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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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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8일 01시 57분 등록
나는 나를 모른다. 아직 아무 것도 나아진 것이 없다. 성질도 그대로고, 습관도 그대로고, 단지 내가 <연구원이 되었고 글쓰기를 한다.>는 것 외에 "달라진 점"이라곤 없는 듯하다. 굳이 있다면 일을 쉰다는 것, 어떤 의미에서건 이제까지 와의 삶과 <다른 길>을 선택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분수령이 있을까?

아직까지도 정리된 것이 없다. 능력 부족과 낯설음과 걱정으로 어쩌면 더 이상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바뀌지 않는다. 변혁....
내가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토록 절실하기는 한 것인가? 흐음, 나의 변혁이란 것의 실체를 안다면, 내가 주장하는 것을 까발려 놓으면, 아마도 피식 웃어버리거나 보나마나라고 치부할 것이다. 누가? 나 이외의 모든 누군가가.

그렇다면 나는 변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 왜? 나는 일을 버렸다. 자의든 뭐든 없으면 불안하고 손에 돈을 쥐고 있지 않으면 가까운 친구조차 만나지 못하는, 그래서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만들어 놓아야 마음이 겨우 놓이며, 살던 대로 살아야 하고 그렇지 않음을 못 견디는, 이 쓸데없는 갈등을 하며 내가 사는 것이 요즈음이다. 결국 갈등이 변혁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인가?

그래, 결국에는 또 그놈의 돈타령이다. 나에게 있어 돈은 중요한가? 무척이나이다. 절실함은 결국에 돈이었을까? 모르겠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은 돈이 없다면 결국에 꿈도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막연한 염려에서다.

연구원이 된다는 것이 작가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라고들 선배들과 초아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그리 받아드리지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선발 과정에서부터 사고(?)를 쳤고 내내 주눅이 들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나를 지나치게 밝고 수다스럽다고 한다. 나는 말이 많다. 글도 길다. 길어서 짜증이 나고 읽기도 싫으며,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알 수 없이 쏟아내기 때문에, 횡설수설한데다 그들마저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좀 숙고해서 쓰고 탈고를 잘 해서 올리라고 하는데 ...
솔직히 방금, 그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되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특히, 4월에는 변화경영이야기를 꼭 쓰고 싶고, 써야한다고 생각 중에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일이 밀려 이곳을 방문할 수 없었다. 아니 자신이 서질 않았다.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다.

연구원이 되기 직전까지 나는 여기 변.경.연 이곳에 마치 일기 쓰듯 아무런 거리낌 없이 노골적이고 거침없이 지금처럼 글을 써 내려갔다. 마치 재봉틀을 돌리듯이 써야겠다고 하면 무엇이건 말이 되건 말건, 논리에 합당하건 말건, 누가 보건 말건, 아무런 의식이 없이 썼다.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는 모두 자유로워보였고 폐쇄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랬다. 그래왔다. 내가 한 가지를 포기하는 대신에 나는 또 다른 나, 내 안에 있는 나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응어리이고, 불안이고, 그 모든 것을 휘감고 있는 현재의 모습인 것이다. 나는 씻기지 않는다. 그 어떤 누구의 바람에도 말간 얼굴로 솟아오르지 못하고, 여전히 너저분하고 어지러우며 시끄럽게 떠드는, 온통 뒤범벅의 아수라장과 같은, 쓸모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며칠 전 착한 두 사람으로 부터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둘은 그저 막연하게 같은 말만 하였을 뿐 구체적으로 그 의미와 뜻을 전달하지는 않았다. 처음 한사람에게 들은 말 가운데 찾아낸 하나, 즉 그가 말하고자 한 본심은 생각 좀 하고 쓰라는 것, 거침없는 표현으로 인해 상처 입는 사람이 많다는 것, 잘 보고 행동하라는 싱싱한 충고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반발했다. 상대가 진의를 밝히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짜증난다는 이유가 그리 객관적이거나 타당하지 않았다. 연구원 게시판을 잘 몰라 개통이 되지 않은 줄 알고 올린 덧 글이 지나쳤다는 그의 말이 그토록 그가 화를 낼만한 상황이었다고 전혀 납득 할 수 없다. 혹여 나를 배려해서 예를 잘못 들었거나 비유가 정확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자기 딴에는 본심을 털어놓지 못해 소리를 쳤는지 모르겠다. 그렇더라고 괘씸했다.

나도 싸울 수 있다. 그보다 거칠고 더 강하게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우선 참았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뜻을 이해 할 수 없었고, 그 정도에 그가 그토록 화를 내는 것도, 그리 심하게 어필 하는 것도, 내게 이렇게 대드는 것도 용서하지 않을 수 있었다. 왜냐면 나도 결코 이유 없이 지는 성질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을 것이고, 여기까지 이 시간에 이 나이에 나를 죽이겠다고 들어와 박혀 있지 않을 테니까.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충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것이 통용되고 있는 것 같은 사실이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다. 나이 먹고 성질내는 것도 쉽지 않아 불같이 치밀어 오름을 억지로 삭히고, 내 딴엔 좋게 수습하였다고 생각하고 나갔는데, 어떤 장소에서 그 곳에서 우연이 또 한사람을 만나면서 똑 같은 말이 되풀이 되었다. 당황했고 이번엔 몹시 마음이 상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단판을 보지 못하였다. 그게 말 많고 수다스러운 내가 결정적인 장소에서 기회를 놓치고, 왜 그러냐고 따져 묻기 전에, 취하여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자리를 바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너무 늦었고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도 후배 녀석에게 전화가 오는 바람에 잠시 잊어 버렸다. 집에 돌아와 뭘까 무슨 이야긴가를 생각하다 글을 남겼다가 또 한 번 제2의 '사건'이 터졌다. 내가 거론한 것이 잠재적 문제점에 있었다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촉발이 되어 일제히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전혀 몰랐다. 다만 지난번 그가 남긴 말들을 대충 주어모아 조각을 맞추고 긴가민가하기 때문에, 단지 나의 느낌과 의견을 제시한 것뿐이다.

왜냐하면 그의 푸념 속에는 나만의 문제나 해당 사항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스트레스를 짐작하고 감안 하더라도 필요 이상에다가 날벼락 같은 모습이었다. 당사자는 아니라고 해명 하겠지만 내 보기엔 그가 두 달 동안에 받아온 일체의 스트레스를 그야말로 폭격이라도 가하듯 내게 내질렀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는 것 같았지만 내겐 이미 약속도 잡혀 있었고, 그보다 그가 나와 적극적 대면을 그다지 하고 싶어 하지 않은 상황이었거나, 그에게도 약속이 잡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돌아와 안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그 자리에 나가는 것조차 그리 달갑지 않은 듯, 글을 남겨 놓아 그 또한 영문도 모른 채 의아스럽기만 했었다.

