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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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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8일 17시 55분 등록
스물 여섯번째 날

그렇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세상 어떤 미움도 간교함도 어리석음도 사랑 앞에서 무릎 꿇게 되는 이치를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목사님 내외다. 존경스럽다. 표현할 줄 모르는 무뚝한 내 속에도 분명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작은 손짓, 말투에 상처 받고 고민하고 기도하시는 내외분에게서 나는 한없이 넘치는 사랑을 받아 치유되나 보다. 바보, 엄살쟁이가 이제야 경계를 푼다. 재고 나누는 내 습성에 넘치도록 단 꿀을 쏟아 부어 주신다. 더 이상 잴 수도 나눌 수도 없다. 꿀범벅이다. 상대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여 주고, 함께 아파하고 다독여 줄 수만 있다면…….

“하우스만 지면 우짜노? 맨 풀때기만 묵고 살낀가?” 덕산 읍내서 진주행 버스를 타고 가는데 뒷자리 할아버지께서 혼잣말을 뱉어내신다. 벼농사를 때려 치우고 즐비하게 들어서는 비닐 하우스들이 맘에 안 드시는 모양이다. 아마도 농사의 기본은 역시 벼농사라 생각하시는 것 같다. 시골 장터처럼 북적대는 시골버스 안의 풍경이 너무나 정겨워 그저 싱글벙글 대는 나는 통영을 가리라 맘 먹고 나선 길이다. 엔돌핀이 솟는다. 3,200원짜리 표를 슈퍼마켓 겸 매표소에서 끊고 허둥지둥 버스를 오르는데, 내 차림이 남 달랐는지 기사님은 연신 룸미러로 훔쳐 보시고, 부산 동래로 해수욕을 가신다는 뒷자리 할아버지들은 연신 수다를 떠신다. 30분마다 있다는 버스가 때마침 와주어 더욱 허둥댄다. 아~ 시골버스는 너무 정겹다. 어르신들의 얘기에는 유머와 진한 육자배기도 섞여 있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속내도 들어있다. 버스여행을 좋아하게 된지도 꽤 된 것 같다. 그렇게 꽉꽉 끼어 가는 서울의 버스 전용차선을 달리는 파랑버스도 전철보다는 좋다. 창 밖의 사연들이 영화처럼, 꿈속처럼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골의 버스는 차원이 다르다. 동네 사랑방이 되고, 어르신들의 설렘을 운반하는 구루마가 되기 때문이다. 자가용을 가지고 했던 여행이 속전속결 찍고 오기였다면, 대학원 학비로 차를 팔아 치운 후 버스로 다니는 여행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쁨이 되었다. 사람들 얘기를 엿듣기도 하고, 생경한 것이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여쭤도 앞다퉈 대답해 주시고, 말만 잘하면 밥도 얻어 먹고, 잠도 공짜로 잘 수 있다. 이런 찐~한 민박이 어디 또 있으랴. 밥값대신 소일거리나 좀 거들면 서울처녀가 일도 잘한다 칭찬도 듣고, 이것 저것 따라다니며 엄마 하는 양 다 해보고 싶은 어린아이가 된다. 이 순간이 내가 제일 이뻐지는 때인 것 같다. 버스 여행 가이드 책을 한 권 내야겠다. 이 땅을 아나로그로 걷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소개하면 멋진 길잡이가 될 것이다. 내게 여행은 그저 느끼고, 만지고, 지껄이고 싶은 대로 지껄이는 자유였는데, 가이드를 하려니 막상 메모지를 챙겨야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이제부터는 꼼꼼히 메모를 해야겠다.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은 다 낡은 콘크리트 건물에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칸막이 매점들로 가득 차있다. 어묵 냄새가 시선을 잡는다. 참 맛있겠다. 나를 포함해 겨우 4명을 태운 버스는 통영으로 향한다. 요금은 6,400원으로 덕산에서 통영까지 편도 9,600원에 두 시간 남짓 걸린다. 사천을 거치고, 고성을 지나 처음으로 바다 한 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야~ 바다다! 외치는 순간, 바다 휴게소가 떡 버티고 있다. 나름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싶다. 누구나 이 순간 바다를 한번쯤 외칠 테니 말이다. 곧이어 드러난 통영 경계 안내판을 지나 또 바다가 만으로 이어지고 길가에는 야자수다. 남쪽은 남쪽인가 싶다. 버스는 통영 시외버스터미널에 날 내려주었다. 이제 어디로 간다? 이럴 때 제일 먼저 찾는 곳이 관광안내소이다. 그런데 근처엔 없다. 우리나라 행정착오 중 하나라고 꼽을 수 있는 것. 관광객은 버스로도 자가용으로도 비행기로도 오는 법. 처음 도착지가 될 만한 곳에 관광안내소가 있어야 마땅한 이치이거늘, 한결같이 안내소는 관광지를 물어 찾아가야 그 앞에 떡 하니 있다. 그제서야 안내지를 받고, 지도를 받고, 친절한 안내를 받게 된다. 별로 운이 안 따르는 관광객이라면 이미 난처한 낯선 곳에서의 불친절한 경험을 한두 차례 경험한 후일 수 있는데 말이다. 대개 이런 낯선 도시에서의 첫 발이라면 근처 택시기사님들을 정보원으로 삼으면 좋다. 적어도 내 경험엔 그랬다. 택시기사님들처럼 풍부한 지리섭렵과 자세한 관광안내원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다 못해 먹어야 할 음식과 식당예약까지, 잠자리도 호텔과 모텔 종류까지 가려 가시며 추천해 주신다. 굳이 택시를 이용하지 않아도 관광객으로서의 질문만 충실히 하면 대개는 매우 반갑게 응해주신다. 시내 간다는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참, 항상 어느 도시이건 간에 중앙로가 시내 한 복판이다. 이 곳에 가면 사람도 많고, 먹을 곳도 많고, 물어볼 곳도 많아진다. 그래서 나는 일단 시내로 향한다. 그런데 가다 보니 서선생님이 말씀하시던 해저터널이 나온다. 친절한 우리의 버스기사님은 정류장도 아닌 해저터널 앞 사거리에 초행이라고 특별히 내려주신다. 시골 버스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드디어 관광안내소를 발견하고 안내지 이것 저것을 받아 들고는 해저로 빠져들었다. 일제시대 때 지어졌다는데 아직도 그런대로 깨끗하다. 항간에는 이곳이 당포 전에서 참패를 한 왜적들이 쫓겨 달아나다 수장된 곳이라 하여 원래는 다리가 있었던 곳이었으나, 다리를 없애고 수장된 조상들의 원혼을 밟고 다니지 말라고 해저 터널을 만들었다 한다. 그 대응책으로 조선인들은 그 위를 밟고 다니기 위해 운하교를 건설했다고 한다. 참 질긴 복수의 악순환이다. 피에 새겨진 응어리는 세대를 거듭해도 유전자에 남는 것 같아 새삼 놀랍다. 나 또한 그 놈의 묘한 반일감정 때문에 여태 일본어를 못 배우고 있다. 아니, 시도야 몇 차례 해봤지만, 괜히 싫어지고 핑계가 많아져 그만두어야 했다. 예전 인도친구한테 반일감정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그 친구는 도통 이해를 못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어도 반영감정 따위는 없나 보다. 국민성인가?

