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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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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2일 11시 13분 등록
여덟째 날

사모님이 서선생님 보식 준비 차 진주 장날에 가자 신다. 운전을 해달라셔서 흔쾌히 그러마 했다. 효진씨도 덩달아 덕산에 가고 싶다 한다. 할머니도 가신단다. 대단한 나들이 준비가 됐다. 각자 포도를 싸고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덕산은 차로 20분 거리라서 내 핸드폰 충전을 효진씨께 맡기고 덕산 문화의 집 앞에 내려주었다. 사모님과 진양호반을 돌아 진주로 향했다. 경치 한번 끝내준다. 시조 한 수 읊조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생생히 보이는 듯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이 인적도 없이 고요히 놓여있다. 군데군데 상수도 보호 경고 표지판이 눈에 띄긴 하지만, 허름한 식당 하나 없는 모습이 오히려 낯설다. 한강만 하더라도 상수도 보호구역인 양수리에는 식당과 모텔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 진주 사람들은 저 아름다운 절경을 그냥 눈으로 즐기는 법을 조상님으로부터 전해 받았나 보다. 그 동안 그래도 여기 저기 혼자 많이 돌아 다녔다고 자부했는데, 역시 무식해서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배낭 둘러매고 우리 나라 이곳 저곳을 둘러봐야겠다.

오후에 도균과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 사이 전화 몇 통이 다인 나를 궁금해 할 듯 해 안부를 전하려는데 엄마는 비서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내 소식을 물었단다. 우리 사려 깊은 비서는 교육 갔다 했단다. 엄마는 추석 선물 택배에서 베껴놓은 비서 전화 번호까지 동원할 정도로 걱정이 되셨나 보다. 이곳 번호와 도균이 번호까지 묻더니 안심을 하신다. 하지만 역시 우리의 이여사는 걱정도 잠시, 지난번 지리산 근처 여행 오셨던 얘기를 하시며 경치 좋겠다 신다. 감나무가 지천에 감이 주렁주렁 이라 했더니, 구경 오신단다. 역시 여행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나는 이여사다. 일단 안심 시켜 드리기엔 성공인 것 같다.

살 빼러 왔다 했다. 지난 4년여 동안 체중은 끝이 없을 것 같이 늘어났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신기록 갱신을 했다. 사람 심리는 참 묘해서, 얼마나 가는지 한번 보자는 쓸데없는 오기도 발동하다가 비키니 입기를 포기하자는 심정으로 자포자기가 된다. 포기 한다고 해서 또 정말 포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는 있지만, 그 빛이 너무나 미약해 절망 속에서 또 먹는다. 처음엔 나름의 비즈니스를 하느라 어쩔 수 없이 먹어 비계가 늘어 났다면 최근 몇 달 동안엔 비관의 스트레스로 인한 습관적 비계가 되었다. ‘비만’이라는 판정을 받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심정을 십분 이해할 것이다. 1년씩 헬스장이나 요가 클래스를 등록하면 무슨 소용인가? 올 해엔 딱 다섯 번 갔다. 처음엔 작심삼일 이라도 하자는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몸을 움직이는 것 조차 싫어져 ‘등록비가 아까워도 할 수 없다. 안 간다.’이러고 있다.

맨 처음 원지 정류장에서 목사님 내외를 만나 이곳에 들어오는 차 안에서 목사님이 물으셨다. “몇 키로나 빼려고?” 무슨 말씀인지 잘 몰랐다. 내외분은 대번에 뚱뚱한 내가 살을 빼기 위해 단식원에 오는 걸로 생각을 하셨나보다. 한번도 살을 빼고자 이곳에 오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잠시 당황했지만, 내 나름의 목적을 철저히 나 혼자서 고민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부수적으로 살이 빠지는 건 상상만으로도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이 곳에 까지 와서 철저히 만들어야 하는 내 사명과 계획……. 나는……. 말문이 막힌다. 아직은 시간이 많다고 자위해 본다. 하늘의 별도 보고, 캄캄한 가을밤 산속에서 전설의 고향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어느 새의 ‘구구구구’대는 소리에 적이 무서워하기도 한다.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 대신 그 동안 싫어했던 맛도 이제는 괜찮아 질 것 같고, 매일 하는 관장 덕에 뱃속 찌꺼기들이 모두 빠져 나갈 것도 같다. 대 숲 한가운데서 정좌하고 책을 읽는 시간도 행복하고, 가끔 읍내로 나가 휴대폰을 충전하고 이메일 확인 하는 것도 기쁨이다. 하루가 퍽 간단해졌다. 일정한 스케줄과 별 큰 일 날 것 없는 소일거리로 하루가 잘도 간다. 신기하게 잠도 잘 온다. 초저녁이라 할 수 있었던 밤 아홉 시를 갓 넘겨도 하품이 쏟아진다. 건강해 지려는 신호려니 하고 맘도 편하다. 사실 목적을 생각하는 순간 초조해지기도 하지만, 잘 될 거라며 최면을 건다. 그래, 잘 될 거야…….
2007-10-17 11: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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