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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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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4일 17시 18분 등록
 암투병 중인 이해인수녀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런 것이었다. “지금이야말로 깊고 영성이 담긴 시를 쓸 때야”, “십자가상의 고통에 동참해 이제야말로 수도자의 삶을 살겠구나”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녀는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그럼 지금까지는 다 가짜란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애정 어린 충고였지만 다들 너무 똑같은 말을 하니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암은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은 감기랑 똑같아’하는 말은 위로보다는 상처를 주었다. 


그러던 중에 김수환추기경과 같은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추기경께서 “수녀도 항암치료 하나?” 물어보았다.  “항암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사선도 겹쳐서 한다”는 그녀의 대답에 추기경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한참동안 말씀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의 위로에 지쳐 있던 그녀는 속으로 넘겨 짚었다. ‘어떤 말씀을 하실까? 지금이야말로 고통의 신비를 이해하고 교회의 어려움을 깨닫고 봉헌하라는 거룩한 말씀을 하겠지’ 하지만 추기경은 딱 한 마디만 했다. “그래? 대단하다, 수녀.” 그녀는 이 단순한 말에 투병생활 처음으로 울고 말았고, 그 뒤로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대단하네요” 이렇게만 말하게 되었다. 어떤 교훈적인 말보다도 따뜻하고 힘이 되었던 추기경의 공감을 깊이  새긴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사람을 몰랐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타지 않는 편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너무 의미중심적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채 듣기도 전에 자기 말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그게 아니라고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나는 너무 게을렀고, 서로 자기 말만 하는 것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인내심이 없었다. 유달리 언어에 민감한 탓도 있었으리라. 나의 센서는 아주 성능이 좋아서 거드름을 피우거나 시쿤둥한 것, 패배적이거나 잔머리를 굴리는 것을 모조리 감지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고, 슬픔으로 일관된 글을 읽으면 나도 덩달아 물속으로 가라앉을 정도로 감정이입이 발달하기도 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서 뚝 떨어져 정서를 자급자족하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타고난 기질에 부합했는지 별로 불편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제는 안다. 모여앉아 서로 딴 소리를 하더라도, 사람은 사람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사람은 혼자서는 행복할 수도 완성될 수도 없다. 서로 어울리며 부대끼며 일어나는 사건이 삶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삶에 출연하여 다양한 무늬와 음악과 향기를 드리워준다. 더러 고뇌를 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조차 나의 깊은 단면을 돌아보게 해 주니 모두가 내 스승이다. 예민하네 감정이입이 발달했네 하는 것은 자기합리화일 뿐 내게는 나와 다른 것을 포용하는 넉넉함이 부족했다. 내 영토에는 오직 ‘나’만이 존재하여 다른 사람을 들여놓을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오직 내 생각만이 중요했던  자기중심성은 거의 유아수준이었다.  이제 조금은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사람의 다양함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기꺼이 배경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멀리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경험을 했기에 ‘타자’에 대한 관심이 강하게 촉발되기도 한다.


어떤 말도 내 입에서 발설되었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성립한다.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에너지가 아니다.  내가 유일무이한 ‘나’로 바로 선다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타자는 나의 감옥’이라고 한 철학자도 있지만, 타자는 내 인생의 조연이고 관객이다. 그들이 없으면 내 인생이라는 무대 자체가 성립하질 않는다.


그래서 ‘공감’이다.  인생이라는 무대를 성공적으로 연출하고 싶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위로도 나쁘지 않지만 공감만은 못하다. 위로는 비오는 날 우산이 없는 친구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과 같다.  냉정하게 말하면 위로에는  비를 맞을 일이 없는 자의 우월감이 없지 않다.  반면에 공감은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가만히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최고임을 이해인수녀가 증명하고 있다. 조언이나 충고는 공감을 얻은 다음에만 유효하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충고는 폭력에 가깝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공감의 첫째 요건이다.


공감이라는 가치는 사회적으로도 크게 부각되었다. 2006년 전세계에서 생산된 디지털데이터는 인류 역사상 등장한 모든 책자의 정보량보다 300만 배 많은 수치라고 한다. 현기증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정보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는 거고, 그것은 바로 함께 느끼는 감동 즉 공감이다. 직업사회에도 명백한 흐름이 느껴진다. 이제 어느 분야에서도 기술의승부가 아니라 마케팅 싸움이다. 어차피 생산과 공급은 차고 넘치는 거고 누가 먼저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드느냐가 중요해졌다. 다니엘 핑크가 말했듯  ‘농부 ->공장노동자 ->지식근로자 ->창작자’로 진화해 온 직업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 예술산업에 종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끔 된 것이다.


어느 거리에 노숙자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들 앞의 팻말에는 “빵 사 먹게 1달러만 주세요” 라고 쓰여 있었다. 지나가던  마케터가 동전을 적선하는 대신 “배고파 보신 적 있으세요?”라고 팻말의 글귀를 고쳐 주었다. 그러자 그 맹인의 수입이 열 배로 뛰었다고 한다.  클린턴은 유복자였다. 그는 이것 때문에 주지사, 대통령 선거 내내 비아냥거림을 받아야 했다. 자기 잘못도 아니건만 이미지를 깎아먹는 아주 고약한 사안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했을까? 


"맞습니다. 저는 태어났을 때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 딸 첼시가 태어났을 때 아빠 얼굴을 똑똑히,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공감의 기술’! 걸인부터 대통령까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이 시대의 대표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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