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를 던진 카이사르는 제국을 원했다. 주사위를 던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로마를 원하는 것과 나로 살기를 원하는 것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두 주사위의 무게는 동등하다. 카이사르가 로마를 차지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1부 나에게 미안해서 프리랜서가 됐다」중에서
만족스러웠던 일,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일. 그게 오히려 떠나려고 할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자꾸 쌓여갔지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일 자체에는 불만이 없고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묘한 논리로 스스로 발목을 묶었다. 떠난 뒤에 돌아보니 모든 건 핑계였다. 천직이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갈 곳이 없어서였다. 꽤 안정적인 직장과 월급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직장을 떠나 생존할 능력이 없기에 자기를 속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비겁했다. 용기는 없었고 생계는 두려웠다.
---「1부 나에게 미안해서 프리랜서가 됐다」중에서
퇴직 이후 누구나 한 번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 문제가 돈, 일, 몸이다. 얽히고설킨 세 가지 고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도달하는 건 삶이라는 큰 매듭이다. 돈, 일, 몸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다. 퇴직자의 고민을 해결하기에 프리랜서는 최적의 교집합을 가진 직종이다.
---「1부 나에게 미안해서 프리랜서가 됐다」중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기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정말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인지,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면 결론이 나온다. … (중략) …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건 의외로 많지 않다는 말이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작하는 게 우선이다. 돈은 발목을 잡는 주범이 아니다.
---「2부 불안하지만 꽤 편안한」중에서
회사를 그만두니 무조건 행복하더라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편안하다고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 편안함 속에 아직은 둥둥 떠 있는 중이다. 다시 직장생활을 한다는 건 행복하지 않아서 뛰쳐나온 곳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격이다.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 (중략) … 직장인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길을 걷고 싶다. 생물학적 나이로 보면 기회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망설일 시간조차 많지 않다.
---「2부 불안하지만 꽤 편안한」중에서
인생이 비루해 보인 건 돈을 기준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돈 따로 인생 따로라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미래의 어느 날, 인생을 최종 결산할 때가 왔을 때,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2부 불안하지만 꽤 편안한」중에서
질문을 던지는 건 나에게 노크를 하는 것이다. 내 삶을 깨우는 것이다. 내 삶을 끌어안는 것이다. 나와 가장 친하지 않은 게 나라는 걸 알았다면, 퇴직이라는 계기는 다시 없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제라도 하나씩 나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에게 노크를 하고 내 삶을 끌어안아야 한다. 내가 가장 친해져야 할 사람은 남이 아니다. 바로 나다.
---「3부 퇴직, 질문이 필요한 시간」중에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선 그 불편한 질문들에 대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별것 아닌 감기에 걸려도 열에 시달리고 온몸이 욱신대는 과정을 거쳐야 건강함을 되찾는다. … (중략) … 살면서 아무 노력도 없이 얻어지는 건 없다. 불편해져야 삶이 자란다. 불편한 질문들을 모른 채 말고 꼭 답해야 한다. 그 대답들은 더 성장하고 더 달라지고 싶은 내 삶의 거름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고 세상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건강한 거름이다.
---「3부 퇴직, 질문이 필요한 시간」중에서
긴 세월을 지나와서야 간신히 자유로움 앞에 섰다. 이제는 내 인생을 내가 끌어간다. 자유라는 말속에 숨겨진 무한대의 책임을 끌어안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어디에 기대지 않는다. 기댈 곳도 없다. 내 발로 내 길을 간다.
---「4부 이제야 내가 되어간다」중에서
안정된 소득의 대가로 남이 시키는 일이나 하는 것보다, 소득은 불안정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쁨이 더 크다. 삶에 가장 큰 활력을 주는 건 자기결정권이다. 자기가 살아갈 삶과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에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방향과 속도를 스스로 결정할 때 의욕도 성취감도 커진다. 하고 싶은 일의 기쁨을 드디어 맛보고 있다.
---「4부 이제야 내가 되어간다」중에서
삶의 의미라는 거, ‘그런 거 없다’에 한 표 건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고민하고 만들어 낸 귀한 한 표다.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기쁘게 평온하게 마음 덜 아프게, 그렇게 사는 게 내 삶의 의미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하루 살기. 가족과 더 편하게 많은 시간 보내기. 쓰고 싶은 주제로 글쓰기. 불편함이 적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기. 맛있는 음식 먹고 웃음 나누기……. 일상에서 벌어지는 그렇고 그런 풍경과 함께하는 ‘살아있음’ 그 자체. 그런 것들이 앞으로 살아가며 내가 만들어 낼 삶의 의미다. 삶의 의미를 찾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내가 기쁜, 내 마음이 평온해지는 하나의 행동이 이미 충분한 의미다.
