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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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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1일 14시 08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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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하다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내가 누군가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즉흥적인 대답이 만족스러울 때, 이 뿌듯함은 크게 증폭되어 긍정적인 기억으로 간직된다. 전에 살던 지역에서 조촐한 강연을 할 때였다. ‘글쓰기에의 권유’가 주제인 만큼 내가 글쓰기의 위력에 대해 줄줄이 나열하자, 젊은 남자분이 “그렇다면 중독성이랄지, 글쓰기에의 몰입이 가져오는 폐해는 없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 머리로는 당혹스러움이 스쳐가지만, 이미 입에서는 줄줄이 대답이 흘러 나간다.


“우리가 중독이라고 부르는 게임이나 쇼핑이나 알콜 같은 경우 진입장벽은 낮은데 쾌감이 아주 크지요. 거기에 비하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글쓰기에 중독되려면 상당한 자기훈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에 중독이 되었다면 이미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사소한 폐해보다 엄청나게 클 테니  기꺼이 중독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의를 하다가 조용한 울림에 부딪힐 때가 있다. 위와 같은 자리에서 “우리는 기질에 따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습관이 있다, 유독 슬픈 정조가 많은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험한 일을 많이 겪은 것이 아니라, 기질적으로 슬픈 측면만 쟁여 놓았다고 봐야 한다”는 말을 할 때, 앞 자리에 앉은 여자분의 얼굴에 복잡함이 스쳐 갔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열심히 듣고 있던 분이었는데, 그 순간 그 분의 얼굴에 드리운 감회를 나는 ‘억울함’으로 보았다. 오랜 세월 내가 시달려 온 것의 정체를 뒤미처 알게 된 후의 억울함, 그리고 그것과 겹쳐진 깨달음에 대한 감사를  나는 분명히 보았다.


다른 자리에서는 40대 여자분이 눈물을 주르르 흘린 일도 있다. 글을 쓰는데 대단한 준비나 배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내가 자주 거론하는 시바타 도요나 홍영녀 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였나 보다. 내 이야기가 무언가 그 분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때문이겠지만, 청중의 이런 반응에 접할 때 강사로서의 내 역할에 의미를 두게 된다. 한 번이라도 더 강의안을 다듬고,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드릴 수 있도록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자 애쓰게 된다. 


강의를 하다가 박수를 받을 때도 있다. 오랫동안 내 글을 읽어준 부산의 김*경씨와 친구들을 만나러 부산에 갔을 때였다. 연구원 현역시절부터 내 글을 읽어 주었으니 어언 5년이 넘은 인연이라 김*경씨는 물론 모인 사람들도  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친숙했다. 역시 ‘글쓰기에의 권유’를 주제로 한 자리였는데, 요즘 이 주제로 몇 번 강의를 해서인지 한결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보다는 11명이 모인 단출한 자리였고, 모인 분들에게 내가 발견한 글쓰기의 멋과 힘을 전달하고 싶다는 진정성이 고조된 덕분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잔잔한 교감 속에 글쓰기의 위력을 누누이 설파하고  “그렇기 때문에 제 강좌의 제목은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입니다’하고 말을 마쳤을 때, 느닷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래! 잘 알았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훈련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대가 말한 모든 것에 충분히 동의한다! 나는 그 박수의 의미를 이렇게 받아 들였다. 많지 않은 숫자였지만 그것은 강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었고,  쑥스럽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해서 내 가슴은 근래 보기 드물게 말랑말랑해졌다. 크든 작든 강의는 수업과  달라서, 적절한 시점에 감흥을 고조시켜 박수로써 공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겠구나, 현장에서 혼자 깨우친 강의 팁도 쏠쏠했다.


나는 작가이자  글쓰기 선생이다. 가끔 강연도 한다. 내가 가진 전문성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감사와 인정을 받는 것이 인생 최고의 기쁨임을 속속 알아가고 있다. 글 한 두 편만 보면 그 사람의 글쓰기 단계는 물론, 사고유형까지 보인다. 전에는 글을 고쳐주기가 조심스러웠다. 글에는 그 사람의 사고와 삶이 드러나기에, 글에 대한 언급이 그 사람 자체에 대한 평가라도 되는 양 불편했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편안하게 글을 고쳐 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글이나 그 글에 드러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감정적인 판단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내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전달력도 한층 유연해졌다.  글쓰기강사로서의 전문성을 넘어 나의 포용력 자체가 풍성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크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니 연구원 이후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정도는 미흡했을지 몰라도 언제나 읽고 쓰는 것은  나의 일순위였다. 유명한 ‘10년의 법칙’을 절반 이상 통과했으니 스스로 변화를 느낄 법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할 일은 ‘10년’이 되는 시점을 하나의 정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남은 시간을 나눠 쓰는 것이다. 촌음을 아껴 쓰며 목표달성에 매진하여, 쉰 살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도 10년간 정진하면 원하는 삶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례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와 성장을 꼼꼼하게 기록해 둔다면, 개인적인 의미는 물론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좀 더 강력한 조언을 할 수 있고, '10년의 법칙' 주변부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년이 되는 그 날, 청중의 박수를 넘어 환호를 받는 나를 상상해 본다. 새로운 피를 수혈받은 양 온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글쓰기강좌를 하고 있습니다.

11월 4일부터 10기 강좌가 시작됩니다.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카페 --> http://cafe.naver.com/writingsu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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