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나의

일상에서

  • 자로
  • 조회 수 2552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6년 5월 11일 10시 33분 등록

9부 능선

어제 일이 바빠서 저녁을 먹지 못했습니다. 직원들을 퇴근시켜 주고 나니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후배(진 상무라고 부릅니다)를 태우고 그전부터 노래 부르던 복국을 먹으러 갔습니다. 사실 그다지 배가 고팠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먹지 않으면 손해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고 진상무가 소주 한 잔 하자고 하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끌려간 셈이었습니다. 비싼 요리는 포기하고 복지리를 시켜놓고 소주 한 병 주문해서 늦은 밤 빈속을 채웠습니다. 오늘 아침 야외훈련을 나가려고 하는데 속에서 이상신호가 와서 화장실을 들락거리길 몇 번, 결국 집에서 러닝머신으로 대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왜 항상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절제하지 못하거나 마지막 하나를 극복하지 못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비즈니스를 성공시키지 못하는 여러 경험들까지 불러 일으켰습니다. 한 시간 가량 생각한 아침 아이디어는 드디어 ‘9부 능선’이라는 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작년 마라톤을 시작하고 나서 몇 번의 풀코스와 하프코스를 완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풀코스 마라토너입니다. 그렇지만 제 모습은 그것과는 전혀 틀립니다. 작년 마라톤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배나오고 퉁퉁한 몸집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승완이나 다른 연구원들은 진짜 마라톤 하는거 맞냐고 할 정도입니다. 살이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이유를 잘 압니다. 몸에 운동량을 맞춰 버리기 때문입니다. 몸이 힘들어하면 운동량이나 강도를 힘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낮춰 버리는 것입니다. 풀코스를 4시간 이내로 완주하려면 42.195km를 km당 평균 5분대로 뛰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6분대로 달리는 습관에 길들여져서 sub4를 기록하지 못하는 것이죠. 1분을 당기는 훈련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즐기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내심 힘든 훈련의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합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환점을 돌고난 시점부터가 진정한 풀코스의 시작인데 30km대에서 속도가 뚝 떨어져 버리고 전투력이 사라집니다. 고수는 여기서부터 숨겨놓았던 2%의 실력을 발휘하는데 말입니다. 바로 9부 능선에서의 한 끗(화투용어)의 차이죠. 거품을 물면서도 죽어라고 달리는 그 힘은 의지력이자 승부욕이고, 수많은 대중들과 차이나게 하는 숨어있는 2%인 셈이죠. 바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무슨 늦바람이 났는지 공부를 하겠다고 나선 지금,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도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렸던 철없었던 저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그때 1년만 제대로 공부했었어도 하는 후회는 지금 와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죠. 시험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중고교생 자녀를 두신 분이 계시면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시험이나 공부란 것은 벼락치기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매일 꾸준히 예습과 복습을 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특히 영어, 수학, 과학은 연구원들의 공부규칙처럼 매일, 조금씩,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합니다. ‘공부의 성취는 머리가 만들어 내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끈질기게 오래 앉아 연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궁둥이살로 결정’된다고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공부의 경쟁력은 누가 끈질지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솔직히 공부는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점수가 평가가 아닌 상대성적이 평가의 잣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공부는 상대방보다 조금 더 앉아서 매일 공부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습관이 공부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물론 산술력이라든지 기본 이해력은 있다는 전제에서입니다. ‘끈기’가 공부의 경쟁력인 셈이 되는 거죠.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대체적으로 다른 이들보다는 관계네트웍을 잘하는 편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사람 사귀는데 부침성이 좋다는 말이기도 하구요, 인간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입니다. 진짜 잘 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제 경험을 토대로 9부 능선을 넘을 수 있도록 잘 정리해 보겠습니다. 저는 사람을 만날 때 이해관계를 우선하지 않습니다. 100%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상대방이 나에게 도움이 되겠다 않되겠다를 가지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를 할 때에도 이 원칙은 틀리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상대가 능력있고 지적이고 돈 많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면 만나고 싶고 사귀고 싶은 마음은 저 뿐만 아니라 누구에겐들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이들 곁에는 파리가 낍니다. 저는 그런 파리란 말을 듣기 싫어서 일부러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무지 잘합니다.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합니다. 제 이익을 우선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제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이 저의 진정을 이해해주기 때문입니다. 저도 바보가 아닌 이상 항상 손해 보는 짓만 하지는 않습니다. 금전적 대가가 아닌 마음의 이익을 얻습니다. 그리고 길게 봅니다. 아주 길게 언젠가 그가 나에게 도움이 되어 줄 그때를 생각하며 관계를 가집니다. 그래서인지 아주 많은 인간관계를 맺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저를 아는 많은 이들이 하는 평가의 대부분은 ‘저 사람은 사람이 좋아. 저 친구가 하는 말은 믿을 수 있어. 재는 최소한 사람을 속일 인간은 아냐.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아.’ 뭐 이런 종류들입니다. 제 자랑만 너무 많이 했나요? 쑥스럽지만 사실입니다. 최소한 그런 평가를 받으려고 행동하였습니다. 사람관계에서의 경쟁력은 진정성입니다. 그리고 헌신입니다. 내가 얻어야 할 이익은 상대방이 다 가져가고 난 다음 그가 진심으로 나에게 주는 것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내가 먼저 가져가려 합니다. 네가 나에게 먼저 줘 봐 그러면 나도 너에게 준만큼 해줄게. 현실적인 모습이죠. 그러나 사람이 최고의 경쟁력이 된 21세기 감성자본주의에서는 한 번 더 자신을 인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저는요,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안 만납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거죠. 그러면 제가 먼저 주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그게 맘대로 되냐구요. 안 되는 게 어딨니?

