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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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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3일 20시 17분 등록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1탄이라고 썼으니 2탄을 써야하는게 아닌가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혼자서 써야한다고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한달이 어떻게 지나가 버리는지, 한 해가 어떻게 가는지
숨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지냈다.
엊그제 저녁부터 으실으실 춥고 몸살기운이 있는 것 같아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지 하고 빈둥거렸다.
이렇게 몸이 싸인을 보내야만 겨우 쉬어주다니... 딱하다.

영화 “가을로”를 보고 중앙일보 홍혜걸 기자가 쓴 “치유의 2단계 과정”에 대한 글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치유는 현대물질문명사회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단어라고 했다. 크든 작든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지 않은 현대인은 드물지 않은가.
그가 말하는 치유의 2단계 과정은 “식힌 뒤 데워주는 것”이다.
마음의 생채기도 어디를 삐긋했을때의 찜질의 순서와 동일한 원리라는 것이다.
사별이나 실연, 천재지변이나 성폭행 아동학대와 같은 위협적 스트레스는 인간의 뇌 서커멓게 태워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고장난 회로는 우선 식혀주어야 한단다. 고통에 저항하지 말고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러나 단절은 아니라고 했다. 식힘의 본질은 소통.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뇌를 데워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처난 곳에 희망과 행복을 상징하는 새로운 뇌세포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이 되었건, 일이 되었건 자신을 잊고 헌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헌신할 수 있는 가치있는 대상을 다시 찾는 것!

그 글을 읽고 아! 그랬구나 싶었다.
첫 번째의 과정은 내가 무난히 넘었으나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까닭은 데워주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나는 비로소 내 상채기에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2002년 그 해를 많은 이들은 월드컵으로 기억할 것이다.
내게는 다른 의미로 아주 아픈 기억의 해이다.
일곱 살 난 조카 -그러니까 지금 딱 내 딸아이의 나이- 가 뇌종양으로 석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참 천사같은 아이였다.
조카를 보내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천안에 교육을 다녀와야했다.
부산에서 월드컵 첫 경기가 열렸나 나는 그것도 모른채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부산역에서부터 흥분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한달내내 나라는 흥분으로 가득했고, 우리는 마치 어디 먼 나라에 와 있는 사람들처럼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남편과의 불화는 그때가 최고조에 다달았다.

나는 누가 말해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식힘의 과정- 고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일년내내 고추장아찌, 오이장아찌... 시간이 나면 이런 것들을 담궜고,
배추김치, 열무김치, 총각김치.... 김치를 담궜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갔다.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 첫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그 후의 인생에 대해 아주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절친했던 친구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서른 셋의 언니가 두 조카를 두고 세상을 떠난 것.
학생운동에 너무나 열심이었던 친구는 그 후에 인생의 길을 아주 크게 바꾸었다. 티벳으로 기독교를 전하러 떠났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가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가끔 전화통화를 하곤한다.
다른 친구하나는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나서 공무원이 되었고, 연수원에서 자신의 남은 인생을 그래프로 그려보라는 주문에 일직선을 곧게 그렸다고 했다. 그때는 그랬다고 했다. 그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길 바란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해가 지나는 동안 이러저러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학 2학년때 신입생이었던 후배하나가 누군가가 죽은 걸 본 적이 있냐고 했다.
당연히 그런적이 없었지. 그로부터 십년이 훌쩍 지나서 나는 나보다 훨씬 어린 조카의 죽음을 처음 겪어야 했다.

석달...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삶이 두려웠고 ....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왜 그때 좀 더 많이 울지 못했을까...
내가 가장 힘들 때 가장 힘이 되어줄거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참 “남”같았다. 아니, 남보다 더 지독하게 나를 힘들게 했다.
누군가에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시간은 참 잘 흘러갔다.
딸아이가 일곱 살이 되었다.
올해 다시 월드컵이 열렸다. 아, 4년이 흘렀구나 싶었다.

그리고 올해 나는 새롭게 데워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말문을 열게 된 것만으로도 내가 치유의 과정을 잘 지나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아픈 상처의 기억이 자리잡고 있었던 곳에 새로운 희망의 싹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에 또다른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살아가는 힘. 나를 뜨겁게 하는 그것!
이른 아침 나를 잠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하는 그것!
살아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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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12.04 16:14:05 *.145.231.158
두렵지 않다는 것은 삶에서 희망을 보았다는 의미이겠지요.
살아 있다는 것은 하루가 새롭다는 말이겠구요.
그렇게 희망의 싹이 피어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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