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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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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22일 11시 17분 등록
열 두번째 날

편안히 쉬었다. 아침 예배 후 포도밥을 먹고는 따뜻한 바닥에 배를 깔고 또 한 잠을 잤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건 행복하다. 바람이 들어오라고 문도 살짝 열어 제친 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서울은 영하를 오간다는데 이 곳은 아직 신선한 바람이다. 차츰 내 독서바위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날씨 탓에 짧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한 시간 정도는 견딜만하다.

오늘의 <날다 타조>는 <부모를 증오하는 그대에게>다. ‘내 아버지의 별명은 미친개였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었다. 이외수 선생님은 1975년 <훈장>이라는 소설로 당신의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단다. 동란참전용사로 훈장을 닦으며 알코올로 세월을 보낸 아버지를 그린 이 첫 소설로 선생님은 소설가로, 아버지를 용서하는 독립 된 성인으로 거듭나셨다 한다. 낮에 서선생님과 대화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했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애증과 회한과 못다 푼 인연의 고리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제는 아버지를 용서할 때가 왔나 싶었다. 세월의 햇살에 눈이 녹듯 애증도 녹아내려 용서의 바다로 흐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십 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 아버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 듯 하다. 아직도 내 속에 애증과 아쉬움의 회한들이 숙변처럼 남아 이따금씩 뱃속을 휘젓는다. 이번 단식이 끝나 내 뱃속의 진짜 숙변이 세상 밖으로 꺼내지는 날, 아버지에 대한 찌꺼기들도 함께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구하면 얻어지는 법.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이제는 용서의 바다로 이끌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어쩌면 아버지의 답장도 받을지 모른다는 희망도 든다.

서선생님이 그간 만들어 두고 다하지 못한 사업계획서 몇 부를 주셨다. 일주일 후 돌아가실 때 달라신다. 그러면서 핵심포인트도 설명해 주시고 친절히 사업에 대한 조언들을 해 주신다. 역시 구하면 얻어지는 법. 이 곳에 들어온 이유가 사업계획서 작성임을 어찌 아셨을까. 사업 아이템까지 주시는 걸 보면 내가 이 일을 시작해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요량이신가 보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예배를 아침 저녁으로 하다 보니, 마치 하나님이 미리 짜둔 시나리오 대로 진행되는 연극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나의 주영접을 목사님이 매일 기도하신다더니 하나님이 내게 당근을 주시는 지도 모르겠다.
2007-10-21 10:05 PM
IP *.152.17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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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10.22 11:48:33 *.209.110.177
대단한 글빨입니다. ^^
아주 재미있게 단숨에 읽었습니다.
한 달 동안 '진짜 숙변'이 완전히 빠지지는 않더라도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살아보니,
'진짜숙변'은 체험과 시간과 끝까지 같이 가더라구요.
서른여섯, 그 나이에 가짐직한 '사색과 발견'은 충분하리라고
봅니다. 만족하고 감사하는 시간 되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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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10.23 19:18:15 *.253.249.123
그대는 기교있고 힘있는 글쟁이 그러나 여백이 없고 왠지 숨쉴 공간도 없는 꽉찬 생활이 글속에 배여있다. 엉터리 신앙인 아니 정말정말 깊고깊은 진솔한 교인인지 난 알수 없네.

나는 글속에서 힘찬 요동이나 반항보다는 눈물이 나도록 외로운 여인을 보았다. 지리산 칼바위의 정기에 묻혀 살다가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가는 고독녀의 글이다.

언젠가 만나서 상을 한번 보고 점을 한번 처 보아야 겠다. 언제 자신의 깊은 정을 글에 담아 가슴에 있는 화약고를 터뜨릴련지...
고~걸 점쳐 보아야 겠다.

오랜만에 속 시원한 글을 읽고 앞으로 그대가 쓰는 글에서 좀 더 노련하고 연한 향기를 문장에서 맛았으면 한다.

참으로 글은 맛있었는데 사람은 어떨련지 보고 싶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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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2007.10.24 00:05:02 *.34.23.53
제가 말재주가 참 없지요?
지리산을 달리는 차안에서 대화를 하면서도 왜 이런 말밖에 하지 못할까? 생각했었습니다. 변명을 하지면 피곤하기도 하고, 운전을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으로 건성건성 대답하는 것 처럼 들리기도 했을 겁니다.
아직은 저를 사로잡고 있는 '열등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서로 보듬고 같이 살아가려고 하는 중인데, 쉽진 않네요.

참! 사진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지나님을 생각하니 제 얼굴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이제까지 많이 힘드셨죠? 이제부터는 즐겁게 사업계획서 만드세요. 너무 고민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루요. 그리고, 너무 철이 들지 말고, 하고 싶은거 하세요. 그거 한다고 세상무너지지 않는 다고...누가 그러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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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a
2007.10.26 17:04:21 *.152.178.47
하하~ 세상 무너질까봐 그동안 혼자 떠받쳐야 되는 줄 알았어요. 고마운 말씀들 감사합니다. 이제는 더 큰 퇴행이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는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들만 하나씩 해 나가도 바쁠 것 같습니다. 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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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줌마
2007.10.29 07:42:34 *.202.149.236
지연씨와 함께한 이틀간의 심야 데이트 내겐 버림과 용서와 희망과 꿈의 시간이 되었다우...
11년만의 나홀로 여행에 참 값진 것들을 많이 보고 듣고 얻고 왔다는 생각을 해요...
지연씨 2주만의 고비가 수월히 넘어갔으니 앞으로 남은 묵은 숙변과
자기안의 암울 모두 제거 할때까지 남은 시간들 진정 잘 보내고 오리라 믿어요.아울러 그 멋진 장군의 기백(지연씨 전생)이 들어 날수 있는 근사한 사업게획서도 부탁해요.
덕산가서 얼른 그담 얘기 올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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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10.30 09:32:17 *.48.42.248
잘 읽고 있어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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