사전에 그들 모임의 향방은 이미 알고 있던 상태라 무조건적으로 첫 대면에 그를 옹호하는 듯한 그를 만나게 된 것은 가히 유쾌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자리에 그렇게 앉기도 전에 할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도 분명히 참고 싶었을 것이지만 숨길 수 없었고, 이미 모두들 의견이 나눠진 상태라는 느낌도 받았다.

나는 그의 질문에서 사실 할 말을 잃었었다. 왜 따지듯 묻는 거지? 뭐가 문제라는 거지? 감정이 담긴 듯한 그가 서두르듯 재촉하며 내뱉는 그 말에는 분명 알 수 없는 가시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아니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어야 했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일단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의사를 나누기에 충분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잠시 따로 시간을 잠깐 내려 했으나 그들이 서둘러 차에 오르는 바람에 뒤따라갔지만 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하는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뚜렷하지 않았고, 그전에 그가 이해하는 그가 내게 말한 모든 자료가 명확히 남아 있긴 하지만, 그때 그들 둘의 말은 분명 달랐으며, 나중 사람은 먼저 사람의 심중을 100번 이해한 상태에서, 나에게 가하는 일방적 공격이었다 해도 아마 틀리지 않으리라. 도대체 무엇을 말함인지 영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되짚어 볼 수밖에 없었고, 따져보니 결국 그가 그동안에 그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겪어온 일들을 한꺼번에 이것저것을 다 말했다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인정하기 싫을 만큼의 과격함이었고 나도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에 해당하는 불만을 그가 제시하는 아주 미세한 부분을 꼬투리 삼아 자기를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날 같이 밥이나 먹자는 나의 제의를 어쨌거나 거부했고, 적어도 다른 장소에서 모임을 갖은 그들이 그 자리에 모인 몇몇과 더불어, 그가 무슨 의도에서 말한 것 이었는지를 아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보호막이 쳐져있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너무 이해가 가고 한사람의 의견만을 오래 들어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짐작하건데, 결국에 내제된 수군거림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또 다음날이 가고 늦게야 두 사람을 한자리에 만났지만 그중에 한사람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어봐도 "알 텐데?" 하며 말을 하지 않는다. 그와는 직접적으로 왈가불가한 것이 아니므로 더 따져 묻지 않고, 또 좋은 자리에서 늦게 만난 지라 잊어버리자 벗어던졌었다.

그전에 다투었던 장본인과는 그냥 말없이, 그가 다른 뜻은 아니었을 거고, 이래저래 지친데다가 받아 줄 마땅한 사람도 없어 그랬나보다 하고 풀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이었기에 마음이 수그러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말없이 서로 안았다. 내가 더 나이 먹었으니까. 멋 적어 하는 그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나를 더 세게 안았다.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하는...

나는 안다. 그 자리에서도 말했다. 그들은 천생배필처럼 요철과 같은 관계라는 것을. 마음에 없는 소리가 아니라 그들은 천성적 기질 면에서 아주 잘 맞는 짝을 만났다는 것을.... 그 인연의 고리가 부모와 자식이든, 스승과 제자이든, 친구든, 상사관계이든, 하다못해 솔잎막걸리 주모와 고객의 관계이든지 간에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은, 참으로 귀한 관계라는 것을. 그러나 결코 어느 것이 더하거나 덜하지 않으며 반드시 함께 있어야만, 서로 간에 제대로의 빛을 발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외로움이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거나 그리 유익한 생산을 이끌어 낸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외골수가 될 수 있고, 그러기에 편협해 질 수 밖에 없다.
성공하는 대게의 사람들에게는 좋은 성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렇게 성공하기까지 거쳐야 했을 노하우에 질긴 근성은 반드시 들어가 있게 마련이다.

다 예뻤지만 내 불만스런 현실로 인해 그들을 감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날 다녀와서 적은 글은 한글에 남아 있는데 지금 봐도 무난한 글이다. 그런데 메일을 다시 확인하고는 그냥 오늘, 지금처럼 써 내린 글은 첫째는 모호함과 둘째는 쓸데없는 참견 같은 내 영역 밖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글까지 담겨 있다.

그러면 내용면에서는 어떤가? 상대의 의중을 무시하고 내가 생각해온 일들에 대해 내 책임하에 글을 담았다. 모두 사실이다. 서포터즈에 대한 내 의도는 누구나가 꿈 벗이라는 관점이었고, 하나라도 더 늘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좋다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나는 성심을 다한 것이었는데, 남들은 그것이 다소 언짢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논의를 가까운 사람들끼리 해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은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내가 올린 문제의 글이 개인적인 사소한 것을 공공연한 공간에 올리는 것은 좀 그렇지 않느냐는 것과, 내가 다룬 사건 하나가 의미 있는 생각이라는 반응들이라고 한다면, 이번엔 가장 나이 많은 선배로부터 온 사람들 앞에서 내리꽂듯 한 사적인 시선을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일부러 그 방법을 선택하였으리라.

내 이름을 거론하여 제목까지 붙임은 물론, 내용까지 나만을 위해 담은 전혀 사적인 글이었다. 무슨 의도일까? 전체에게 전달하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전에 없던 관심에다 친밀감이나 애정이라기보다는 의도됨이 전면에 깔려있다.
내용을 떠나 일단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되fp 안심이 되기도 하고, 피차 막상막하라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메일이 오가거나 해도 내겐 덧 글 하나 제대로 달지 않던 선배인데다가, 친근감을 표현해도 거의 거부의 몸짓이었기에, '나 같은 것은 상대하기 싫은 모양이다'하고 체념하던 관계였다고 해야 할까.
선배 입장에서는 뭐라고 충고하기조차 난감함이 있는, 그의 용어는 항상 "특이한" 좀 별종이거나 유별나며, 어떨 때는 안쓰럽고 한심하기도 하다가, 아주 가끔은 피식 웃음이 나게 도 하는 좀 희한한 인종으로 비춰진 듯하다. 나란 사람이. 그러나 그게 나의 전부이기에, 나는 거부하거나 가리고 싶은 마음도 그럴 재주도 없다.

