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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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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5일 14시 13분 등록
 “숟가락은 뜬다. 젓가락은 집는다. 숟가락으로는 물을 떠먹을 수 있다. 젓가락으로는 물을 집을 수 없다. 뜬다는 것은 모신다는 것이다. 양손 혹은 한 손을 둥글게 오므려 샘물이나 약수를 떠 마실 때, 그 행위는 단순한 ‘먹기/마시기’를 넘어선다. ......무엇인가 숟가락으로 떠서 입속에 넣을 때 우리는 반드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무엇인가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속에 넣을 때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 할 필요는 없다. 손을 오므려 약수를 떠먹을 때처럼, 숟가락은 공경을 내포한다.”


평생에 걸쳐 만난 필독서 100권을 3번씩만 읽으라는 말에 접했다. 그러면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끝난다는 얘기였는데, 글쓰기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고민도 끝날 것 같을 정도로 열광하는 기분이 된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이토록 빨려들어가는 것은 내 안에 그에 상응하는 경험이 있다는 증거일 터. 최근에 김선우의 책에서 너무 강렬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김선우의 사물들’을 몇 년 전에 읽었다. 아니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심히 펼쳐든 이 책은 완전히 낯선 세상이었다. 읽었다는 기억만으로 이 책을 다시 읽지 않았더라면 내가 놓쳤을 것들이 너무 엄청나서 가슴이 철렁할 지경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내 글쓰기가 겨우 내 의사를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그녀가 펼쳐놓는 현란한 비유와 묘사, 사유의 깊이와 너비를 이해할 자원이 내 안에 없었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책을 쓰고 강좌를 시작하며 읽고쓰기를 계속하는 동안 제법 나의 글세계가 변했나 보았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언어재능이 비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에서 보여준  맹랑한 자의식과 풍부한 어휘력은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시 뿐만 아니라 산문과 소설, 시나리오, 동화까지 종횡무진 누비는 도전정신이 흔치않다 싶었다. 그런데 2005년에 출간된 두 번 째 산문집인 이 책에서 비로소 그녀와 제대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못, 걸레, 손톱깎이, 쓰레기통처럼 사소한 사물에 대한 상념을 풀어낸 글모음인데,  섬세하고 사려깊은 문장이 모조리 명상이고 잠언이다. 그녀는 사소하다 못해 하찮은 사물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매일 쓰고 있지만 조금도 눈길을 끌지 못하는 숟가락에게 저만한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 또 있었을까? 그녀의 시선은 인간과 생물을 넘어 무생물에게까지 열려있고, 자유자재로 원근을 조절하여, 작은 것에 한없이 예민한가하면 가차없이 냉정하게 정치경제의 역학을 본다.


전에는 꽃사진을 즐겨 찍었단다. 그러다 어느날 눈 속의 복수초를 찍는데 지층이 화들짝 놀라며 깨어나는 것 같아 꽃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덜 찍게 되었다는 식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감수성이 자폐적인 상상력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봄밀이 익을 무렵이면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가고 싶다고.  착륙하기 오륙 분 전에 잠시 보이는 지상의 풍경 때문인데, 황금빛 밀밭 속으로 보이는 초록빛 무덤과 그 주위에 바늘땀을 놓은 듯한 검은 돌빛이 아기자기한 조각보같다고 한다.  제주바다까지 이어지는 그 선명한 빛깔의 향연 속에서 삶과 죽음의 원융을 느낀다는 그녀의 묘사를 따라 상상해보니 이만한 호사가 없겠다. 황금빛과 초록과 검정과 파랑이 출렁이는 거대한 캠퍼스를 비행기를 타고 구경하다 아예 그 캠퍼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절정으로 다가 온다.  그런가하면 지구의 검은 피 석유자원을 둘러싼 전쟁에도 매서운 비판을 날리고 있으니, 그녀의 전방위 초강력 센서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스무 편의 산문을 천천히 읽고나니 그녀의 작업방식을 알겠다. 그녀는 우선 주변에 널려 있는 사물들을 차분하게 둘러 본다. 그러면 말을 걸어오는 것이 있다. 물론 그것에게 말을 거는 것은 그녀의 무의식이다. 어느 것 하나를 지목했으면 그 다음에는 집요하게 그것을 응시한다. 생김새와 쓸모를 짚어보고 묘사하고, 그것과 연루된 기억을 불러 온다. 그녀의 묘사는 어찌나 치밀하고 웅숭깊은지 나도몰래 감탄의 신음소리를 내게 된다. 쓰레기통이 일기란다. 자질구레한 일상의 매 순간에 내재한 율동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란다. 이미 죽은, 그러나 바로 직전까지 살아 있던 것들이 남긴 녹취록이란다. 걸레의 존재방식이 생의 한가운데처럼 복합적이란다. 정결함을 품은 더러움의 형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나도 사물이 건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만히 귀기울여 내 안의 기억과 조합시켜 볼 것 같다.


그 기억 역시 대단할 필요가 없다. 그녀의 기억들도 작은 부싯돌이 부딪쳐 내는 불꽃처럼 사소하다. 너무 작고 순간적이라 어떤 뜨거움도 느껴지지 않는 그 불꽃은 그러나 그녀의 손 끝에 걸리면 삶과 세상의 이치를 꿰는 실이 된다. 그녀가 어릴적 떠돌던 풍문 중에, 달밤 장독대에서 입에 칼을 물고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천천히 열까지 센 후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장차 사랑하게 될 운명의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이 있었단다. 부모님이 집을 비운 어느날 여중생 김선우는 동생과 함께 그걸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장독대에 나란하던 옹기들의 불룩한 배를 쓰다듬는 달빛이 스산하여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려 온 그 밤에 그들이 본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평생에 걸쳐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 것이다!


