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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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일 또한 우연처럼 시작되었다.
어느 날 작업을 하다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딱!하고 눈에 들어온 한 권의 책.
찰스 핸디가 아내, 엘리자베스 핸디와 “신세대 자선사업가”에 대해 공동으로 작업한 책이었다.
이 책은 핸디가 영국을 중심으로 서구 사회에서 제2의 인생을 “자선사업”으로 전환시킨 23명의 사람을 인터뷰한 책이다.
예를 들면, 이베이의 창업자 제프 스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의 어릴 적 꿈이 작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시도 작가로서는 ‘밥벌이’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공대로 진학하였다가 대학 동창과 이베이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온라인 최대 히트작이 된 것이고, 스콜은 이베이가 성장의 정점에 있을 때 보유주식을 처분하고 이베이를 떠나는데, 이유는 단 하나 “늘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천재적인 발상을 지닌 그에게도 작가적 재능은 크게 허락되지 않은듯하다. 스스로 제2의 인생도 작가로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을 내리니 말이다. 대신, 이야기를 제작하고 책보다 조금 더 큰 영향력을 지녔다고 믿는 영화제작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해본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시작해서 독립영화 그리고 상업영화. 조지 클루니 주연의 “시리아나”가 그가 제작한 영화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영화 제작과 “신세대 기부문화”가 무슨 연관이 있냐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건 스콜이 다루는 영화 주제가 일반적인 혹은 상업적 성공을 노리는 헐리우드 제작사들은 손대지 않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만한 영화에 자본을 투자하고, 영화 개봉과 함께 관련 분야 사람들과 함께 사회적 캠페인을 벌인다는 사실이다.
물론 스콜의 경우는 유명인의 스케일 큰 사례이고, 23명 중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나눔의 가져온 비범한 이야기들도 있다.
“어라? 이 책이 왜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을까..?”
책을 살펴보다 든 생각이었다.
가만 살펴보니 초판 발행이 2002년이다.
2002년이면 한국은 가히 경제대난이란 일컫는 IMF을 간신히 빠져나오려 발버둥치고 있을 시기인만큼 “자선” 혹은 “나눔”과 같은 단어가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러니 그 나름 고정 독자를 지닌 핸디 책이라고 할지라도 출판사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 지금은 2010년 (그 책을 발견한 것은 작년의 일이다).
이제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들도 주목받는 시기이다. 그렇다면 보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논하고 있는 핸디의 “신세대 자선사업가” 메시지에 대해 우리도 한번쯤은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사실 너무 급히 달려오느라 많이들 지쳐있다. 그런 상황에서 “건강한 자본주의”라는건 누구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에 읽은 김 용규 선생님의 책에서 오나시스가 빌 게이츠를 성공하고도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으로 지목하고 있듯이, 빌 게이츠의 재단과 그의 재단에 기부하는 워렌 버핏의 소식을 접하며 우리 사회도 좀 더 자본이 건강한 흐름을 타면 좋겠다 생각하고는 했다.
혹시..하는 마음에 평상시 늘 고맙게 생각하던 출판사 편집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실장님, 핸디의 ‘신세대 기부문화’에 대한 책이 있는데요.. 이러구저러해요..”
“그래? 그럼 내가 저작권에 대해서 알아보고 연락해줄께”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보통 이런 일들은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일년이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던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선배들과 신나게 일 하나를 막 마무리한 다음날이었다.
“핸디 책 번역 시작해. 저작권 계약했어~”
“어머, 실장님! 저 어제 하던 일 막 끝낸거 어떻게 아셨어요?”
“원래 다 그런거야~”
그렇게 처음부터 우연처럼 다가온 찰스 핸디의 책.
번역가들로서는 자신들이 번역해야 하는 책 저자와 생각을 공유하지 못하면 참으로 괴롭다. 마치 손과 발을 다 묶인 체 뛰어야 하는 심경이랄까. 그런 만큼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자 중의 한 사람인 핸디의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기쁨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내게 온 경로가 믿기 어려운 우연이란 별동별을 타고 흘러들었기에 더더욱..
그러나 일상이란 녀석은 참으로 변덕스럽다. 기쁜 일을 가져다주고 돌아서서 골려먹는다. 마치 그러함이 자신의 기쁨이란듯이 말이다. 한참 집중해서 번역을 하는 중간 덜컥 병에 걸렸다. 두 가지 병이 형태를 달리하여 번갈아 찾아와 한달간 진통제와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정신이 몽롱하니 몸도 마음도 가라앉는다. 때맞춰? 짬짬이 읽고 있는 해세와 분석심리학 책들이 모든 거 다 집어치우고 무의식 세계에 침잠하라 유혹한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차가운 어둠을 배경으로 자꾸 내 안으로만 가라앉으려 하는 나를 애써 잡아준 것이 번역 작업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이 일을 끝내야만 하니까 융의 거대한 무의식 세계로 너무 깊이 끌려들어가지 않고 나를 멈출 수 있었던 것 같다.
깊은 겨울 사이로 언뜻언뜻 스쳐가는 봄의 향기를 부여잡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작업에 몰두하였다. 3월 말. 겨울과 함께 초고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단군 3백일차가 끝나던 날, 출판사에서 요청한 교정 원고까지 수정하여 최종원고를 넘겼다.
그렇게 하나의 삶이 내게 왔다, 그렇게 또 지나갔다..
지난 겨울은 찰스 핸디의 책을 번역할 수 있어 감사했다.
“신세대 기부문화”
작업을 하면서 많은 것이 내게 흘러들어왔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난 겨울은 해세와 융에게 배움을 얻을 수 있어 감사했다.
“내면탐구와 자아성장의 대가들”
연구원 1년차때와는 다른 내면탐구의 길을 걸으며
깊고 어두움 속에 감추어진 빛을 찾기에 나의 에너지장은 미약했다.
계속 더듬고 헤메기만 하였지만 그래도 심연 깊은 동굴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보았음에 감사한다..
봄이다..
겨울에는 겨울처럼 살았으니
봄에는 봄처럼 살고 싶다.
봄에는 아무래도 모든 것이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나니
나 또한 자연을 흉내내고 싶어진다.
봄에는 봄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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