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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7일 17시 40분 등록
훌륭한 직업인의 윤리

먼저 이야기를 하나 해 보자. 이야기란 재미있는 것이어서 듣는 사람들이 마음을 풀어 놓게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다.

옛날에 중국의 제나라에 맹상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제나라의 재상이었는데, 사람을 좋아하여 한가지 재주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자신의 집에 식객으로 머물게 했다. 천하의 협객과 무법자들이 다 한가지 재주를 믿고 맹상군의 집으로 찾아들었다. 그 식객들의 수가 3,000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식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돈이 들었다. 맹상군은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별도의 영지를 가지고 있었고, 돈을 불리기 위해 이자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맹상군이 재상의 벼슬에서 쫓겨나자 식객들은 다 뿔뿔히 떠나가고 말았다. 얼마 후 맹상군은 군주의 신임을 다시 받게 되어 재상으로 복귀했다. 그러자 풍환이라는 사람이 맹상군에게 다시 빈객을 맞아들이라고 권했다. 맹상군이 말했다.

“ 나는 사람을 좋아하여 그들을 대접하는데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벼슬에서 물러나자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고 떠나 어려울 때 나를 도와 준 사람이 없었소. 이제 선생의 힘으로 다시 재상이 되었지만, 다른 빈객들은 무슨 낯으로 나를 볼 수 있겠소. 다시 나를 만나려는 자가 있다면 얼굴에 침을 맺어 모욕해 주고 말 것이오.”

그러자 풍환이 절을 하고 달랬다.

“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필연적인 법칙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시장을 보십시오. 아침에는 어깨를 다투어 시장으로 들어서지만 날이 저물면 시장을 떠납니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아침은 좋고 저녁은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는 살 것이 있고 저녁이 되면 파장이 되어 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 간 것은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다시 찾아오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예를 다하여 빈객을 대우하십시오.”

이 말을 듣고 맹상군이 풍환에게 절하며 감사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사마천의 사기열전 ‘맹상군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깨달을 줄 아는 주인과 현명한 참모의 멋진 대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 세상을 사는 훌륭한 지혜를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가 하나 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몰리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이 사람들 관계의 당연한 이치라면, 왜 풍환 같은 사람은 어려울 때 맹상군을 떠나지 않고 그를 도와 줄 수 있었을까 ? 왜 풍환 자신은 세상의 당연한 이치를 따르지 않았을까 ? 맹상군이라는 저녁 시장에 아직 살 것이 남아 있어서 일까 ? 아니면 특별히 의리가 강했거나, 맹상군이 다시 고귀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믿은 자신의 판단을 존중했기 때문일까 ?

알 수 없다. 풍환 자신밖에는 알 수 없는 흘러간 과거의 일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비슷한 사례가 끊없이 우리 삶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풍환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원칙을 따르는 그 3,000 명의 빈객 중의 하나가 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종용한다.

아마 공자 같으면 맹상군이 만약 훌륭한 주군이라면 어려울 때 그를 버리지 말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 사람으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라고 말했을 것이고, 마키아벨리라면 당연히 세상의 법칙을 따라 부유하고 고귀하면 따르고, 빈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버리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현대의 경영 윤리는 어떻게 충고할까 ? 내 생각에 아마 풍환처럼 처신하라고 말 할 것 같다.

맹상군은 공자의 관점에서 볼 때 군자가 아니다. 그는 키가 작고 영리하고 대담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풍환이 그를 처음 만난 장면을 보면 맹상군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당시 가장 잘 나가는 힘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며, 자신의 생각을 받아 줄 수 있는 상사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그는 맹상군을 도와 그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살려 훌륭한 파트너십을 발휘했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성공했다.

이제 현대적인 예로 회계부정과 관련하여 파산보호 신청을 한 광케이블 통신업체인 글로벌 크로싱의 사례를 들어보자. 이 회사의 부사장이었던 사람의 진술에 따르면, 최고 경영진들은 수천명의 직원을 해고시키면서 파산보호신청을 하면 그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직원들은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고위 간부들은 회사를 떠나면서 상당한 퇴직금과 보너스를 챙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행위는 합법적인지 모르지만, 비윤리적인 처사임에 분명했다. 맹상군의 경우와는 반대로 사원들이 배신을 당한 경우다.

누가 누구에게 등을 돌렸던, 우리가 ‘사람들 사이의 마땅한 신뢰 관계’를 의미하는 윤리를 생각하게 될 때, 그 사이에 아주 간단한 방정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이라는 경제적 힘과 지위라는 정치적 힘이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사회적 힘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돈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주도하면 타락한다. 지위가 사람 사이를 주도하면 한 사람은 명령하고 다수는 명에 따르는 종이 된다.

성경에서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잔치는 즐거움을 위해 베푸는 것이며,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한다. 그리고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 ( 전도서 ) ... 공으로 얻은 재산은 날라 가지만, 애써 모은 재산은 불어 난다. (잠언)”

이 두 개의 인용문은 돈에 대한 찬사다. 그리고 돈을 모으는 건강한 치부법의 기본을 말해 준다. 그러나 돈에 대한 성경의 메시지는 상당한 절제를 요구하고 있다.