나무와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는 일이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지복 중의 하나란다. 나도 그랬는데? 나도 아침저녁으로 조그만 뜰의 나무들에게 문안드리며 위안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산책만 가면 반드시 눈맞추고 오는 몇몇 나무가 있는데?  이 순간 나는 내 글쓰기의 고질적인 버릇 하나를 뛰어넘는다. 내 안을 뒤지기보다 남의 책을 먼저 뒤졌었다. 사물이고 감정이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것의 의미를 증폭시켜 우주까지 가 닿게 할 철학이 부족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느리다못해 적요한 시간에 사물과 한담을 나누는 자세를 배운다. 작은 돌로 물수제비를 떠도 퐁퐁 번져나가는 수면처럼 예민한 심성을 배운다. 이토록 세심하고 풍부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쏟았을 전념을 배운다. 모두가 그녀의 책을 두 번째로 읽지 않았다면 놓쳤을 것들이다.


누군가의 책을 3번 읽는다면 그 저자가 내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가 어떻게 글감을 건져 올리며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어떻게 끌고 나가 마무리 짓는지가 훤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여 어떻게 활용할 지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중에는 각별하게 표현력, 창조성, 논리력, 성찰... 이 뛰어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통해  표현력, 창조성, 논리력, 성찰...이 무엇인지를 몸소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내 식대로 통합되며 도달하는 경지는 난공불락의 차별화 성역이 아닐지? 내 인생의 책 리스트를 정리해 봐야겠다. 시차를 두고 꼭꼭 씹어가며 변주되는 감흥을 기록해 봐야겠다. 그 첫걸음의 감격을 안겨준 ‘김선우의 사물들’의 한 구절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봄에, 나는 늘 쩔쩔맨다. 봄꽃이 피고 지는 모든 절정의 순간들에 가슴이 뛰고 온몸이 간지럼을 타듯 해사해져서 어쩔 줄 몰라 한다. ‘환장하겠다’라는 말은 봄꽃 속에서 무르익어 터진다. 봄에, 활짝 핀 꽃나무만 보아도 가슴이 둥당거리고 먼 데 꽃나무까지 기어이 찾아들어 꽃그늘 아래 앉으면 한나절이 무상하게 흔적도 없이 훌쩍 흘러간다. ‘무상無常’이 이처럼 물질적인 자각으로 현현하는 환장할 꽃나무들! 삶에 대한 열망과 무상을 동시에 열어젖혀 흔들어보이며 봄이 오고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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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08.8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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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05.16 09:25:59 *.169.188.35
명석님은...

혼자 계실 때 말을 하세요. 말을 들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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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05.16 19:45:51 *.10.140.89
다른 손에 관하여..

김선우..

아파트 놀이터에 한 아이 놀고 있네
웃으며 빵 부스러기 떨어뜨리네
다른 손으로 개미를 눌러 죽이네

애야 개미를 죽이지 마

죽이지 말라니까!

왜 개미를 죽이면 안 되냐고
다른 손의 아이가 내게 대드네

제발,

웃으면서 죽이지는 마

한 아이 울면서 빵 부스러기 떨어뜨리네
다른 손으로 개미를 눌러 죽이네
아파트 놀이터에 한 아이 놀고 있네..

(내 몸속에 잠드신이 누구신가 P.140)

================

시를 읽다가 나를 읽었습니다. 내 자신의 과거를 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몰랐다라는 말로만 용서될 것이 아니라 나의 무지와 허물을 이제서야 알았으므로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지난해 도토리를 주어 집에서 싹을 내어 공원에 옮겨 심은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처음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난 탓인지 지난 추운 겨울이 몹시도 견디기 어려웠나 봅니다. 가지가 일부는 죽고 새로 나오던 가지도 또 마르고 이제서야 갓 잎파리를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 그 끈질김을 배우고 나의 조급함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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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1.05.16 20:54:13 *.108.80.74
오우! 햇빛처럼님의 놀이<정신>세계가 정말 다채로운데요!
지난 번에 컴퓨터 관련 - 읽었어도 무슨 소리인지를 모른답니다, 저는. ^^
쾌거를 보고 짐작은 했지만,
거기에 시를 좋아하시는 것도 참신했는데
도토리 싹 틔우기는 요즘 애들 말로 '대박'입니다요.
아이들하고 같이 실험하셨나 보네요.

문득 햇빛처럼님의 조금 긴 글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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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11.05.20 21:26:06 *.120.143.96
누군가의 책을 3번읽는다면....
이미 그누군가를 뛰어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통섭의 순간은 두번째였고
첫번째는 짝사랑이었다.

햇빛님과 명석님 모두 밝음을 논하시고
영혼의 울림을 서로 주고 받고 하시는가봐요.
저는 쬐금 컨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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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1.06.08 09:08:50 *.108.80.74
짝사랑과 통섭!
어지간한 경험이 없고서는 나올 수 없는 비유가 좋습니다.
초여름의 열기를 맘껏 발산하는 나날 되시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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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06.04 13:28:05 *.10.140.89
서점에서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을 도서관에서 먼저 빌려보다가
정성들여 찾아보니 대한민국 어느땅에 있던 책이 내 차지가 되었습니다.
죽 읽어야 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하나하나 읽어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책은 후자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부탁한 것처럼 내리 읽지 않고
가능하다면 하루에 한 사물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눈알들을 앞에 두고 썼던 시처럼
그이에게는 모든 사물이 말을 거나 봅니다.

좋은 책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휴일 잘 보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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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1.06.08 09:06:06 *.108.80.74
부지런한 독서가를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신나는 일입니다.
햇빛처럼님의 감성에 대한 기대치가 자꾸 높아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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