그녀의 글을 의미 있게 따져 본다면 너는 쏟아내는 글이다. 온 홈페이지를 누비며 정신이 없다. 좀 자재해 줄래? 너의 글이 좀 나아질 때 까지만 이라도.
이렇게 해석함직한 글이었다. 게다가 너의 리뷰는 완전 아니라는 말과 함께.
칭찬이 담기거나 희망인 듯한 그의 화려한 글 솜씨도 이러한 그의 본마음을 가릴 수는 없다. 아니면 가리지 않았거나. 그래도 문제될 것은 없다. 나는 이미 죽었거나 죽어야 하니까. 사실 최근에 올린 칼럼은 그에게 당함을 보복용으로 적용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의 못된 성미에서 연유 한다기보다 그동안의 우리의 생활과 교육이 그러하지 않았나 혹은 그의 일과 무관하지 않나 돌아 본 것이다.

지금이 뭐가 그리 대수랴. 다들 책 내는데, 나는 리뷰 하나 제대로 못 쓰며 허덕이고 있을 일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것이 더 한심한 일이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 오름조차 내겐 없다. 나는 책의 의미를 아직 모른다. 나는 단지 이 과정이 싫지 않을 뿐이다. 내게 만약 먹고 사는 근심, 내일에 대한 염려와 우선 바로 한두 달 안에 닥칠 위급상황만이라도 덜어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내게 닥칠 경제적 타격에 더 급급하다. 순식간에 나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고 허무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래, 까짓 거 될 대로 되라 하면서도 타격이 두려운 것은, 속물적 근성도 근성이려니와 내가 책 쓰는 일에 그다지 희망을 걸고 있지 않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 글쓰기에 대한 신뢰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책보다 돈이 더 좋을 수 있다. 잘살려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멋모르고 뛰어든 이 길에 나는 어쩌다 보니 여러 사람들과 같은 배에 타게 되었다. 책을 써서 어떻게 해보리라는 꿈조차 내게는 없다. 나는 내가 글을 잘 써서 이곳에 있게 되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일기나 쓰는 듯한 이 글을 내보이겠다는 욕심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단지 몇 명이 읽을 수 있는 내 개인사를 남겨두고 싶었을 따름이다. 독자는 지정할 수 없다. 단지 한 권으로만 족할 수도 있고, 그것조차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책은 독자가 선택하는 것이어야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면에서 내게 남기는 개인사를 묶어 보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누가 읽느냐 보다 과연 내가 쓸 수 있을까가 더 먼저고, 그 다음은 또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그런지 책보다도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온 내 시간들이 아무런 힘도 없이 나가떨어질 까봐, 그동안 기껏 다져온 내 생활의 기반들이 흔들리게 될까봐 훨씬 더 많이 걱정한다. 글을 쓰는 동안 잠시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거나 그것들에서 벗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인들의 염려대로 나는 계속된 넋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될 수밖에는 없는가?

나는 아직도 나의 글에 속상하지 않다. 뭐냐면 아직도 책에 겨우 빠져 간신히 해내거나 오늘처럼 종일 방황만하는 대책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게 개선이 그리 쉽지 않으며, 도약이란 어려운 단어에 불과할지 모른다. 무척 부끄러워하고 속상했지만 5번의 과제를 수행하고 난후로 개선의 여지가 별로 없는, 발전이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단정하고, 나를 어떻게 치유해 나가야 하는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던 참이다. 아무런 기대가 보이지 않는 스스로를 보면서, 어디에 방을 정하여야 하나 서성이고 있었다고 해도 별반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인정하고 유명한 선배에 대한 조언의 기대는 일단 접었더랬다. 애시에 나는 아무 욕심도 눈치도 볼 것 없이 일기를 쓰듯 글을 써 내려갔고, 나는 원래 나 싫다는 사람에게까지 구걸하고 살고 싶지는 않다(내 과거가 말해 줌 )는 것만은 아직도 분명하기에, 체념할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었다.

2차 최종 선발 시 사부님께서는 참가자들에게 평을 내려 주셨는데, 그것이 또 다른 해석과 함께 지속적인 빌미를 제공 하곤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별반 개의치 않아왔다. 포기라고 해도 상관없다. 글에서 밀려도 내가 이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면 나는 만족한다. 나는 글쓰기가 싫지 않다. 내용과 형식을 차치한다면 그다지 이 작업이 힘들지 않다. 나는 그래서 나름대로 잘 놀고 있는 듯하다.

아직까지 유독 초아선생님께서는 무슨 일로 개인적인 측은지심을 놓지 않으시지만 그것이 무엇에 연유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 초아선생님의 격려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 더러는 창피했고, 위안이 되기도 했으며, 이제는 단련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런 저런 정황으로 미루어 봐도 그렇고, 나 역시도 나는 아직 글쓰기 준비도 마음도 능력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 읽은 <미래생활사전>에서의 용어처럼 '치유로서의 글쓰기' 정도로 정해버렸다. '왜 나 같은 것을 뽑으셨을까?
심지어는 불쌍하니 명단에는 넣어둔다만 네가 알아서 해라' 라는 의미가 아닌가 까지도 생각을 했었다.

2차 경연 과정에서부터 독서한 것을 모두가 지켜보는 곳에 내걸어야 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책을 읽기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다. 리뷰는 얼마 만에 해보는 것인가? 아마 30년 만에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는 않더라도 대학에서도 그저 앞뒤 대충 베껴낸 기억밖에는 없다. 뭔가 적고 싶은 것은 많고, 연결하고 제시해나가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에 이럴 수가!' 밤샘을 하면서도, 단 한 줄을 못 쓰고 머리만 아픈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도저히 제출할 자신이 없어서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도저히 못 올리겠는데 어쩌지?' 물으니까 별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하지 않는다. 마치 빙정대기라도 하듯 알아서 하라는 반응이다. 마치 안 올려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머쓱한 대답이었다. 계속 고민을 했다. 밤샘부터 아침까지 엉킨 글과 싸우다가 보니 머리가 멍멍하고 뱅뱅 돌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처럼 사부님께 죄송할 때가 없었다. 심지어 배가 꼬이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안절부절 이었다. 새벽 일찍 마무리가 되었으나 책상에서 떠나지 못한 채... 10년 전 바로 그날로 돌아간 느낌보다도 훨씬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정말 발가벗은 몸뚱이 보다 더 부끄럽고 창피했다. 왜 그리 주눅이 드는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뭐가 어떻다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어려울 따름이었다. 마치 적진에 몸을 던지듯 그저 죽는 다는 심정으로 글을 올리고는 끙끙 앓기 시작했다.

글에서 그렇게 느껴졌는지 재동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고했다는 안부전화였으나 나는 괜찮지만, 정말 창피해서 혹시 뽑아주신 사부님 면전에 먹칠을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고, 모두가 손가락질 하며 시시하다고 비웃는 것만 같아 죄송스러울 따름이었다. 안 내려다가 겨우 제출했노라며, 창피해서 죽겠다고 하니까, 글쎄 평소와 글이 다른 것 같다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쉬라는 격려를 한다. 끙끙거림이 보이더란다.

