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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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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1일 11시 50분 등록
스무 번째 날

어제는 유난히 잠이 오질 않았다. 엎치락뒤치락 하다 불이 모두 꺼진 깜깜한 지리산 등성이 실루엣을 따르며 담배만 피워 문다. 불면의 시간들도 꼭 괴로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새 ‘나를 찾아가는 여행2’도 구체적으로 채우기 시작했고, 혼자 지리산의 밤하늘도 올려다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려고 누우면 가상현실이 필름처럼 돌아가고 생각지도 못했던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가슴이 벅차오기도 하고, 답답히 짓눌리기도 하지만 작정하고 고민한대서 얻어질 수 있는 계획들이 아니기에 영감처럼 떠오르는 영화 한편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 중 가장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액션플랜 일 번은 10월의 마지막 날을 끝으로 금연하기다. 아직 남은 담배도 한 갑이나 있는데 주머니에 담배를 넣어 놓고도 금연을 할 수 있을지 나를 시험하기로 했다. 동참할 동지를 구하고도 싶었지만 마라톤처럼 혼자 뛰기로 결심했다. 최소한 석 달 동안은 건강한 몸 만들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의 식단과 생활계획표를 하루 단위로 준비해 갈 것이다. 습관의 무서움을 치 떨리리만큼 익히 알고 있기에 감히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늘 반복되는 좌절이 오히려 더욱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뿌리를 뽑지 않으면 또 이런 기회가 주어질 것 같지도 않고, 나와 만성적인 전쟁놀이를 하기도 싫다. 인식이 의지를 굳게 변화시켜주길 바란다.

고구마 캐기. 허리에 막대기를 하나 꽂아 놓은 것 같다. 시골 할머니들의 몸빼라인 몸매의 원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어찌 그리 하나부터 열까지 손으로 하는 일이란 말인가. 손바닥만한 고구마밭을 나는 하루 종일 쉼 없이 기어다녔다. 쪼그려 앉기가 나는 제일 싫다. 책상에서만 거의 모든 생활을 해왔던 내게 바닥에 앉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단학선원에서 배운 반가부좌자세로 조금 버티는 정도다. 더군다나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한적은 창피해서 도저히 신고 다닐 수 없이 더러워진 운동화를 빨 때 정도다. 해서 내 자세는 부드럽고 촉촉한 흙에 무릎을 꿇은 고양이자세나 엉덩이를 대고 주저 앉는 펑퍼짐자세가 되었다. 이동할 땐 애벌레도 기고 나도 기었다. 덕분에 새빨간 추리닝 한 벌이 얼룩덜룩 흙거지룩이 되었다. 내일은 야콘 차례가 기다리고 있어 흙거지룩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요한나 브란트 박사가 1983년에 쓴 <암과 다른 질병들을 위한 포도요법>이라는 책을 김동춘 목사님이 옮기셨다. 책장에 성경책들과 함께 영어공부 책들이 꽂혀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포도라는 식물의 위대함이 놀랍다. 스스로 포도요법을 시작한지도 20일이 되어서야 이 책을 접한다. 책의 내용이 동,서양의 식생활 문화차를 보이긴 하지만, 꼼꼼히 읽고 주위 사람들에게 권해주어야겠다. SBS 특별기획 <잘먹고 잘사는 법>이란 3부작 다큐멘터리도 동생에게 구해 놓으라고 해야겠다. 방송국 다니는 동생을 활용할 기회가 오다니…….

물릴대로 물린 포도밥이 언제나 끝날는지 아직도 아득하기만 하다. 어김없이 겨울이 오고 있는데 나는 또 재촉이다. 물이 흐르듯 계절이 바뀌듯…… 새까만 흙 속에서 어김없이 잘 자라준 고구마처럼 이 시간과 공간에서 마음껏 숨쉬고 기뻐하리라.
2007-10-29 10: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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