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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p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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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5일 09시 03분 등록
 전략의 돌연변이로서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재미있는 전략이야기'시리즈에서 한번 다루었습니다만, 오늘은 그 때 다루지 못했던 나폴레옹의 대표적인 울름 전투에 대한 것입니다.
6만명의 적군을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포로로 잡은 인류 전쟁사에 빛나는 전략적 승리를 가져온 전투입니다. 그야말로 '싸우지 않고 이긴' 최상위의 전략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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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혼란기에 혜성처럼 나타난 코르시카 출신의 신출내기가 잇따라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하고 스스로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유럽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 당시 오스트리아 군대의 실세였던 카를 마크 장군은 영국, 러시아 등과 동맹을 맺고 1805 4 나폴레옹을 공격하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한다.

여름 마크 장군은 동안 나폴레옹에게 빼앗긴 모든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전쟁 계획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나폴레옹보다 월등 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힘의 우세 나폴레옹을 격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에서 동원된 병력은 50만으로,  당시까지 유럽에서 정도의 병력이 소집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정도의 병력이면 나폴레옹 군대의 정도 수준이고 제아무리 전쟁의 이라 불리는 나폴레옹이라 할지라도 많은 병력이 사방에서 공격을 해온다면 운명은 이미 결정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마크 장군은 생각했다. 그는 치밀한 논리와 이를 기반으로 명확한 예측을 가지고 전쟁에 임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불행히도 마크 장군의 예측과 전혀 다른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다녔다. 이로 인해 마크 장군이 세운 치밀한 전략에 불확실성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자신이 가장 두려워 하는 불확실성 직면한 오스트리아 장군은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그의 사고능력을 전혀 발휘할 없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마크 장군의 단순한 심리와 그가 혼란스럽게 보이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 얼마나 무력해질지를 꿰뚫고 있었기에 항상 그의 예상과 어긋나도록 군대를 기동시켰던 것이다.  1809 9 오스트리아의 공격으로부터 점령지인 이탈리아를 방어하기 위해 일부 군단만 이탈리아 북부에 배치시켜 놓고 나머지 일곱 개의 군단은 대열을 분산시킨 동쪽으로 이동시켜 프로이센으로 들어 가도록 했다. 그리고 많은 기병이 포함된 예비 부대 하나를 프로이센 남서부에 있는 검은 이라는 산림지대인 슈바르츠발트 지역으로 우회하게 하여 마크 장군의 관심을 서부로 돌려 놓았다.

나폴레옹의
슈바르츠발트 지역으로의 이동은 전쟁을 아는 마크 장군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였던 것이다. 소위 전쟁을 아는 장군의 입장에서 진군하기도 쉽고 진을 적으로부터 쉽게 엄폐할 있는 북쪽 지대에서 라인 강을 건너 프로이센으로 진격하는 것이 정석임에도 나폴레옹은 전혀 이해 없는 방법으로 진격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며칠 마크 장군은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정찰대에서 어떤 병사는 프랑스 군대가 울름 북서쪽 96km 떨어진 슈투트가르트에 있다고 보고하고, 다른 병사는 동쪽에 있다고 보고하고, 다른 병사는 보다 훨씬 북쪽에 있다고 보고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보고가 시시각각 올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폴레옹이 의도한 그대로였다. 나폴레옹은 마크 장군이 서부에 관심을 파는 사이 프로이센으로 들어 갔던 일곱 군단으로 하여금 슈투트가르트에서 방향을 돌려 남쪽의 도나우 강으로 진군하여 마크 장군의 퇴로를 차단하게 하였다.  나폴레옹 부대의 장군은 북동쪽 방어가 취약하다는 판단 하에 나폴레옹의 명령 없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여 지역을 완벽하게 봉쇄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마크 장군은 어느 곳을 가든지 뚫고 지나가기 어려운 대규모의 군대를 만날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마크 장군이 발이 묶여 있는 동안 본국의 프랑스 군대는 증원되어 점차 포위는 강화될 것이었다. 연합군의 주축인 오스트리아 군이 힘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나폴레옹에게 완전히 포위된 사실을 알게 러시아가 지원군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하자, 마크 장군은 항복을 하고 말았다.  6 명이 넘는 군대가 제대로 쏘아 보지 못하고 포로의 신세가 되는 순간이었다. 거의 사상자를 내지 않고 대규모의 군사적 승리를 거두는 동안 전쟁사에서 보기 드문 승리가 연출되는 유명한 울름전투의 결말이었던 것이다.

울름전투
뿐만 아니라 이후 수행된 수많은 전투에서 나폴레옹 전략의 핵심을 한마디로 정리하면결정적인 지점과 시간에 상대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투입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식량의 현지 조달, 스스로 결정하고 기동하는 사단 편성, 그리고 계획적인 분산 집중의 원칙을 적용하였다. 나폴레옹 이전에는 진격할 기동로를 따라 보급 물자 창고를 사전에 준비했으나 나폴레옹은 이를 폐지하고 현지에서 직접 보급품을 조달할 있도록 하여 기동의 혁신을 초래하였다.
IP *.133.9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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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7.18 16:35:04 *.131.127.50

나가 요즈음, 전투중입니다.
crepio 님의 글을 제대로 이해 했다면 이길 것입니다.
최근에 올린 두 편,   징기스  칸과  나폴레옹의  두 전략을 합쳐서 ..... 
여그서 너무 많이 이야그 하면 안되겠죠.^^
그래도 그림이 그려지시죠, ?  ㅎㅎㅎ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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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pio
2010.07.25 06:46:19 *.133.97.88
출장이 잦아 답글이 늦었습니다.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
백산님이야, 이론에 대한 이해보다 동물적 감각이 뛰어나시니
충분히 승리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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