그리고 안 내는 것이 사부님을 더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일 거라며 그는 힘주어 말했다. 뽑아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했지만 다 믿을 수는 없었다. 나는 예의로 낸 것이 아니라 <하기는 했으나...>이것 밖에는 되지 못했다는, 꼴지는 부끄럽지 않은데, 내 글을 보고 레이스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생겨날까 두려웠다. 나는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 지를 말없이 10년 동안 지켜본 사람이다. 단지 세 명의 친구 외에 마음을 터놓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사람에 대해 이해도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초아선생님이나 다른 이들처럼 <코리아니티 옛날이야기>가 저항이건, 남성 비하건, 감히 스승에 대한 모독이건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떨어져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 때문에 붙여준 다면 내가 생각하는 사부가 아니라고 내심 두판쳐버렸다. 행여 여론을 의식하여 붙여주고 알아서 떨어져나가게 하더라도 그것은 사부님 몫이지 내가 더 이상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고 있고, 믿는 단 한 가지. 사부께서는 당신의 글들 가운데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는 다는 믿음을 내게 심어 주셨다. 나는 내 개인사 50 여쪽을 거짓말을 담지 않았다. 쓰면서 들여다보니 내 개인사에 아직도 원망과 자기합리화 부분이 너절하게 남아있는 것이 아쉬웠다.
자랑할 것도 더 이상 내어 보일 것도 없는 데 무엇으로 글을 쓰나 나도 걱정한다.

내 불안은 좀 더 현실적이다. 내가 이 연구원이라는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됨으로써 잃어버려야 하는 기회비용이 더 문제였다. 나는 지독한 속물이다. 서방 없이, 자식 없이는 살았어도 돈 없이는 못 살았을지 모른다. 안 그런가? 그렇게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10년, 좋은 시절을 몇 푼 안 되는 돈벌이를 하며 직장이란 것에 목을 매고 살아왔던 내가 일을 놓았다는 것은, <논개> 못지않은 결단을 꿈꾸었다는 것, 적어도 사부님 문하에 드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사부님께 조차 절대로 부끄럽지 않는 일 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때 초아선생님의 글을 보고 놀랐던 것은 사부님을 향하여 내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부분과 사부님을 아끼지 못했다는 여론과 반응이었는데, 웃기겠지만 나는 얼마 전에도 사부님께 브레이저를 입히는 글을 썼는데 못 올리고 있다고 했더니, 그날 함께 밥 먹은 친구가 대번에 연구원들에게 무당빤스를 입히는 글을 올려놓더라. 그래서 알았다. 누군가에게 쾌감이 있었다는 것과, 우리들의 심리 속에는 그러한 글을 즐기는 이중적 구조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그런데 글을 잘 쓴다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안목 역시도 좁아서 나는 그러한 이론적인 글에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내 글은 어차피 이론서가 되지는 않을 것이고 아직까지도 내 리뷰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의 수집과 나열에 불과하다.

나는 그동안 많은 언어를 잃어버렸다. 단순한 삶을 살아왔고, 직장생활에서도 조직적인 일이 없었기에 몇 가지 쉬운 단어만을 사용하며 살았다. 그랬다. 나는 기술만 있으면 되었고 더 심하게 노동만 하면 그만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글보다 몸뚱이가 더 관건이었고 가치로웠다. 지금 내가 그 일들이 싫은 것도 몸이 달려서 이고, 글이 좋아서라기보다 어쩌면 내가 해온 일에 비해 쉽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죽었구나 잠도 못자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지도 못하고 휑하니 어지러운 채 뒤척이며 뒹굴 거리고 있는데 아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미 마감 시간을 한참 넘긴 뒤 어떻게 하였느냐는 전화였다. 그냥 끼고 있다가 마감전에 제출하였다고 하니 그러냐며 끊었다.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휴~ 내가 괜한 짓거리를 한 거나 아닌가? 내 무덤 내가 팠다는 자책이 밀려들고 암담함뿐이었다.

뻔히 아셨을 텐데 왜 나를 20명 안에 넣어주셨을까? 나중에 사부님의 대답은 "네가 가장 길게 썼다"라는 듣기에 따라 겨우 혹은 고작(?) 억지 같은 평가였다.

그냥 1차에나 성의로 뽑아주시고 2차에서 떨어뜨리실 모양이다 생각을 했다.
어쨌든 아무도 확인 할 수 없는 1차 내용이고 하니 모두가 대등한 상태에서 레이스를 펼치는 듯, 마치 내게도 일말의 자질이나 재능, 뭐 이따위 언어적 수식어가 붙어줄 만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도 성심성의껏 마지막까지 완주하는 모습으로 1차에나마 붙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표시를 해야겠다고 마음만은 먹었었다.

아니, 사실 단단히 마음먹고 한 번 끝까지 밀어 붙여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왜냐면 막판까지 우왕좌왕하며 그놈의 취직을 하겠다고 불과 마감 2~3일 전까지도 지방까지 헤매고 다녔기 때문이다. 병원 취직이야 서울도 가능했지만 장래를 생각해서 교직에 가는 것은 자리가 별로 없었다. 병원 2곳은 입사 확정, 그리고 지방의 학교에 면접을 보느라 최종까지 오르락내리락했다. 거의 좋은 대답을 들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지방에다가... 등등. 공채였고 무려 30명이 넘게 지원해서 최종 면접까지 10명이 올랐고 긍정적 답변을 받았지만, 나이도 있고 마지막 같은 기회란 것을 알면서도 결국엔 단념을 했다.

그저 병원정도는 아직 취직할 수 있다는 위안을 핑계 삼으며...
하루도 지나지 않아 후회가 되었다. 왜 내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고, 혹시 내가 무언가에 홀려 이리 판단한 것이 아닌가 두통이 일어나고 속이 메스꺼웠다. 장차 이 일들을 어찌 감당할까...

그리고는 1차 개인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이미 65페이지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다 쓰지도 않았는데, 분량이 너무 오버되었나 싶어 급히 마무리를 하고 줄이려고 하니 글이 엉겼으나, 미처 다듬을 새 없이 50여 페이지를 넘겨, 볼품없는 마무리를 하고는 막판에 가서야 겨우 제출하고 말았다.

그렇게라도 개인사를 적어 본 것에 어느 정도 만족해하며, 마치 정리가 다 된 사람처럼 일단 제출 한 것만으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 될 대로 되라하면서, 그러나 합격한다면 열심히 하겠노라 다짐도 했다. 모두가 그러했을 것이기에 그 말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능력이 있어야지 하며 체념한 듯 기다렸다.

