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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9일 13시 51분 등록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장면, 2006년 10월 ,삼성 에세이

나는 한 달간 그곳에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해가 뜨기 전에 깨었고 해가 진 다음에 자리에 들었다. 나는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변에 앉아 바다가 시간에 따라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곳에 올 때 작은 가방을 하나 들고 왔다. 그 속에는 두 개의 속옷이 들어 있었고 긴 팔 남방이 두 개 들어 있었고 바지가 두 개 들어 있었고, 두개의 양말이 들어 있었다. 치약이 하나 칫솔이 하나. 그리고 노트북이 있었다. 방을 구하는 데 쓰고 난 다음 내 지갑 속에는 천 원짜리 27장과 만 원짜리 4장이 들어 있었다. 나는 하루에 천원으로 살았고 토요일만 만원을 썼다. 토요일에는 소주를 한 병을 샀고, 쌀과 반찬을 조금 샀다. 내 방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요 하나와 작은 베게 하나와 얇은 이불 하나, 그리고 작은 앉은뱅이 밥상 겸 책상이 하나 있다. 이것이 전부다.

바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특히 이곳 바다는 오랫동안 보아 둔 곳이었다. 긴 백사장이 있고 그 한 쪽 끝에는 내가 늘 올라 가 멀리 수평선을 바라 볼 수 있는 작은 누각이 있다. 나는 저녁이면 대청처럼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날이 저물어 가는 것을 음미했다. 저녁은 그 특유의 평화로움으로 지고 있었다. 해안의 다른 한 쪽 끝에는 꽤 신기한 모양을 갖춘 바위들이 늘어서 있어 그곳에 앉으면 파도가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간혹 바위에 부딪혀 솟구 친 파도의 포말이 내 발끝까지 쳐 오르면 나는 얼른 몸을 움직여 피하곤 했다. 그건 내가 키우던 개와 놀던 몸놀림과 비슷했다. 나는 한 달 동안 바다와 파도와 바람과 장난을 치곤했다.

간혹 강한 바람과 비가 몰아쳤다. 파도가 높게 몰아쳐 웅장한 소리를 질러대면, 나는 웃통을 벗고, 바다로 나갔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의 포스터처럼 나는 쏟아지는 비 속에 두 팔을 벌리고 흰 백사장에 서 있었다. 원없이 폭우를 맞는 것은 오랫동안 내가 바랐던 장면이었다. 폭우 속에서 나는 눈을 뜨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 장울 들을 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눈을 뜰 수 없다. 이내 빗소리와 파도 소리와 온몸에 느껴지는 빗방울 속에서 나는 돌연 바닷가 모래밭에서 불현듯 솟아 오른 나무처럼 두 팔을 벌리고 서있다. 비가 내리면 내 영혼이 쑥쑥 자라리라.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면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리라. 그런 기대는 늘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비가 그치고 나는 동쪽으로 난 창문을 열어 젖혔다. 싱싱한 바람이 불어 들고 나는 밥을 차렸다. 밥 반공기와 김치 한 사발 그리고 아침에 내가 소금을 조금 넣고 끓인 배추국이 전부다. 그동안 너무도 많이 먹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아주 소박한 한 달을 지냈다.


나는 내 아이들이 태어날 때 아내와 함께 상의하여 아이들 이름에 모두 ‘바다 해(海)’자를 넣어 두었었다. 이제 나 역시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고, 세 번 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때부터 또 하나의 이름, 일해(日海)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른다는 뜻이다. 매일 바다에서 뜨는 해를 본다는 뜻이며, 매일 바다로 지는 해를 본다는 것이다. 환갑이 넘어 하루하루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이 살기 위해서였다.

2014년 가을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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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미래의 시간을 과거로 인식하는 훈련을 해 왔다. 미래는 이미 벌어진 것이며, 나는 미래를 회상한다. 이것이 내가 미래를 만들고 창조해 가는 방식이다. 8년 후인 2014년은 내가 환갑이 되는 해의 가을이 시작하는 때다. 나는 그해 가을을 이렇게 맞고 싶었다. 그것은 일종의 죽는 연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연습이기도 하다. 이런 작업을 통해 나는 매우 싱싱해 질 것이고, 바다는 그동안 내 속의 썩고 더러운 것들을 파도쳐 가져갈 것이다. 모든 더러운 것들을 품고도 여전히 초록빛으로 푸른 것이 바다다. 바닷가에서 보낸 한 달의 생활은 2014년 이후 환갑이 넘은 다음 살아가게 될 내 삶의 후반을 위한 프로토 타입을 모색하려는 실험이 될 것이다. 지극히 소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휴일에 술을 한 잔 하는 것은 이 이후 내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될 것이다. 바닷가에서의 한 달은 내 인생 후반부 1/3에 대비한 중요한 의식(儀式)이 될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후반부의 생활 기조를 ‘소박한 생활’로 잡아 둔 것은 그것이 추수를 끝내고 겨울로 접어드는 늦가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여름은 쑥쑥 성장하는 시기다. 여름을 잘 나는 법은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투자가 바로 여름을 나는 방식이다. 그러나 가을에 접어들면 인생 역시 추수기로 들어서게 된다. 이때는 가득 햇살을 과육 속에 힘껏 받아들임으로써 달고 맛있는 열매로 완성되는 시기다. 릴케 식으로 말하면 ‘마지막 며칠 동안의 뜨거운 햇빛’을 원하는 시기다. 열매를 다 따고 추수가 끝나면 식물들은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나는 60대 10년은 바로 단풍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통해 다듬어 온 모든 미덕이 완성되는 시기다. 잎이 나무와 작별하기 위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는 시기다. 이 10년의 시기야 말로 한 개인이 사회와 바쁜 만남을 가지게 될 마지막 10년이 될 것이다.

