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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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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1일 11시 13분 등록
단식이야기 21일째부터 33일째까지 그리고 그 이후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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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째 - 지리산으로 이동하기 위해 준비를했다.
단식이 있었던 20일 동안 했던 일을 챙겨봤다. 친구들 만나지 않고 집으로 곧장 향한 덕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그동안 5권의 책을 읽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일찍 잠드는 습관이 붙었다.
몇가지 계획을 짜두었다. 1년정도의 계획이고, 1개월의 실천은 잘 진행되었다.
일과표를 만들고,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부치지는 않은 것이지만 그래도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이만하면 괜찮다.

22일째 - 설렌다. 지리산에 있는동안은 추울거라고 두꺼운 옷을 준비해 오라고 해서 그것들을 준비했다. 겨울옷꺼내서 준비하고, 빨래하고, 장갑사고, 등반을 하고 싶어서 등산화도 샀다.
이제 드디어 먹게된다는 기쁨이 점차 커지고 있다.

23일째 - 도서관에 책을 반납했다. 지리산에 가 있는 동안 대출마감일이 닥칠 것 같다.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9살때 본 영화에서 자신의 꿈을 찾고는 신부의 길로 들어서고 결국은 어린이 공화국을 건설한 사람과 스페인에 있는 어린이 공화국에 관한 이야기이다. 꿈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핸드폰을 일시 정지시켰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너무 행복해서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만 같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자랑을 했다. '나도 내일이면 먹을 수 있다.'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가 이렇게 기쁘게 하다니, 가장 맛있는 것은 '냄새'라는 말에 공감한다. 먹을 때보다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가 가장 맛있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는 것을...

24일째 (11월 3일 금) - 학원 오후수업을 오전으로 당겨서 마치고 터미날로 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익산 집에 들를 것을 생각하고는 친구들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어두었다. 이제는 친구들을 가뿐히 만날 수 있겠지.
챙긴 짐 속에는 일부러 책을 포함하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책을 읽으면 한두권은 거뜬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이면 그동안 한달동안 학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자연을 맘껏 즐기고 다른 삶을 살기위해 서울에서 하던 것들 몇가지는 집에 두고 가기로 결정했다.

25일째 (11월 4일 토) - 지리산에서의 둘째날
내 상태는 아직도 숙변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보식에 들어갈 수가 없다. 안타깝다. 일주일전에 봤을 때보다 얼굴이 많이 환해졌다며 같이하는 사람들이 보고 웃는다. 그동안 거울을 잘 안봐서 모르겠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편두통으로 3일째 고생하던 날이라서 얼굴이 어두웠을 듯 하다. 이곳은 공기가 좋고, 물이 좋다. 그리고, 따뜻한 방.
몇일 더 숙변이 나오나 두고 보자고 하신다. 얼굴이 많이 환해지긴 했지만 뱃속에는 버려야 할 것이 남았고, 그리고 약의 독성도 남아있다고... 빨리 밥 먹고 싶다는 것은 이렇게 한쪽에 금이 갔다. 몇일 더 기다리는 것.... 어렵다. 이것이 바로 제대 앞두고 다시 군대로 부터 부름받은 기분인가 보다.

26일째~27일째
먹고 싶다는 욕구때문에 열심히 움직였다. 힘이 남아 돌았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먹고 싶다. 간절히.
그래서, 열심히 땅을 팠다. 숙변 제거에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여쭈어 보았는데, 배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풀을 많이 뽑으라고 하셨다. 여기에 오기 전부터 마음속으로 이곳 마당의 잡초를 다 제거하려했던 것을 해버렸다. 밥먹고 남은 시간은 마당에서 질경이 뽑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도 힘이 남아있어서 또 뭔가를 찾아서 했다. 많이 움직이는 것이 숙변제거에 좋다는 말을 신봉하고.

28일째(11월 7일 화)
이제는 밥 먹고 싶어서 화가 났다. 정말 먹고 싶다. 먹기를 간절히 원해본 것이 언제였던가. 이제는 단식을 마치고 싶다. 일상으로 복귀를 위해서도 일주일 정도는 보식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보식 시작하지 않으면 여기 지리산에서의 일정이 자꾸 길어질 듯하다.
벌써부터 서울로 돌아갈 생각뿐이다. 원래는 10일 익산에 들러 부모님 뵙고 단식했다는 이야기를 하려했는데, 그러지 말라고 옆에서 조언해준다. 어머니께서 해주신 음식 거절하기 힘들거고, 그리고 간이 맞이 않아서 몸이 붓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그냥 서울집으로 돌아가라고.
모든 일정 틀어진 것이 머리에 열나게 한다. 풀뽑기도 오늘같이 하면 거의 피해 수준이다. 배에 힘이 많이 가면 좋다는 말에 닥치는 데로 뽑아댔다. 그중에는 사모님께서 귀히 여길 꽃나무 뿌리도 있다. 악심을 품고 화단밖에서 자란 녀석들은 있는 힘껏 다 뽑아 버렸다. '내일도 밥 안주면 다 뽑아버릴거야.' 목사님께서는 자기에게 조르지 말고 배와 타협하라고 하신다. 뱃속에서 자꾸 숙변이 떨어져서 제거되는 중에는 단식을 중단하면 안된다 신다. 왜냐하면 뭔가를 먹어서는 제거되는 것이 아니고, 다음번에 제거하려면 다시 또 20일이상 단식을 해야하기 때문이라는 옆사람의 조언도 있다. 그말들은 머리속으로는 이해되지만 다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29일째
풀들에게 패악을 부렸다.

