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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6일 19시 59분 등록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해도 사람의 본질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수많은 에고의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주변에는 많은 에고를 가진 사람들로 채워지기 나름이다.

이것이 그사람의 환경이 되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영향력을 무의식적으로

끌어 당기기도 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편리한 에고를 끌어 당긴다.

외로움과 두려움등이 비슷한 서로를 끌어 당기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에고의 형성으로 자신의 에고의 바다를 만들어 놓는다.

그것의 자신의 환경. 즉 자신의 에고의 바다가 된다.

몇권의 책보다 한 사람과의 교류가 우리에게 더 큰 파장을 만들어 낼수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것은 무엇을 보고 듣는가가 아니다. 누구에게 듣는가 이다.

변화의 핵심은 무엇을 듣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듣는가" 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목소리를 말하는 그 "누구" 를  가려볼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함  때문일것이다.  

진정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이루어 내는 용기와 결단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을 만날때

그 사람은 멘토가 될 자질이 충분하게 된다.

그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는 책한권의 양보다 더 깊이 폐부를 찌른다.


진정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러한 에고와 환경들이다.

변경연의 진정한 강점은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 서로의 에고를 만나고 환경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서로에 대한  교류이다.

진정 변경연을 통해 변화를 가져가고 있는 사람들은 참여자 이지 자주 글만 올리는 사람은 아닐것이다.

자주 글만 올린다면 그사람은 그저 작가란 직업에 익숙해갈 뿐이다.

글과 글의 만남은 그저 소통의 매개일뿐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울림이다.

그리고 그 울림이 진정 에고를 출렁이게 하고 변화를 만들어 낸다.


현대인들은 바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귀기에 녹록한 시간을 내기 힘들다. 

그래서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들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온라인이란 공간을 통해 글로 소통을 이루어 내기도 한다. 

교회에 가면 교회를 믿는 사람들의 에고의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절로 가면 절에 다니는 사람들의 에고의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보통은 비슷한 성적군의 학생들 끼리 모임을 갖는다. 
비슷한 성적의 학생들의 시간활용과 공부개념이 비슷한 에고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변경연이란 곳에 오면 잘쓰지 못하는 글이라도 끄적여 보게 된다. 

이곳에 오는 순간 글을 읽고 글을 쓰는 변화의 에고들을 접하게 된다. 

책은 변화의 주체가 아니다. 
책은 사람과 사람의 에고를 좀더 잘 이해할수 있게 도와 줄 뿐이다. 

진정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또는 사람의 에고와 사람의 에고의 만남이다. 

에고의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 훔뻑 몸을 적셔야 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작가의 지망생들이 모여 있는 에고의 바다로 
공무원이 되고 싶다면 공무원 수험생이 모여 있는 에고의 바다로 
부자가 되고 싶다면 절약하고 재테크의 비법을 모아둔 에고의 바다로 
장사를 하고 싶다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에고의 바다로 
아침형인간이 되고 싶다면 아침형인간의 사람들이 모여 실천하는 에고의 바다로 

우리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친분관계와 다른 이해관계로 형성된 것이지 
목적을 가진 에고로 형성된 사람들이 아니기에 우리는 다양한 에고속에서 목적을 정확히 잡지 못하기도 한다.  

헌 사람들을 밀쳐 내고 새 사람을 얻어야 변화는 이루어 질지 모른다. 
성경에도 이르길 새술은 새푸대에 담으라 했다.

헌 사람들이란 우리의 친구와 지난 나의 에고를 함께 공유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의 에고와 습성 습관을 공유한 사람들일 것이다.

담배를 끊으면 주변 사람들이 외려 더 유혹하는 경우가 생긴다. 뒤처지기 싫거나 불안한 사람의 심리나 심보가
그럴지도 모른다.  

헌 사람들이란 과거의 에고들을 말한다.
새 사람들이란 새로운 에고들을 말한다.

