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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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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1일 11시 46분 등록
열 여섯째 날

도균이 왔다. 점심때쯤 전화를 해 보니 벌써 원지행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나 달려오고 있단다. 연락도 없이 불쑥 오는 건 서울에서나 마찬가지다. 나름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도착 시간쯤 맞춰 사모님께 마중 나간다 했더니 목사님과 차로 함께 가자신다. 사모님은 지난번 붙인 편지에 감동 받아 오나 보다고 더 반가워 하신다. 덕산 읍내로 향할 즈음 저만치 훠이훠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짊어진 가방 하나 없이 참 천연덕스럽다. 지내는 곳을 구경시켜 주고, 외진 곳에 가서 이 곳 식구들 몰래 담배 한 대씩 물었다. 어쩜 잘 지내냐는 물음 한 마디 없다. 보고 싶었노라는 얘긴 기대도 안 한다. 그래도 한번쯤 살짝 안아줄 줄 알았는데, 기대뿐이었다. 이 곳 식구들 얘기로 1라운드는 끝이다. 장롱 옮길 일이 걱정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며 도균이 할 일을 주신다. 처음 우리 집에 온 날도 장롱을 옮기더니 힘쓰는 일을 타고난 모양이다. 저녁으로 통밀빵과 바나나, 사과를 미지근한 물로 갈은 즙을 주셨단다. 낯선 식사도 뚝딱 해치운 모양이다. 목사님 내외는 힘 좋고 건강하다고 칭찬하셨단다. 실은 골골인데……. 서울서 또 한 분이 오신다고 진주로 마중을 나가시느라 저녁 예배가 생략되었다. 그 사이 개울가로 나가 2라운드를 시작했다. ‘나 안 보고 싶었어?’못내 옆구리를 찔렀다. 역시, 내일 얘기하자며 딴전을 피운다. 대체 대한민국 남자는 뭣 때문에 이다지도 무뚝뚝해졌냐고요. 혹시 군대 가서 맞으면서 배워오는 거 아니냐고요. 이런 단 세마디과의 남자는 어디 가서 튜닝 받아 오는지 누구 좀 알려 줬음 좋겠다고요. 으메, 내 팔자야~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어제까지 보름을 해가 쨍쨍 하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지금껏 비를 퍼붓는다. 그 덕에 오늘 아침이 상쾌했다. 넉다운 됐던 어제보다 많이 나아졌다. 비도 오고, 남친도 오고 행복하다. 참 간사하다. 어제까지 보따리 싸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 지더니만, 하룻밤 새 행복해진다. 한 친구가 늘 하던 말이 떠오른다. “인생 뭐 있어?”

그새 변경영의 내가 올린 일기에 조회수가 늘었고 리플들도 달렸단다. 아직 확인을 못한지라 반응이 내심 궁금했었다. 일기를 누군가에게, 아니 이렇게 대대적으로 공개해 본 적이 없는지라 걱정도 되고 쑥스럽기도 하다. 일종의 책임감이랄까 뭐 그런 압박감도 조금 생기는 것 같고, 감정이 복잡미묘하다. 별 거 아닌 것에 이렇게 민감하다 할 수도 있겠다. 하긴 소심하고 뒤끝 많은 성격이다 보니 누군가의 시선이 조심스럽고. 게다가 그 누군가가 내가 알지 못하는 또 그 누군가라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에라~ 모르겠다. 아브라카다브라~
2007-10-25 11: 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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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0.31 23:47:13 *.70.72.121
일기 같지 않아요. 소설 같아요. 그리고 한 권의 책으로도 손색이 없겠는 걸요. 좋은 추억과 기행으로 남겨 두세요. 훗날 재미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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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a
2007.11.02 11:14:48 *.152.17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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