1차 합격자 명단에 끼어 있었고 우선은 그저 완주에 목표를 두고 임하게 되었던 것이긴 하나, 그래도 그렇지 예상 밖의 어려움과 숨막힘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게 라도 써내려가는 내가 어찌 단 한 줄도 못 쓰고 밤새도록 읽고 또 읽으면서도 말만 꼬이고 엉키게 하는 것인지 미칠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이미 시작한 일, 과제를 제출하고 부족한 나를 깨달으며 현재의 나를 파악해야지. 어쩌랴, 이미 엎지른 물. 누가 나라는 인간을 알기나 하랴 하면서도 밥도 물도 아무 것도 삼킬 수도, 잘 수도, 무엇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모든 마음을 비워야 했다. 그저 버려야 했다. 욕심과 집착과 부끄러움마저도...

몸살을 앓고 나서 책을 읽는데 성급한 마음에 책장이 것 넘어 가고 무슨 말인지 온통 윙윙거릴 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독서실엘 싸들고 갔다.
그날 그 공간에서 졸음을 참지 못해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쓴 것이 <코리아니티 옛날이야기>라는 내 딴엔 제법 재미있는 글이란 생각에 평소대로 올렸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요동이 치기 시작했다. 소용돌이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고 마치 죄인이 된 양 온라인이 떠들썩했다.


나는 아직도 그 글이 마음에 든다.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고집스런 애정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나는 내 사부에 대하여 그렇게 느꼈던 것이다. 단지 그만큼만. 오늘은 그것이 사부를 험 잡거나 욕되게 한 것이 아니라, 너무 크게 본 것이 아니었든가 의심이 간다. 오히려 내가 너무 허황된 내 꿈에 사부님을 빠뜨렸던 것인가 하는 의문과 의혹이 처음으로 들었다.

나는 사부님을 크게 본다. 내 오랜 방황 때문에 더욱 그러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사부를 그냥 보통 사람처럼 살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숨겨진 성체가 하나쯤 따로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곤 하였다. 제법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과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초아선생님이 말씀 하시는 것만 봐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는 것은 결국 내 안에 내 그릇의 크기만큼으로 밖에는 사부를 담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식이야 감히 논할 수 없지만 꿈은 얼마든지 다르게 클 수 있다. 사부님은 나처럼 괴롭거나 나처럼 무엇을 원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길길이 뛰는 것을 보면. 나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나보다 훨씬 많이 알며, 나보다 가까이 지낸 그 사람들의 함성이라면. 나는 외계인이거나 이방인임에 틀림없다.

요즘 이런 저런 상념에 접하며 미뤄둔 계획을 보다가 문득 이곳을 지나친 김에 전에 없던 버릇처럼, 아니 진즉에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대고 바로 쓰나 탈고 작업을 거치나 별반 차이가 날성싶지 않은 글을 써본다. 내 글의 표현에 대한 한계에 벌써부터 봉착하게 되는 것인지, 그새 알아가는 것인지 모순과 이중성으로 묘할 뿐이다. 아무리 변해도 나고, 아무리 꺼내도 나며, 나아진 다는 감언이설과 속임 단계를 거치는 번거로움에 지나지 않는 수고는 아닐 런지. 잠시 회의가 밀려온다.

두 달여 동안 참아온 시선들이 그러하고, 여태 내가 나아지겠거니, 아니면 병든 몸과 마음 치유쯤이라고 생각하지 하고 기다려 봐도 아무 진전 없이 혹은 여전히 빌빌 기고만 있는 내 모습에 대한 압박과 화해, 포기와 체념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아, 인간아 ! 제발 정신 좀 차려라 하는.

사부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에게 눈치가 더 보였다. 왜 뽑은 거야 하는 것 같은 반응, 시선, 내가 제외된 대화....
욕심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나는 그저 달개 받았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 심경을 토로 했을 때, 어느 동료는 "그건 본인 선택이니 등록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도 난리를 쳐서 글을 못 써도 안 뽑아 줄 수가 없는 상황이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시껍한 내가 그 모두를 받아드리는 것도 결코 그리 간단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까르르 웃으며 하는 말 이었지만 웃는 말에도 뼈는 얼마든지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은 무심코 한말이며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고 상대방들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모순과 이중성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균형잡힌 보편적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단계가 아닌가 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우연에 의한 돌팔매를 맞는다 해도 변.경.연의 개구리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개구리들이라면 몰라도....


전혀 생각지 않은, 제법 역량 있는 선배의 공개적인 <써니의 글에 대한 충언>이 언젠가 초아선생님께서 사부님께 올리던 그 모습 그대로 방만 바꾸어 올려졌다. 초아선생님 버전을 흉내 내어서. 이 또한 세간의 입방아가 된 것이다. (덧 글의 사연조차 아무런 이유도 몰랐던 사람 아무개는 제게 대한 억울한 누명이라고 분통을 터뜨렸으니...... 해명하기도 힘들고 어려웠다.) 그는 이해나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애정은 아직 흡족하지 않다. 첫째, 그녀는 충언만 하였지 절을 하지 않았다. 둘째, 그녀가 진정 누구를 위해 올렸는지 의심해볼 일이다.
초아선생님께서 올려주실 때 보다 더 놀랐고 신기했다.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이 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해야 하나 어이없다고 해야 하나.

이 모순과 이중적 시선에 대한 균형을 잡아가는 일을, 보편적 사고를 지닌 여해님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교육은 누가 무엇을 가르치거나 도우려는 방식보다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와 절실함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고.

모두가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내가 이곳에 써니의 존재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우연한 삶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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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04.28 06:18:27 *.128.229.88
내가 너 사고 칠 줄 알았다. 그래서 너를 뽑은 것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이고 다만 생긴대로 살게 되어 있다. 그게 잘 사는 것이다. 그동안 마음대로 살지 못해서 모두 여기에 모인 것 아니냐.

나는 그대 때문에 매일 웃는데, 그대는 힘들었던 모양이구나. 내가 그대를 좋아하는데, 그대는 그것을 아는지 몰라.