2014년 이후의 생활을 지금 ‘회고’ 하는 이유는 이 작업이 ‘지금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해답에 접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오늘 쉰 살의 초두에 내가 나에게 말하는 메시지는 ‘붉게 살아라’ 라는 것이다. 가장 달고 아름다운 열매가 되도록 힘껏 살고, 줄달음 쳐 달아나는 가을 햇빛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가장 커다랗게 가슴을 열어 두라는 것이다.

선생님, 머리가 희어지셨네요.
사람의 머리는 늙을수록 희어지고, 혁명은 나이 들수록 붉어지지요.

이 대화는 몽양 여윤형이 20년 선배인 쑨원과 나눈 인사말이라고 한다. 인생의 가을을 담은 메시지지만 뜨거움이 넘쳐나는 것을 억제할 수 없다. 종종 나는 ‘미래를 현재로 불러 들여 회고하는‘ 상상력의 발동을 통해 인생에 대한 전의를 되살리고 늘어져있는 자신을 발로 걷어차기도 한다. 그대들이 만일 더 젊다면 틀림없이 여름처럼 살아야 한다. 땀을 줄줄 흘리고, 가마솥 같은 치열함으로 살아야 한다.
IP *.116.3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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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남
2006.10.19 19:59:53 *.48.35.8
이런 멋진 문장에 어떻게 누가 어떤 답글을 달런지..
언젠가 저도 비오는 바닷가에서 한번 두 팔을 벌리고 서있어 보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저야 아직 괜찮지만 근데 그 비가 산성비면 어쩌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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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어린제자
2006.10.20 02:00:54 *.112.80.193
올 여름을 지나면서 제가 무척이나 간절히 해보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싶었지요.
억지로 꾹꾹눌러 참다가 견디지 못하고 꿈벗에게로 달려 갔나봅니다.

무작정 사부님을 따른 것이 송구하였지만 절대 걱정할 필요 없지요.
변화경영연구소의 수용의 힘으로 인해 무조건적인 긍정과 인격존중을 체험하였으니까요.

한 가지 제 욕심을 전해드리자면 동물은 자기성장의 5배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25세까지 성장을 하니까 125세까지는 충분히 살 수 있어야 한답니다. 요즘은 의학도 발달하고 했으니 지금 추세로 보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습니다.

소장님은 이미 소장님이 아니십니다. 저희들의 사부님이시며 시대의 소명이지요. 지금 보다 더 붉은 혁명을 이루시겠지만 가장(예순은 요즘 어른들께서 어리다(?)며 환갑잔치 안합니다.)은 아닐 것입니다.
결코 늙지 않으실 거에요. 저희들 기운을 모두 다 받으시니까요.
다만 더 원숙해 지시겠지요. 체력도 지금보다 더 관리하셔야 합니다.

오천만이 저마다의 꿈을 갈고 닦아 동방의 빛으로 거듭 나아가도록 붉은 불소시게로, 영원한 부지깽이로 그렇게 존재하실 뿐입니다.

저희랑 같이 하얀 머리카락, 앞니 좀 빠지면 어떠십니까? 꿈을 꾼다는 것은 사회가 부여한 낙인까지도 긍정의 힘으로 수용하고, 나아가 성취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연현상은 자연에게 맡기고 언제나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꿈꾸다가, 꿈속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땀흘리고 깨달으며 좋은 모습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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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2006.10.20 11:48:06 *.110.63.30
선생님 저는 여름 입니다 . 땀을 줄줄 흘리고 가마솥 같은 치열함으로 살아,,쑥쑥 성장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가을은 참 아릅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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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재
2006.10.25 01:50:45 *.211.180.171
선생님, 왜 가을로 그리 빨리 가고 싶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은미 누나 말처럼 저는 여름입니다.
가마솥 불을 너무 빨리 줄였나 봅니다.
다시 큰 장작으로 불꽃을 태워야겠습니다.
밥이 설 익으면 맛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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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2007.05.23 08:51:00 *.98.47.159
`자연현상은 자연에게 맡기고 언제나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꿈꾸다가, 꿈속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싶습니다.` 아~ 이 곳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예요...스승님도 그 제자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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