울었다. 이나씨가 울었다. 그래서 같이 울었다.
마음의 치료를 받았다.
공주과인 줄 알았던 이나씨에게도 아픔이 많다. 이나씨는 이곳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치유되었다.
서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면서 치유된다. 사모님께서는 이야기를 이끌어 내신다. 혹은 그냥 듣고만 계신다.
병은 마음에서 오는 것 같다. 이나씨도 그러하고 같이 하고 있는 선배언니도 그렇고. 마음이 묶여 자유롭지 못하니 안에서도 묶이고, 그것이 결국은 눈에 보일만큼 커져 병이 밖으로 나온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가 풀지 못한 숙제는 별것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기에 그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누구나 이런거 한가지 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집에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 집에 전화를 했다. 아무도 안받는다.

30일째 - 드디어 과일을 먹었다.
'오늘 나는 새로 태어났다. 얼굴에 살이 당긴다.'
'아침해가 떠오름같이 나는 새로운 인생을 맞는다.'

같이 단식하시던 서선생님과 탁선생님이 단식과 보식을 마치고 떠나셨다.
서선생님은 얼굴에 생기를 찾았고, 탁선생님은 얼굴에서 주독이 가신게 보였다.

31일째(11월 10일 금) - 보식 첫째날
단식 시작하고 처음으로 밥을 먹는 날이다. 맛있다. 더 먹고 싶다.
줄어든 위를 생각해서 조금만 주셨다. 뱃속에선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32일째 - 보식 둘째날
많이 먹어서 다 소화되지 않은 듯 하다. 배고프다고 말씀드렸더니 더 주셨다. 아직은 장기들이 밥을 받아들이기에는 적응은 안 한듯 하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그런데, 서운하다. 아파서 온 것도 아니고, 이곳에서 뭔가를 정리하겠다며 일상의 것은 집에 두고왔는데... 대체 뭘 한거지? 잠이 안오는 밤이다.
암때문에 투병중이신 이선생님 가족이 왔다. 이선생님 아들과 몇가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려했는지 헛갈리고 그리고 그것이 잘 이루어진것 같지도 않다고 했더니, 그래 보인다고 한다. 병때문에 온 것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온 사람들은 나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 마지막 밤인데... 나는 특별히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33일째(11월 12일 일요일)
인사를 하고 집으로 오려는데, 그때야 내가 많이 위로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근한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음식을 가려서 먹으라는 말도 이제는 받아 들일 것 같다. 그전에는 먹고 싶다는 욕구로 가득해서 '집에 돌아가면 먹으리라' 그렇게 다짐했던 것들이 스르르 물러간다. 목사님 내외가 고향의 시골의 외할매 외할아버지 뵙는 것 같다.

그리고, 몇가지는 그냥 받아들이기도 해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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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집에 있는 동안 일주일, 뒹굴뒹굴하면서 지리산에서 하지 못한 정리를 했습니다.
나름대로 보식이란 것을 했고, 일상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했습니다. 지리산에 있는 동안 틀어져버린 일찍 일어나기를 다시 몸에 붙이겠다고 시도해보고.
그리고, 단식보다는 먹는 것이 더 훨씬 몇 100배는 어렵다는 것을 일주일 동안 체험했습니다. 먹으면 해로운 것과 먹으면 이로운 것을 따져서 바르게 먹는 법은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그리고, 한달동안 고생한 것 생각하면,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히히) 가끔은 험하게 다루어도 괜찮다는 것도... (헤헤)

절대로 무시하고 살수는 없는 것들 몇가지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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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11.21 11:38:33 *.145.231.158
좋은 몸으로 일상으로 돌아오셨다니 반갑네요.
담배끊은 사람들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었지요.
지금은 단식하는 사람들만큼 독(?)한 이도 없는 것 같군요.
몸을 혹사시키는 운동보다 몸을 자연에 풀어놓을 수 있는 흐름이 훨씬 좋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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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6.11.22 01:03:49 *.70.72.121
오랫만에 웃었읍니다. 너무 절묘하게 잘 묘사 되었어요.
류시화님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이후 처음 큰 소리로 웃었네요.

궁금했는데 글 올려주어 반가워요. 전화로는 이런 생생한 대화 못나누지요. 한거번에 다 정리하려 들지 말자고요, 생각하고, 수정하고, 실행하고, 보태고, 지우고, 참고하고, 반성하며 어제보다 나아져 가자고요.

금요일 데이트 안 잊었지요? 12월에 송년회겸 우리 맛난 것 실컷 해먹읍시다. 모모도 함께 불러서 삼선녀 한 번 뭉쳐 볼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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