새로운 에고를 익히기 위해선 헌사람들과의 교류를 조금 줄이고 새 사람과의 교류를 늘려 나가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때 과거의 에고에서 이탈할때 생기는 외로움을 달래주고 서로 의지가 되 주기 때문일것이다.

과거의 에고의 바다는 언제나 과거로 끌어 당긴다.

새로운 에고의 바다를 찾아서 그 바다속으로 뛰어들자.
그렇다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위해 쓸데 없이 힘을 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새로운 에고들의 형성하는 에고의 바다속에 몸을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에고의 바다속에 뛰어드는 것이 과거의 에고의 바다를 고쳐가는 것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인 일이다.
과거의 에고의 바다는 그대로 두고 새로움속에서 시작 하면 되는 것이다.

과거를 고치고 말고 할것이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고 끝나버린것이다.
지나고 끝나버린것을 어떻게 고친다는 말인가..
그냥 새로운 시작을 하면 새로운 시작일뿐이다.

점점 과거의 에고의 바다속에 있는 시간보다 새로운 에고의 바다속에 있는 시간을 늘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에고의 바다에서 시작하는것
그리고 그 시작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젖어들어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는것..

열등생의 습성과 열등생적인 에고와 환경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비슷한 에고를 끌어당기고 위안을 얻기 때문에 아마도 그 친구들도 비슷비슷할것이다.
그러던중 한친구가 갑자기 우등생적인 에고와 습성을 흉내내기 시작했다고 치자.
그동안 열등생 친구들은 그 친구를 은연중 시기및 교묘한 방해로 자신의 에고와 습성으로 동일시 시키고
위안을 얻기 위해 유혹을 던질것이다.
단단하지 못하고 한번 무너지면 계속 그런 에고들에 끌려 다니게 된다.
단단하게 그런 과거의 에고에 단절을 선언하지 못하면 변화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과거의 에고들이 계속적으로 끌어 당기기 때문이다.

그러다 공부를 잘하게 되면 아니 우등생적인 습성과 습관, 에고가 더욱 자라나게 되면 비슷한 또래의 습성과
에고와 시간스케줄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친구관계로 형성될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에고에서 단절을 선언한 외로움과 소외감이 새로운 에고를 통해 치유되는 것이다.

이곳 변경연에 모인 사람들은 어쩌면 과거의 에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그래서 어쩌면
외로운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만약 외롭지 않다면 아직 과거의 에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에고에서 외로워 지고 새로운 에고에서 위안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변화에서 과거의 에고에서 위안을 받을 생각을 한다면 그사람은 계속 과거의 에고에 끌려 다닐 뿐이다.

과거의 에고의 단절은 새로운 에고를 더욱 과감히 밀어부치는 힘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사실 단절이라 말할것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를 추구할때는 외로움이 따르고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과거의 에고속으로 숨어들어가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그 외로움이 새로운 에고에게 받는 위안이라면 그것은 끌어당기는 힘이 되지만 과거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쓸데 없는 짓이였다 치부될뿐이다.

열등생이 우등생이 되기 위해 노력해 봐도 힘에 부쳐서 다시 열등생들의 에고속에서 위안을 받으려 하면 그 친구들은 그저 우리랑 공부가 안맞는다고 그저 기술이나 배우자고 어찌보면 도전해 보지 않은 자신들의 선택을 현명했다고 위안 삼는 자기위로를 위안이라 던진다. 그러나 우등생들의 에고는 그친구를 위안해주며 문제를 분석하고 좀더 나아질수 있도록 희망의 메세지를 던진다. 하면된다. 끝까지 하면 된다는 믿음의 언어를 말이다. 이것이 과거의 에고를 단절하고 새로운 에고의 바다에 뛰어들어야 할 이유이다.  

변화를 추구하는 지금은.. 과거의 에고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에고의 바다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새로운 에고속으로 뛰어들어가지 못하면 과거의 에고가 계속 자신을 끌어 당길것이다.
새로운 에고의 바다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결국에 과거의 에고가 승리할것이다.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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