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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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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3일 15시 19분 등록
4. 나만의 고전 목록-3 좋은 책은 좋은 친구만큼이나 만나기 어렵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건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책의 매력은 그저 읽는 것에만 있지 않다. 책을 고르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곧 도착할 책을 기다리는 것 모두 즐거움이다. '놀이'의 정의가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행하는 모든 활동'이라면 책의 탐색과 발견, 기다림 그리고 읽는 것은 내게 있어 모두 놀이에 해당된다.


[읽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배움.
책을 통해 스스로를 돕는다. 책은 발전을 이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책은 '독자를 돕는 책'이다. '나만의 고전'에 들어갈 수 있는 책은 나를 많이 도와준 책이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지식의 전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단순한 실행지침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돕는다는 의미는 내 본모습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주는 것, 때로는 나를 벼랑 끝까지 몰고가 투철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럼으로써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켜주는 것 바로 이런 것이다.

둘째, 도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을 돕는다. 도움은 내게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돕는 것이 나답다'는 '가치'로써 다가온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배우면서 가르치고 가르치며 배우고 싶다. 나는 배움과 가르침 그리고 도움을 한 가족으로 생각한다. 때로는 따로 떨어져서 가야겠지만 셋이 모여야 가장 힘있고 가족답다. 책을 통해 깨달은 것, 행동을 통해 느낀 것, 실수에서 배운 것 모두가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편협함에 누군가 상처받을 수도 있다. 조심할 부분이다. 시간이 가는 동안 나이만 하나 둘 늘리지는 않으리라. 나의 정신도 시간의 박자에 맞춰 가리라.

셋째, 즐거움.
맞다, 즐거움! 우리는 알고 있다. '즐거움 없는 배움', '즐거움 없는 도움'이 얼마나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것인지를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식욕없는 식사가 건강에 해롭듯이, 의욕이 동반되지 않은 공부는 기억을 해친다'고 했다. 어느 기자가 거스 히딩크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니, '축구와 음악'이란다. 어떻게 취미와 일이 같을 수 있냐고 되물었더니, 자기는 그렇단다. 기자는 의아해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히딩크의 힘을 느낀다. 그는 유쾌하게 웃는다. 나도 함께.


[탐색과 발견]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일종의 '지혜'라고 한다. 그만큼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 '고전 목록'이 짧은 이유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열흘에 한번 정도 '교보문고'에 간다. 신문서평은 도통 믿을 수가 없고, 독자서평마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그리고 책을 직접 쓰다듬고 향을 맡아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책은 제각각 다른 향을 가진다. 못 믿겠다면 한번 맡아보라. 철학, 문학, 역사와 경영, 경제, 컴퓨터 같은 책을 비교해보라. 향이 분명히 다르다. 어떤 책은 어지러울 정도로 향이 짙다. 오경웅의 '선의 황금시대'를 처음 읽을 때 읽기가 거슬릴 정도로 향이 짙었다. 책의 속지에 나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향이 짙은 책, 어지럽다!", 내 것만 그런 것일까. 그대가 그런 경험이 없다면 보여주고 싶다.

한번 교보에 가면 적어도 세 시간은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신문서평에만 의존해서는 쏟아지는 책의 경향을 감지할 수 없다. 아마 신문서평은 출판되는 책의 1/5도 소개하지 못하리라. 교보에서 탐색을 끝내고 이틀이나 삼일 후에 인터넷 서점을 통해 6권에서 8권 정도를 함께 주문한다. 급하게 필요한 책이나 기다릴 수 없는 책은 오프라인에서 바로 구입한다.

출간되는 책의 양은 늘어나는 것 같지만, 좋은 책을 발견하는 빈도는 더 낮아진 것 같다. 오히려 신간보다 오래된 책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전에는 신간서적을 중심으로 읽었지만 이제는 그 비율이 역전되었다. 마찬가지로 전에는 '경영'관련 서적 중심으로 읽었지만, 지금은 1/3 정도로 줄어들었다.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고 사고를 넓히는 데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독서의 초창기에는 자신의 관심분야로 한정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러면서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다. 독서의 범위가 넓어지면 자연히 좋은 책을 만날 가능성도 커진다. 그게 자연스럽다.


[기다림]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사실 조금 지루하다. 성격이 급한 나는 인터넷을 통해 어디까지 왔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다. 그런다고 빨리 오지도 않는데.

자, 드디어 책이 바로 지금 도착했다. 도착한 책을 떨리는 심정으로 포장을 풀고 어루만진다. 이때가 절정이다. 책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이며, 좋은 인연이 되길 기원한다. 책의 향을 확인한다. 탐색할 때의 그 향인가? 조금 약한가? 역시 책마다 틀리구나.

책에 대한 이런 애틋함은 옛사람들이 더했나 보다.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의 저자인 이덕무(李德懋, 1741 - 1793)는 자신을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는 의미)라 여기며 이렇게 적고 있다.

"오로지 책 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전연 알지 못하였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되도록 일찍이 하루도 손에서 옛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 방은 몹시 작았지만 동창과 남창과 서창이 있어 해의 방향에 따라 빛을 받으며 글을 읽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보게 되면 문득 기뻐하며 웃었다. 집 안 사람들은 그가 웃는 것을 보고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

여기서 '그'는 이덕무 자신을 말한다. 책을 좋아하는 선비의 모습이 환히 떠오른다.

허균(許筠)이 정구(鄭逑)에게 빌려간 책의 반납을 독촉하는 편지 한 토막.

"옛 사람은 책을 빌려주면 항상 돌아오는 것이 더디다고 했다지요. 더디다는 것은 1년이나 2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강'(史綱)을 빌려드린 지가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 또한 벼슬길에 뜻을 끊고 강릉으로 돌아가, 이것을 읽으며 무료함을 달래려 합니다. 감히 여쭙습니다."

책 한권이 참 귀중한 시절 이었나보다. 지금은 10년이 지난 책은 돌려줘도 가지라고 할 것인데. 10년이나 돌려주지 않는 책을 독촉하는 편지인데도 예의가 바르다. 체면을 중시하는 형식주의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정과 배려도 느껴진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반환일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비슷했나보다. 그때는 전부가 책이지만 지금은 다수가 비디오테이프라는 것이 다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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