제가 제일 약한 부분이 ‘숫자’입니다. 계산하는 것을 잘 못한다는 말입니다. 학교 다닐 때 산수나 수학을 제일 못했습니다. 물론 다른 공부도 엉망이었죠. 제대 후 학생운동시절에는 돈 만지는 일을 한 2년 했습니다. 그때에도 돈 관리는 엉터리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숫자를 다스리는 일에는 약해도 숫자를 만드는 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공동주관 옵션을 가지고 호텔 측과의 협상으로 재정부분에 많은 기여를 하고 후임자에게까지도 적지 않은 플러스재정을 남겨주었던 경험이 있었거든요. 약한 부분에서도 자기만의 틈새를 찾을 수 있더라는 겁니다.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구태여 자기가 약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자기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더 빠르고 잘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자금과 총무쪽 업무는 가급적 제가 직접 보지 않습니다. 저보다 더 잘하는 친구에게 일임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하기 쉬운 영업과 개발 쪽 일을 더 즐겨 합니다. 저라고 항상 이쪽 일이 좋기야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이쪽 일이 더 쉬운 것을 보면 자신의 장점을 살린 분야는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잘 하는 일을 더 잘하는 것, 아마 이것이 비즈니스에서의 경쟁력이 아닐까요? 영업 쪽 일을 하시는 분들 계시면 꼭 한마디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영업은 절대 상층단위 영업은 하지 마십시오. 영업은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말단직원을 상대로 해야 합니다. 한 건 하고 치고 빠지는 것이라면 할 말 없지만 길고 오래할 거래라면 무조건 현장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고 영업방식이 바뀌었지만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영업의 기본입니다. 영업에서의 경쟁력은 머리나 말이 아니고 몸과 발에 있습니다.

경쟁력은 남들이 이쯤에서 포기하거나 돌아설 때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는 힘에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혁신의 방법에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되지만 자신만의 무엇,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회통하는 변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엇을 찾아내는 것이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드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가장 자기다운 방식이 차별적 우위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신저 ‘공익을 경영하라’는 책의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9부 능선을 넘어가는 한 끗 높은 고수들만의 비결이죠.

‘어제의 자신과 경쟁하는 것,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 이 끊임없는 여정, 이 줄기찬 탐험이 곧 위대함의 조건인 것이다. ······ 진정한 프로페셔널은 처음 시작하는 자의 흥분과 정신적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이다.’


IP *.118.67.206

프로필 이미지
박마리아
2006.05.11 13:27:31 *.216.20.225
참으로 따뜻하고 마음이 넉넉하신 분일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영업을 몇년 했었는데요..... 고객은 상대의 마음을 다 읽더라구요. 사람냄새가 물씬나는 충분리 공감하고 들어갑니다. 좋은하루 되시길 ...
프로필 이미지
자작나무
2006.06.22 23:06:42 *.236.203.143
장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심란한 마음 조금 정리가 되는 듯 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