 볕 좋은 언덕에 앉아 할머니를 옆에 불러다 놓고는 요리 얘기를 하시게 했다. 살아온 얘기며 시더분한 얘기들 사이에 간간히 장어구이 양념장 레시피 등을 적어가며 듣고 있었다. 참 기운도 좋으시다. 기운 없다는 핑계를 달고 사시면서도 어찌 그리 목청 돋궈 쉴 새 없이 떠드시는지 결국에는 고만 좀 하시라는 면박을 들으셨다. 가깝게 생각하는 맘으로 ‘할머니’라 하며 툭툭 뱉어내지만, 조용히 비디오도 틀어 드리고, 볕으로 안내도 하고 무뚝한 애정 표현을 나름 하고는 있다. 고상한 변화는 포기하고, 부디 건강하게 즐겁게 사시다 소원대로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 곁으로 가시길 빈다.

안식일이라 원래 어느 집사님 댁에 가서 집단 예배 드릴 것을 예상했다. 아침에 사모님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어제 목사님이 그러신 거 미안하다 신다. 엥? 무슨 뚱딴지? 방 안에서 다 들으셨는데 미안하다 신다. 목사님 귀가 어두우셔서 대화 시 필히 목청을 최대한 돋아야 한다. 대화를 한 것뿐인데 미안하다니, 그것도 당사자도 아니고 사모님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시츄에이션이다. 뭐 그런갑다 했다. 외출을 예상하고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곳 식구들을 태운 목사님 차가 나를 보고도 부웅~ 가버린다. 엥? 물론 예배 참석이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다. 로마법이기에 따를 뿐 속으론 어떤 핑계를 대고 빠질까 늘 그랬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자극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흡~ 나를 버리고 가셨다. 분명 사모님께서 그냥 가자셨을 테다. 김자매는 예배 보는 거 싫어한다 하셨을 테다. 오홋~ 빤히 보이지만, 그래도 아무 소리도 없이 가버리는 차 꽁무니를 보며 집에 가고 싶어졌다. 조용히 짐을 싸고 빠져 나가도 그러려니 할 것 같았다. 나는 또 자책한다. 이렇게 참을성도 없고, 이해심도 없고, 속으론 욕지거리 탕이나 걸죽이 끓이고 있고, 순간을 참기 힘들어 하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인간이라고. 아~ 혼자 끓이는 스트레스탕이라고 들어봤나? 재료야 무궁무진하다. 사방에 지천으로 널린 재료들을 씻을 필요도 없이 그대로 덤벙덤벙 넣어서 점점 불을 때기만 하면 저절로 김이 나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걸 먹는 나는 물론 주위 사람들도 점점 불쾌해지고 화가 나기 시작한다. 거기에 조미술이라도 가미가 되는 날에는 내일은 없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다. 내일도 없이 먹고 죽자가 된다. 어김없이 해가 뜨고, 쓰린 속을 달래기도 전에 화장실에 가서 모두 쏟아낸다. 몇 번을 그러고 나면 회사도 안중에 없고, 꼭 오늘 죽을 것만 같다. 정말 ‘나 죽겠네’가 된다. 신기한 건 저녁 무렵 해가 지고 나면 괜찮아진다는 거다. 좀 살만해져 라면에 밥을 말아 먹을 정도 되면 또 내일이 걱정되고, 이 생활이 어느 정도 반복된다 싶으면 걱정도 만성이 되어 간다. ‘까짓거 될 대로 되라~ 인생 뭐 있어? 열 여덟~’ 더 이상 붙이지 말자. 구차해진다.

효진씨와 할머니는 내일부터 보식을 한단다. 나도 먹고 싶다. 하루 종일 먹고 싶다. 순대, 족발, 꼬리곰탕, 보신탕, 월남쌈, 떡볶이, 고속도로휴게소 찐감자, 동치미, 고들빼기 김치, 갓김치, 된장찌개, 김치찌개, 부대찌개, 회, 고등어 구이, 곱창, 베이징덕, 짬뽕, 라면, 계란후라이, 잡채, 불고기, 갈비, 양파, 버섯볶음, 미역국, 회냉면, 튀김, 삶은 양배추쌈, 고추장, 컵라면, 당면국, 온갖 나물들, 팔보채, 신당동떡볶이, 조개젓, 쏘세지, 갈치조림구이, 삼겹살, 소주, 동동주, 김치전, 만두……. 포도만 빼고 다 먹고 싶다. 목사님은 숙변이 언제 나오든 나올 때까지 하라시는데, 도저히……. 내가 무슨 암환자도 아니고 8일까지만 해야겠다. 포도밥 28일만 하고, 보식을 5일 정도하고 여행 삼아 통영으로 넘어가 바닷가 횟집에서 회를 한 접시 먹어야겠다. 소주는 한 잔에 기절할까 두려워 망설여지지만 소자 회 한 접시는 엄마와 충분히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고작 몇 점이라도 꼭 먹고 말 테다. 보상심리란 군중심리만큼 무서운 것 같다. 10대 풍광이고 뭐고 이제는 먹고 싶은 요리들이 더 아른댄다. 그간의 보상을 다만 얼만큼이라도 해주고 나야 몸땡이도 말을 들어먹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무리가 약하다는 오명을 벋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참자. 계획을 어느 정도 세웠으니 조금은 수월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금요일엔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겠다. 그 다음 화요일 점심 후 출발하시면 저녁 때쯤엔 도착할 수 있으실 거다. 수요일엔 진주성, 재래시장 구경을 시켜드리고, 숯가마가 있다는 찜질방에 들러 와야겠다. 목요일 오전엔 청학동에 들러 죽염을 사고, 점심 후 통영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 여행을 줄곧 함께해온 울 모녀에게는 익숙한 일상이 될 듯하다. 통영서 하루 자고, 금요일엔 집에서 하루, 토요일엔 종로 내 방으로 향할 것이다. 이제 곧 오염만빵인 광화문, 종로통을 쏘다닐 수 있겠군.
2007-11-03 9:3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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