---「5부 내일은 더 아름다울 나」중에서
하루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건 별것 아닌 것들이다. 세상일에 지쳐 돌아왔을 때 힘이 되어 준 건 포근한 밥상이고 마음을 다쳤을 때 약이 되어 준 건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직업의 옷을 벗고 사회의 짐을 내려놓았을 때 나를 맞아준 건 생활 속의 보이지 않던 기쁨들이었다. 그 작은 기쁨들로 시간을 채우며 산다. 삶을 기분 좋게 해주고 기쁘게 해주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니다. 가치 없어 보였던 작은 것들의 가치를 새롭게 배운다.
---「5부 내일은 더 아름다울 나」중에서
돈이 부족하다는 게 불행인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르지 않을까. 한 사람의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라면, 결말은 누구도 모르고 살아간다.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떤 장면으로 끝이 날지는 본인도 모른다. 그냥 주어진 길을 걸어갈 뿐, 자기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내가 걷고 싶은 길로 날마다 걷는다. 즐겁게 기쁘게 웃으며 걷는다. 내 길을 걷는다는 건,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결말을 내 손으로 쓰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걷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길로,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를 향해서 간다. 내 인생 마지막 도전이 기분 좋게 끝날 것을 믿는다.
---「5부 내일은 더 아름다울 나」중에서
출판사 리뷰
나에게 미안해서 ‘내’가 되기로 했다
“그 나이에 왜? 얼마나 남았다고.”
1년만 더 버티면 자동으로 정년 면직되는 직장 동료. 그런 동료가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지은이 유인창이 사표를 제출했던 당시 가장 많이 들은 말도 위의 예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1년만 더 월급을 받고 정년 면직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니까.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지은이는 월급과 성과급까지 내던지며 퇴사했을까?
1장 〈나에게 미안해서 프리랜서가 됐다〉 편에서, 지은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한 마음가짐과 포부를 밝힌다. 30년 기자 인생을 살면서 미루고 미루었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다. 바로 스스로를 위한 일상, 자기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살아가고자 함이었다. 단순히 ‘직장생활이 질려서’와는 다르다. 그에게 퇴사란 답답한 현실로부터의 도주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한 도전이었다.
마치 카이사르가 로마를 접수하기 위해 군사행동을 결정한 것처럼, 지은이 역시 지금까지의 인생과 과거를 부정하기로 결심하면서까지 새로운 삶을 쟁취하고자 퇴직을 결정했다. 모아놓은 돈도 얼마 없는 주제에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고 허심탄회하게 자조하면서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지은이의 결심에 독자들 역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한다.
불안하지만 꽤 편안한
“퇴직 이후의 삶은 인생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다.”
지은이 유인창은 2부 〈불안하지만 꽤 편안한〉, 3부 〈퇴직, 질문이 필요한 시간〉을 통해 퇴직자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스스럼없이 고백한다.
2부의 제목처럼 재력이 든든하지 않은 퇴직자는 일상에서 늘 불안에 시달린다. 프리랜서로 살게 되자 버는 돈이 줄었고, 이전처럼 벌기 위해서는 몸이 혹사해야 했다. 돈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불규칙하게 바뀐 일상. 이는 퇴직을 결정했거나 앞둔 사람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다.
지은이는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허풍으로 감추지도 않는다. 도리어 진솔하게 어려움을 토로하며 ‘돈이 많았으면…….’이라는 넋두리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지은이는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은 시간과 감정의 자유를 얻고자 안정된 월급을 교환했을 뿐이라고, 그 교환이 꽤 수지가 맞는 장사였다고.
천직이라 생각했던 기자가 되었으나 자긍심이나 뿌듯함은 일찍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관성에 의한 잿빛 일상과 타성에 젖은 빛바랜 마음이다. 그리하여 퇴직했을 때, ‘기자’라는 두 글자를 삶에서 완전히 지웠을 때, 지은이는 잊고 있던 얼굴을 되찾았다. 텅 빈 시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을 채웠고, 그 성찰을 통해 되찾은 것은 다채롭고 풍부한 감정이었다.
아름다운 할아버지가 되는 즐거운 인생 실험
지은이 유인창의 목표는 명확하다. 아름다운 할아버지가 되는 것, 나로 살아가는 인생 실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 4부 〈이제야 내가 되어간다〉와 5부 〈내일은 더 아름다울 나〉는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여정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화를 소개한다.
한평생 살림에 전념한 적이 없던 중년 남성이 요리에 도전하고, 늘 무뚝뚝한 얼굴에 미소를 그려보고, 그간 참기만 했던 취미 생활에 전념해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할 일을 정리하여 하나하나 달성하기도 한다.
꾸밈없이 담백한, 불안하지만 꽤 편안한 인생 이야기. 본인의 삶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그 거짓된 아름다움으로 관심을 끄는 세간의 에세이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의미로서의 ‘에세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