해저터널을 빠져 나오니 무슨 동사무손지 파출손지 동네 한 구석이다. 엉금엉금 기어가듯 발을 떼 이정표가 있는 한길로 나오니 미륵산과 용화사가 50m 앞이란다. 속았다. 아니면 잘못 봤던가. 그것도 아니면 단식으로 인한 금단현상일거다. 500m는 되겠구만. 꾸역꾸역 걸어 올라왔다. 지나가는 버스도 바로 앞이겠거니 하고 보내고는 걸어가는데 이거 장난이 아니다. 통영도서관 옆 벤치에서 쉬어 가야 했다. 물을 마시고, 남친과 수다를 떨고 다시 걸어 용화사 입구가 버스 순회지점이다. 20번 버스가 60번으로 둔갑을 한다. 용화사와 내가 출발한 시외버스터미널이 각 끝 꼭지점이다. 운하교를 건너 서부시장을 거쳐 문화광장, 데파트(건물은 일제시대 지어졌을 듯한 낡은 주상복합아파트?) 뭐 대충 이렇게 터미널로 오며 기사님께 또 질문을 쏟아낸다. 충무김밥 거리와 횟집거리가 있다던데 어디인지부터 어디서 내리는 게 가깝겠느냐 이러쿵저러쿵……. 버스에 오르면 기사님 대각선 첫 번째 자리가 의례 내 자리다. 대개 이 자리는 위험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내겐 훤히 실시간 와이드 화면을 마주하고 앉아 生안내방송을 듣는 것과 같아 안성맞춤이다.
다니다가 꼭 먹고 말 음식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어탕국수, 낙지두루치기, 충무김밥, 멸치회 오늘은 이 네 가지다. 목사님 댁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께 어탕을 여쭈었다. 매운탕이 통 생선으로 끓인다면 어탕은 뼈째 갈아 넣고 추어탕 끓이듯 끓인 것이란다. 거기에 국수를 넣으면 어탕국수라나. 매운탕처럼 얼큰하냐는 질문에는 뭐 글쎄~라는 애매한 말씀을 하셨다. 꼭 먹어봐야지. 원지 들어가는 초입 다리를 건너면 강가 옆에 간판도 없는 허름한 식당이 하나 있다. 어탕국수라는 글자가 선명한 문이 있는 저 집에서 한 그릇 시켜 보리라. 이제는 먹는다는 결심이 그 어떤 결심보다 결연해진다. 괜찮은걸까?
낼은 덕산 문화의집에 들렀다 때나 좀 밀고 올까나.
2007-11-04 10:1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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