언젠가 창자를 뒤집어 내듯 다 쏟고 나면, 남해 푸른 바다물로 속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걱정 마라. 너의 바다가 가장 빛나는 바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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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2007.04.28 08:12:19 *.109.118.173
써니님, 댓글하나 써야지 하다가 소장님 댓글읽으면서 웃습니다. 옆에 있는 우리딸은 왜 웃는데 하고 자꾸 묻습니다^^ 소장님 너무 근사하십니다. 그러시지요? 써니님 글 가끔 읽으며 저는 많이 부러워 합니다. 난 절대 못하는 일들이고 글들이라 진심으로 그랬습니다. 내막을 상세하게는 모르나 일전에 올라온 논란의 글들은 그간의 써니님 글들 가운데 백미였다고 기억합니다. 긴 글들보다 그때 그 시같기도 하고 비나리 같기도 한 글들 맘에 들었습니다. 오늘 이 글도 그렇습니다. 써니님 부럽습니다^^ 내가 소장님을 좋아하는데 ,그는 그것을 아는지 몰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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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4.28 08:18:20 *.221.217.55
내가 그 글을 쓴 것은 써니의 문체에 대한 발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이 글이 메일에 적당한가, 홈피에 올려도 좋은 글인가, 잠시 생각했지요.

"네 안에 가장 강력한 것에 집중하라" 같은 요점은 함께 읽어도 좋다고 생각했구요. 독자로서 진솔한 목소리라고 생각해서 올렸지요.

앞으로도 우리 연구원끼리의 피드백이, 의례적인 아는 척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객관적 시각'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너무 앞서간 것같네요.

내가 사과하지요. 늘 주제있는 이야기를 하고싶어하는 내 잘못입니다. 그만 마음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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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28 08:35:57 *.70.72.121
아니에요. 선배님! 이중적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쓴 거에요. 그날 따스한 시선 당연히 느꼈어요. 이렇게 생각해 봐야하고 생각하는 것 당연해요. 사부님께서 하시지 못하는 <귀찮은 일>이란 것 저 알아요. 위에 나온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이미 떠들고 까발겨도 아무 문제 없는 지난 이야기라 하는 거에요. 설마 노여움 아니시죠? 그러게 내가 밥먹자면 같이 밥먹자니까... 선배가 큰 일하신 것 선배는 아는가 몰라. 내가 자기 엄청 좋아하고 있었는데. ^-^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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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4.28 08:40:51 *.72.153.12
언니는 넘치는 게 매력이라고 여러사람이 말해줬잖아? 언닌 아직도 자신의 그 매력을 모르겠어? (언니 말처럼 오늘 나 무당빤스 입었다.) 나도 사부님처럼 그런 언니 모습이 너무 좋은데.
연구원 시험 치를때 그랬잖아. 나약한 언니는 싫다고. 그것을 스스로 깨고 나오라고. 그래서 언니는 그걸 깨고 나왔잖아. 그렇게 강하잖아.나와는 다른 장점이 엄청 많아서, 같이 하고 싶다고 한 내 고백도 잊지 말아줘. 우리는 모두 완전한 인간이 아니잖아. 오히려 어리석기 때문에 사랑받는 존재이잖아.

우리는 자신에게 아무런 고민거리를 주지도 않는 이를 사랑하지는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는 상관없이 세상을 살다가 가버리는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아. 날 고생시키고, 고민을 안겨준 그 인간을, 그 자식들이 깨물었을 때 더 아픈 손가락이 돼. 웃음과 눈물을 같이 선사하는 그 사람을 사랑해.

언니 사랑해. 힘내. 그리고, 이번에도 깨고 나와. 스스로 안에 갖히지 말고, 깨고 나와. 나도 내 알을 깨고 다가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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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4.28 15:15:41 *.202.137.110
누나, 내가 '글로 오바이트하는 여자'라고 해서 삐졌구나. 일단 누나 글을 읽으면 좋은 점이 뭐냐면 호흡이 길어져. 요즘 폐활량이 엄청 늘었어. ㅎㅎ

난 사람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다고 늘 생각하는 사람이야. 목표의식과 불굴의 의지보다는 내가 관심있고 흥미있는 게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든다고 믿어. 그걸 마음껏 표출해. 누나에게 느낄 수 있는 약간의 사람관계에 대한 컴플렉스가 쌓이지 않도록...

다다음주에 전화하고 설렁탕 삼총사(누나,소라,재동)하고 양재동으로 같이 와. 나도 편해서 좋은데 그녀는 알런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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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4.28 20:43:00 *.202.137.110
한 가지 첨언하자면, 명석 누님의 지적은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적은 비단 써니 누나 개인에 대한 것만은 아닐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보다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비판도 분명히 필요하다.

누나의 폭포같은 글쓰기는 살다보면이나 그 외 덧글에서 충분히 힘을 내면 될 것이다. 하지만 북 리뷰와 칼럼은 본격적으로 작심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독자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꼭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글이 사람을 설득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쓰는 사람이 말이 많고 흥분하면 독자는 외면한다. 반대로 보여주는 글쓰기는 금새 식상해진다. 논어에 나오는 '史野''를 기억해야 한다. '바탕이 문체보다 승하면 거칠고(野), 문체가 바탕보다 승하면 사치(史)스럽다. 형식과 내용이 고루 어울린 뒤라야 군자다.'

가닥을 잡고, 적절한 사례를 구해야 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무작정 길을 나서면 안 된다. 진짜 공부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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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29 01:18:04 *.70.72.121
으하하. 소라야! 우리 설렁탕 먹으러 가야겠구나. 히히히
밥 안 먹으면 무슨 일 날지 몰라서? 어쨌든 고맙고요, 선배님들 말씀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아요. 피가 되고 살이 된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두 분 선배님 말씀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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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2007.04.29 15:00:03 *.129.52.20
윤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 글에 답글 달다...
... 그리고 소장님 답글 보고 그냥 울어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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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007.04.29 19:32:33 *.103.132.133
언니, 마음한구석에 내가 그렇게 자리잡고 있었구나.
언니가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면 좋아.^^
나에게 기회를 주는 거잖아.
나때문에 마음이 아팠다면 꼭...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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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29 20:40:21 *.70.72.121
나경님! 저도 사부님 답글 보며 다시 웃어요. 왠 줄 아세요? 내 순대가 장난 아니게 길고 두꺼울 것 같아서요. 깔깔깔... 큰 일이죠?

