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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6일 17시 49분 등록
어머님이 운영하는 순대국집에, 50대 남녀손님 5명 오다.

잠깐, 본론에 들어가기전, 하나만 이야기하자. 우리집은 내가 어릴때부터 외식업에 종사했다. 난 한번도 어머님이 식당일을 하시는 것에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초등학교때는 친구들이 대놓고 놀리기도 했다.

'신당동 떡볶이촌 갔더니, 너희 엄마가 많이 준다며, 자꾸 부르더라. 귀찮게시리...'

지금도, 대수롭지 않은 일에 삐지는 나지만, 이상하게도 어머님이 식당일하는 것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순대국'이라고 하면, 시장 귀퉁이 노점상을 생각하기 쉽다. 가게를 차릴려면, 보통 직장인들의 퇴직금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순대국집 운영한다고 이야기하면 우습게 알고, 내리깔아 본다.  이런 사람들과, 통큰 치킨 떠들어대는 치들을 보면, 희망을 갖는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이 참 많다는 이야기다.

식당은 여자 주인들이 많다. 우리는 곧잘, 식당에서 '이모'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식당업= 여자의 업'이라는 등식이 있다.  80년대 남편들이 산업전선에서 일하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도 성장기였다. 압축해서 성장해야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많았다. 부작용이란, 산업재해를 말한다. 젊은 가장들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병신이 되었다. 초등학교때, 우리집은 가난해서 아파트 하나를 반으로 쪼개서 두가구가 살았다. 우리 아버지도 산업재해로 장애자였고, 옆방의 순이 아저씨도 산업재해로 팔을 못썼다. 둘은 남아 있는 손 하나로, 소주잔을 들이키며 서로 위로하며 살았다. 아마도 자기 인생이 어떻게 될지 감이 안잡혔기 때문에, 그나마 건강하게 술이라도 마셨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여성들이 산업전선으로 나온다. 물론 남편 자식 내버리고 도망간 여자들도 많다. 우리 어머니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때 내가 너희들 버리고 도망갔으면 어쩔뻔 했겠냐?' 이런 말을 들으면,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냐'고 퉁을 놓치만, 요즘 같아선 100번 도망가고도 남을 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50대 남녀손님 5명이 왁자지껄 5만5천원 정도 드셨다. 다 먹을때 즈음, 한 손님이 자기 점퍼의 털부분이 불에 탔다는 것이다. 자기 예측인즉, 우리 직원이 뜨거운 냄비로 그 털부분을 스쳤기 때문에 탔다는 주장이다.


난, 라이터불로 직접 대고 있어야 까맣게 탄다고 말씀 드렸다. 결코, 냄비 밑바닥으로 간접적으로 그을린 것으로는 타지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 손님은 날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넌 뭐냐?'

'사장인데요'

'허! 사장이 둘이야. 영업 신고증 가지고 와'

손님은 군대고참과 같다. 자신이 맛이 이상하다고 하면, 그런거다. 손님을 이길수가 없다. 돈 안받는 게 상책이다. 경찰이 왔고, 경찰은 상식적인 일에 시비를 가려주지 않고, 합의금 주고 끝내라는 말만 했다. 손님은 명품 점퍼라며 60만원을 불렀고, 그다음 30만원을 불렀으나, 내가 15만원을 찔러주자, 찔러주는 대로 가버렸다. 이 모습을 본 장사 경력 30년의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다. 15만원 벌려면, 6천원짜리 순대국을 몇그릇 팔아야하는가. 게다가 어머니는 나를 원망하셨다. 왜 괜히 나서서 일을 그르치냐고.

나는 두가지를 느꼈다.
1. 살기 싫다는 것이었고,
2. 외식업을 하기는 하겠지만, 외식인의 인생은 걷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데, 분하고 억울하고, 어쩔때는 비폭력적인 나지만, 주탱이 한번 날리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중요한 것은 이런 종류의 일과 사람이 아니라, 이 일이 있고 난다음에 '나에게 일어난 변화'다.

얌전하게 밥만 먹고 가는 손님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


똘아이 손님에게 징하게 당하면, 일반 손님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난 손님이 계산할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돈을 받는다. 정말 감사하다. 똘아이 손님에 비해, 이 분들은 나를 도와주시는 분들이다. 밥집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상황에서 '손님에게, 음식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나를 도와주는 것이다.

난 외식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하는 것을 하면, 제값을 못부른다. 몸은 고달프고, 벌이는 시원치 않을 것이며, 마음도 다친다. 닭집할 때, 어느 애 아버지때문에 써빙을 3번 보았다. 내또래 남자였다. 그는 한번에 시켜도 될 것을, 3번에 나누어서 주문했다. '죄송한데, 김치좀...''죄송한데, 물좀...''죄송한데.....' 주문할 때마다, 나름 깜찍하게 웃으며, 부탁했다. 그 손님의 테이블과 주방까지 거리는  꽤 멀었다. 난 이런 일을 노동의 신성함이라고 생각하고, 투철한 서비스 마인드 훈련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해왔다.

앞으로 이따위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인생에 변화란 언제 올까?
이렇게는 못살겠다'라는 자괴감이 생길때다. 

'이렇게는 못산다.'

IP *.48.10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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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2011.09.26 19:18:36 *.133.97.218
속 많이 상하셨겠습니다.
언젠가 비슷한 느낌으로 쓰셨던 글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닭 먹다가 이가 상했다고 우기는 손님들을 앞에 두고 그것을 참는 방법에 대해,,저들은 저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 라고 맘속으로 곱씹으셨다는..
저도 독립하고 보니 업종은 다르지만 비슷한 고객들이 있습니다.
제안은 제안대로 다 받아놓고 견적도 몇 번이고 할인요청하면서 최종가격이라고 받아둔 후에 그걸 토대로 다른 업체 가격을 후려치는 고객들이지요.
크게 당한 후로 고객의 그릇만큼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몇번의 미팅을 통해 불순한 의도(?)와 불성실함이 전달되는 고객에게는 저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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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1.09.27 10:56:34 *.111.206.9
밥장사가 좀 그렇지요. 때문에 방어적으로 변하고, 성격도 고약해지고.
예전, 이병철 회장이 이런 말 하셨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좌절에 익숙해져야 한다' 

저에게는 속상한 일들이 오히려 득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직원이나 손님에게 실망하지 않으면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 인바운드 여행사 만들려고 준비중입니다. 일본어도 다시 공부하고, 다음달 부터 관광가이드 시험준비합니다. 소매와 인바운드 여행사를 같이 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동안은 형님 말씀대로 소매에 집중하구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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