“너희가 사는 땅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사는 땅에는 너희 동족으로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이 어차피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손을 뻗어 도와주라고 이르는 것이다. (신명기)...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 잡혀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다. (디모데 전서)...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 마태 복음)”

성경에 따르면 부를 추구하는 행위는 사회라는 집단을 활성화하고 융화시키는 경제활동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부의 추구는 도덕성을 희생하여 이루어 낸 사적인 행위임을 가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의 추구를 경제적인 행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대가를 치루고야 얻을 수 있는 개인적 귀결로 보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부를 추구하는 활동이 경제학이 아니라 윤리학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윤리적 행동과 관련하여 그 동안 여러 사례를 통해 검토해 온 생각들을 바탕으로 이제 ‘경영자 혹은 직장인은 모름지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정리해 보자. 기업 경영의 첫 번째 과제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윤리경영이 기업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대단히 긍정적이다.

경영컨설팅업체인 타워스 페린(towers Perrin) 은 윤리경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기업을 매년 25개 씩 뽑아 심층조사를 했다고 한다. 15년 동안 이 기업들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윤리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주주수익률이 43 %인데 반해, S & P 에 등록된 500 개 기업의 평균 주주 수익률은 19 %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직장내 직원 만족도를 조사하는 전문 기관인 워커 인포메이션( Worker Information)사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회사가 윤리경영을 한다고 믿는 경우, 직원이 회사를 떠나지 않는 확율은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6배나 높았다. 반면에 직장 상사의 윤리적 판단을 불신하고 회사의 활동에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에는, 직원 다섯명 중 네 명은 직장에서 기만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조만간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윤리경영은 기업의 명성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 홍보컨설팅 회사인 힐 앤 놀턴 ( Hill & Knowlton)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고객과 투자자의 경우 의사결정을 할 때 기업의 명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인 다섯명 중 네명은 제품을 고를 때 그 제품을 만든 기업의 명성을 고려하며, 이들 중 36%는 구매 결정의 결정적 요인으로 기업의 명성을 꼽았다. 또 70 % 이상의 투자자들은 금융소득이 줄더라도 투자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명성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성과들은 모두 윤리경영 자체가 전략적 관점에서도, 장기적으로 직원이나 고객, 그리고 투자자 모두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윤리경영이 장기적으로 훌륭한 경영 성과에 기여한다는 실용적인 관점 외에도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왜 윤리경영이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자본주의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사회적 신뢰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사회적 신뢰는 비영리적인 활동들에 의해 축적된다.

예를 들어 동구권의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서방 기업들이 이 거대한 예비 시장 속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하고 철수하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곳에는 계약을 준수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동안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존재했던 유일한 사회적 조직은 정치집단 밖에는 없었다. 종교적 활동과 집회는 위축되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인의 모임도 없었다. 같은 생각을 나누는 사회적 공익 집단도 없었고, 어떤 봉사 집단도 없었다.

신뢰를 생산할 수 있는 모임과 활동이 없는 곳에서 사회는 아무런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는 돈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회적 신뢰라는 토양 위에서만 꽃 필 수 있는 나무였다.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는, 아마도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던 체제가 정치적으로 몰락하듯, 역시 스스로를 버티게 해주는 신뢰의 땅을 황폐화시킴으로써 몰락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엔론과 월드컴의 파산은 이것을 증명하는 경고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윤리경영을 준수하기 위해서 윤리경영의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도록 하자. 윤리경영이란 무엇일까 ?

‘영혼이 있는 기업’( Saving the Corporate Soul) 의 저자인 데이비드 벳스톤( David Batstone)은 기업의 윤리 경영에 관한 8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원칙은 보다 간결한 세 가지 핵심적 개념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개인으로서 자신의 이해 관계을 조직의 이해관계와 일치시키는 것이다, 경영자는 경영자대로, 구성원은 구성원대로, 개인적 이해와 조직의 이해를 병존시킬 수 있는 정신적 태도와 방식으로 일을 해야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개인적 이해를 조직의 이해 위에 놓아서도 안되고, 반대로 조직은 그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장기적으로 조직 속에서 희생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번영해야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업은 스스로 시장의 일부가 아닌 좀 더 커다란 지역공동체의 일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땅에서 벌었으니 그 이익을 이 땅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직원은 반드시 먼저 훌륭한 기업시민이어야 한다.

셋째는 기업의 활동에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 즉 직원, 고객, 주주, 관련업체 종사자, 지역주민등에게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 경영 성과에 대한 정보, 환경보호적 정보등 중요한 경영 정보에 대한 투명하고 적절한 공개 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말로 대치되어서는 안된다. 세금을 낸다하여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경영 역시 그 속에 경영의 도를 가지고 있는 어진 상술이어야 한다. 경영모델이 모색되고 온갖 경영적 실험이 행해져야한다. 이것이 혁명적인 세계 속에서 기업이 번성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실험은 반드시 하나의 게임의 원칙, 사회적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윤리 경영은 이 방향으로 기업을 인도하는 등불이고, 경전이며, 행동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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