정화야! 소라야! 누가 너네더러 양심 고백 하라그랬냐? 푸하하 미치겠다. 사실은 여기에 덧글 안달고 시침뚝 떼고 있는 양반들이 범인(?)들 이라는 거 그네들은 아는가 몰라.... ㅋㅋ

막내야! 넌 사부님에게 덧글 달지 왜 여따가 다는 겨? 너 시방 뭐하냐?
너무 절묘해서 우는 겨? 왜 여기와서 울어? 아하하하. 너무 재미있다.
막내야! Co 푸러스면(알지? ㅎㅎ)...다음부터는 한 달에 한 번 겨우 사부님 만나뵙는 수업 뒤풀이에 절대 빠지지 말아라 끝까지. 진짜 수업은 거기에서 선배들과 같이 하는거 윤이는 아는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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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2007.04.29 21:51:20 *.129.52.20
써니 언니... 너무 좋아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다가가려고 ㅎㅎㅎ
그냥 내 맘대로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이라 생각하니 왜케 눈물이
쏟아지는지, 뭐 이러면서 정 드는 거 아니겠어요? ^^;;; 다음에는 꼭
끝까지 남을께요, 나도 이제 고만 쑥스러워할까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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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
2007.04.30 00:43:05 *.142.163.4
나도 이곳에서 항상 좋은 말만 듣는 거 아니지만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분들이 많기에 이곳에 애정을 지니고 있죠.
덕담 한 마디 하기가 이번에는 왜 이리 힘든가 몰라..
구구절절이 말 안해도 내 맘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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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30 05:28:50 *.70.72.121
윤아! 너가 발표하면서 하도 사부님처다봐서 다 끝난줄 알고 박수쳤잖아, 너 보고 있던 언니가. 너는 발표하면서까지도 사부님과 연신 대화를 하더구나. 근데 왜 일찍가는 겨? 니 맴 다 아는디. 윤이는 알라나 몰라 사부님께서도 윤이 엄청 이뻐하시는 거.

혹시 설렁탕 드시러 왔다가 김이 새셨나요?
재동님에 대해 글 한편 쓰고 싶지요. 당신이 왜 멋진 사람 리스트에 있는지 그대는 알라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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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05.07 21:01:55 *.46.151.24
써니님께...

써니님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난 오래동안 칼을 다루었는데 결국 깨달은 것은
"칼은 위험한 물건"이라는 나의 사부님의 당부였습니다.

내가 내 안의 타는 불길로 두 눈에 파란 불꽃을 피우며
세상에서 광기를 부릴 때
나의 사부께서 커다란 부채를 허리춤에 꽂으시고
나를 불러 물가로 데리고 가셔서 내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원하는게 무엇이냐?”
“空前絶後 (예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습니다)”
“그럼 네가 두려운게 무엇이냐?”
“저 자신입니다.”
“다행이구나... ”
그렇게 그 냘 갑자기 천둥 벼락이치고 비가 쏟아지는데
사부께서는 내게 술 한 잔을 주셨습니다.

그런 나는 깨달음이 부족해서 ‘분수를 알아야 하느니라“라는
사부님의 당부를 저버리고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을 소란스럽게 했습니다.
어둡고 고통스럽게 성장한 내 안에 타고 있는 불길들 때문에...
“주화입마”로 (화기가 오르면 마성이 발동한다. 힘이 생기면 억눌려
있던 숨겨진 욕망이 나타난다 )
그렇게 반쯤 미쳐갈 때 나를 구원해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세상 그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너를 믿는다.”
그 단 한마디였습니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스런 대가를 치르면서 얻은 것을
버리는데도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멍 하니 서서 쏟아지는 비 속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야심한 밤에 어두운 산속을 헤메이며 칼을 휘두르며
내 안에 타고 있는 원한의 불길을 삭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내 몸의 분노는 다스릴 수는 있었지만
내 머리 속의 원한은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찾아 간 곳이 스승님 그늘입니다.
지금도 “병곤 회장님”이 내게 말하던
그 때의 산만한 나를 기억합니다.

앎과 행함이 일치하시는 스승님의 그늘에서
저는 마음의 병을 고쳐 가고 있는 중입니다.
많이 좋아졌으니 계속 노력하면 더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
칼이든 글이든 총이든 매 한 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검을 수련함은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사부께서는 “검은 만일을 수련한 후 입문하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형과 식을 익히는 것은 겉치레와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야 마음의 충동을 다스릴 수 있고 본의 아닌 실수를
줄일 수 있다 하셨습니다.
잘못 휘두르면 지키려고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롭다 하셨습니다.

스승님께서 저희에게 격이 없으시나 이는 우리들에 대한 배려이므로
우리는 그 배려로 인해 자유롭다 하더라도 예를 갖출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심이 깊어도 행함엔 정도’가 있다 하셨습니다.
저는 분수를 잃고 지나친 신념과 원한으로 가족과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

세상에서 듣기가 쉽지 않지만 참 듣기 좋은 말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이고
세상에서 자주 듣지만 정말 화나는 말이 미안하지 않으면서
어쩔수 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말일겁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진심으로 미안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합니다.
스승님의 그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유롭지만 책임질 줄 알고 진실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을 좋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글을 통해서 모이는 이곳에서 글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아주 오래동안 저는 두려워하는 것과 존경하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칼을 잘 다루는 물리적인 힘이 존경의 근원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이곳에서 아무도 스승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존경심으로 두려움보다 더 큰 어려움을 보게 됩니다.
스승님 그늘에 모이는 우리들끼리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도 뵌적이 없으나 거르지 않고 저의 글에 항상 댓글을 달아주신 써니님의 배려 또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들끼리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서로 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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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08 02:33:11 *.70.72.121
갑자기 쥐구멍 찾고 싶은 심정이네요. 이 일을 어쩌나...

과제중이니 다시 읽고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겁이 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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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08 12:42:00 *.75.15.205
늘 마음이 바쁘답니다. 늘 절절 매고 살지요. 내 글이 또 뭐가 잘못됐나 싶어서 다시 읽었습니다. 3 단락으로 나누어서 말씀하심이 겁을 먹었네요. 괜시리 검을 놓았다는 표현에 그 검이 더 무섭기도 하고요.

약간 그런 것 같습니다. 불과 한두 달 전과 많이 달리 헤이해 졌습니다.
저의 단점입니다. 아무나에게 기어오르는 거. 아팠다고 해서 성깔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닌가 봅니다.^^

글쎄요. 지금은 순할 때가 아닌지 아님, 순하지 않는 연령대로 가는지 좀 이상하답니다. 덕분에 균형잡기에 대해 신경좀 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몇 초나 갈런지... (밖에 누가 부르네요. )
아참, 사랑합니다! 저가 오지랖이 좀 넓은가 봅니다. 거르지 않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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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쌤
2007.05.14 01:23:45 *.207.221.12
음~~ 정신경영연구회에서 놀던 오리쌤 구경 한 번 와봤습니다.
한 편으로 부러우면서 또 한 편으로는 소외감???

님들 너무 자기들끼리만 노는 것 아닌감???
오리쌤도 껴주셈 ^^

정신경영연구회 나룻배님(요한쌤~~) 가끔 여기서 놀다 가겠습니다.
삐지지 마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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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4 12:11:07 *.75.15.205
오리쌤? 스스로 쌤으로 호칭해 달라는 의미? 왜 쌤통이라고 불러주고 싶지??? ㅋㅋ 나룻배님 엄청 좋아하니 바드릴까... 끼리끼리에 껴보실라우? 좋아요. 환영!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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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쌤통
2007.05.14 14:07:00 *.207.221.12
써니? 흠~ 이름이 선희인가? 이름을 알아달라는 의미? 왜 썼니~하고 물어보고 싶지??? ㅎㅎ 오리쌤님 엄청 좋아하니 바드릴까... 끼리끼리에 껴주실라우? 좋아여. 퐁당~~ 사랑하겠습니다. ........써니님 올해 아마 신림동에서 술 한 잔 거하게 같이할 것 같은 강력한 예! 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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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4 17:19:10 *.70.72.121
나도 좋아.. 오리심통으로 불러도 되면 내가 술살께^-^ 사랑하기로 했다. 나중에 초아선생님께서 좋은 호로 바꿔주실거야. 심통!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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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심통
2007.05.14 17:49:14 *.207.221.12
아아~ 오리쌤의 무너지는 카리스마 ㅠㅠ
오리쌤의 후배들이 보면 경악...
그렇지만 왠지 나쁘지 않은 기분 ^^ ㅎㅎ

음~ 특별히 오리심통으로 부르는 것 허락하겠슴.
(거의 오리쌤의 본질을 꿰뚫는 아디가 돼버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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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7 14:32:25 *.75.15.205
....... 학생들과 그들의 선생님인 에린 그루웰씨는 < 안네프랑크-어느 소녀의 일기(Anne Frank: Diary of a Young Girl)>와 나의 책<즐라타의 일기-어느 사라예보 아이의 삶(Zlata's Diary: A Child's Life in Sarajevo)>를 포함한 많은 책을 읽고 나서 자신들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임을 만들어 새롭고, 기억할 만하며, 인간적인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대충 생활하던 평소의 습관을 버리고, '자유의 작가(Freedom Writer)'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글 쓰고, 창조하며, 잘못된 선입견과 싸우는 일에 앞장섰다. ....... 나는 일기를 통해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나보나 나이 많은 친구들 중에도 일기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다가, 안네 프랑크와 아드리안 몰(Adrian Mole)의 일기를 읽고 나니 더욱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나의 일기가 책으로 나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게다가 전쟁 얘기를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 .......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든 적을 수 있고, 어떤 고민도 한없이 들어주기만 하는 일기장은 나의 친구였다. 일기장은 나의 공포와 의문 그리고 슬픔까지 모두 받아주었다. 나는 일기를 통해 글쓰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하얀 백지 위에 자신을 쏟아 부어 감정과 생각을 채우고,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전쟁이 지속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 일기를 썼다. 그것은 내게 모든 현실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삶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집과 가족, 학교 그리고 거리에서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을 안겨준다. 때로 우리는 피부색이나 가난, 종교, 가족 그리고 전쟁처럼 전혀 손쓸 수 없는 일들로 고통받기도 한다. 누구나 환경의 희생자가 되어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에 얽매이기 쉽지만, 반대로 인간적인 태도로 불의에 맞서고 부정적인 생각의 사슬을 끊음으로써 잘못된 길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경험을 글로 쓰면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경험으로부터 긍정적이고 쓸모 있는 생각을 얻어낼 수 있다. 많은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 일이지만 자유의 작가들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그들은 어렵지만 의미 있는 길을 택했다. ....... 그래서 나는 자유의 작가들이 극복하고 성취한 모든 것들이 매우 중요하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자신을 둘러싼 분노와 증오에 계속 갇혀 있다면, 그 씨앗이 그들 안에 남아서 미래에 그들의 아이들로 하여금 같은 역사를 반복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자유의 작가들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고, 자신의 긍정적인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교훈으로 전하는 일에 나섰다. .......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세상을 일깨웠으며, 그녀의 비극은 세상에 훌륭한 교훈을 남겼다. ...... 우리 모두가 자유의 작가들처럼 인간적인 방식으로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응한다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교훈을 남길 뿐 아니라 세상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세상의 모든 불의를 깨끗하게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불의에 대처하는 방법을 바꿈으로써 불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용기와 참된 자아를 얻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일깨울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으로, 또한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준다. 나는 이 책이 사람들로 하여금 불의와 싸우고, 긍정적으로 현실에 대응하며, 새로운 교훈을 얻어 다른 사람과 나눌 일기나 시 혹은 이야기를 쓰도록 영감을 나눠주길 바란다. -1999년 7월, 더블린에서 즐라라 필리포비치

위의 글의 내용은 < The Freedom Writers Diary - 에린 그루엘 지음>의 프롤로그 부분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추천해 주신 이 책이 저의 글쓰기에 힘이 되어주고 여러분께도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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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5.18 15:00:56 *.145.82.84
써니야!
세상에는 글쟁이가 하늘에 별 많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써니의 정열은 아무도 가지고 있질 않다. 무당 빤스든지, 이명박이 똥구멍이든지 무어그리 대수냐, 그걸 볼줄 아는 눈이 너에게는 있는데 일년간만 너글너글한 공부를 해 내어라. 도(서도)를 닦고 예(서예)를 구사해야 한다. 지금은 글을 쓰는 기본적인 틀을 갖추라는 이야기이다.

써니야!
경제적인 어려움, 외로움이 극한 상황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절절한 어려움이 너의 깊은 감성을 깨울 것이다. 정 어렵거던 부산에 와서 같이 살자.

써니야!
구선생님도 지금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이라는 책을 다시 써라고 하면 그렇게 절절하게 표현치 못할 것이다. 하늘이 너에게 소명을 주는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거라. 네년에는 째진 빤스를 입고 다녀도 괜 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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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8 17:19:58 *.70.72.121
ㅋㅋ 선생님 어디 다녀오셨어요? 사부님 음성이 그리도 듣고 싶으세요? 저희와 가차이 계셔야 하는 건데... 전보칠 걸... 너무 섭해하시지 마서요. 선생님께서 안 계시니까 상담코너를 그냥 주인없이 방치해 두시잖아요. 피가되고 살이되는 번데기.. 가 아니라 지혜로운 애정과 사나운 매를 동시에 주셔야지요. 암튼 이제 안심 휴~ 오륙도 선생님! 사랑해요~ 들리시지요. 초. 아. 선. 생. 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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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별
2007.07.06 14:41:14 *.176.143.34
즉설주왈.. 거침없고 매력있어요.. 전 그렇게 느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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