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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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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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3일 14시 03분 등록
오늘 나는 연구원 첫 오프 수업에서 캠벨이 되어 직접 자기 소개를 해보았다. 준비한 원고가 있었지만, 그의 심정에 내가 동화되어 있는지 스스로 알고 싶어서, 갑자기 원고를 보지 않고 캠벨이 된 나를 소개해보기로 했다. 그래, 그것은 내가 적은 원고의 많은 부분이 다른 친구들과 겹쳐서, 색다를 것이 없는 또 하나의 소개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느닷없이 선택한 것이었다. 몇가지 키워드만 적은 노트를 원고 대신 들고 앞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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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캠벨은


나의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그것은 천복을 따라 산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복, 이 단어는 좀 어렵다. 이 말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천복’을 대체할 다른 좋은 단어가 없을까. 아마 ‘끌림’이라는 단어라면 근접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끌림!’, 이라고 머리에 떠올리니 내 생애의 몇 개의 주요 장면이 달려나온다. 한 줄기 빛이, 혹은 뜨거운 불꽃이 가슴 속으로 쑤욱 들어와 자리를 틀게 되는 그런 순간, 그런 순간의 끌림은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다. 그것은 갑자기 다가오는 느낌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운명의 실을 풀어낼 힘’으로 존재하는 어떤 광휘와 만나 공명할 때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강렬한 끌림은 이성보다는 직관을 타고 온다. 나에게 그런 끌림의 첫 순간은 8살 때, 자연사 박물관에서였다.

그랬다. 그것은 참으로 커다란 끌림이었다. 나는 학교 현장 학습으로 간 뉴욕자연사 박물관에서 어느 한 귀퉁이를 돌다가 얼음처럼 그 자리에 서버렸다. 아이들은 이미 저만치 가버렸지만 나는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이태 전에 아버지 손을 잡고 보러 갔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웨스트 와일드 쇼, 그곳에서 보았던, 미합중국 연방기병대들에게 무차별 토벌되던 인디언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자연과 신이 내려주신 생명의 존엄을 지켜내려던 그들의 저항과 그들 눈 속에 어렸던 그 슬픈 위엄이 그 박물관 구석에 자리한 인디언 토템 기둥과 인디언 가면 속에서도 등불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부르는 소리에 끌려 그 가면 앞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그 후 동네 공립박물관 어린이 서가에 있던 인디언 관련 책자는 모두 나의 양식이 되었고, 나는 거부할 수 없는 긴 상념에 자주 빠지곤 하였다. 11살 되던 해, 나의 이런 열심을 눈 여겨 본 도서관 사서는 내가 어른 서가를 출입하도록 특별히 허락해주었다. 그 때부터 내 상념은 더 푸른 날개를 달게 되었다. 그런데 15살 때 우리집에 화재가 났다. 아, 그 화염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발만 동동거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불 속에서 내가 모은 모든 인디언 물건들과 책들이 고스란히 타고 있었다. 내 꿈이 불 속에서 타고 있었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그 다음의 끌림은 대학 4학년 때 찾아왔다. 대학에 들어간 나는 이것저것 많은 것에 거침없이 손을 댔다. 마음이 들면 나는 일단 그 흐름을 따라갔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면 좀 더 오래 머물렀다. 재미를 따라 부담 없이 이 학문 저 학문을 넘나드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생물학과 수학(다트머스 대학)에도 흥미를 느꼈고,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비교문학(콜럼비아 대학 편입)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뉴욕의 마라톤 대표 선수로도 활약을 하였다. 그러다 4학년이 되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였다. 먼저 마음을 끄는 유럽엘 다녀와서 방향을 천천히 정하기로 했다. 유럽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내 눈길을 끄는 무리가 있었다. 그 무리 속에 빛이 나던 한 사람, 그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나와 다른 동양인이었는데도 마치 오래도록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근했고, 그와 나눈 몇 마디 대화는 내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편안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나는 그가 이끄는 선상 명상 모임에 참여했다. 배 안에서 머물렀던 두 주간의 시간은 매우 특별했다. 이 만남이 나를 당장 어떤 길로 인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힌두교와 불교 경전의 가르침은 내 안에 조용하고 은근한 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으며 점차 내 정신의 길을 이끌었다. 3년 후에 떠난 프랑스와 독일 유학 시절에도 학문의 근원적인 질문이 나를 향할 때마다 그의 가르침은 내 옆에 있었다. 그와의 만남은 찰나였지만 그 끌림은 오래 지속되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 어느새 많이 자유해졌다. 그의 사상은 40년에 시작된 하인리히 침머와의 인연으로 내 안에 더욱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침머는 43년 갑자기 사망하기까지 내가 가장 친애하는 스승이요 친구였다. 그의 소개로 융 학파가 주도하는 볼링겐 출판사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침머의 유작들인 ‘인도 예술과 신화’들을 12년간 편집하여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신화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때까지 내가 해온 모든 분야의 공부들이 신화라는 황금어장을 캐는데 모두 동원되었다. 덕분에 영광스럽게도 나의 책 <신화의 이미지>를 볼링겐 시리즈 100권을 마무리하는 기념비적 저작으로 출판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또 하나의 끌림. 나는 독일에서 공부하다가 1929년 월스트리트가 무너지기 3주일 전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일자리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그 시절이 나에게는 가장 멋진 시절로 기억된다. 나는 취직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유럽에서 학제에 따라 공부할 때는 아무래도 제한이 좀 있었다. 시간이 있다면 읽고 싶은 책들을 맘껏 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고맙게도 내게 와 준 것이다. 그 당시 나는 프로베니우스를 발견하고 그의 책을 모두 읽겠다고 결심했다. 책을 살 돈이 없었다. 뉴욕의 서적상에게 내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다행히도 그 서적상은 내가 원하는 책을 모조리 보내주면서 일자리를 구하면 갚으라고 했다. 4년 동안이나 그렇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뉴욕 우드스탁의 아주 멋진 노인 때문이었다. 그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1년에 20달러만 받고 방을 빌려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냥 방에 박혀 책을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단 책은 제대로 된 작가가 쓴 책이어야 한다.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 수준에 이르고 마음이 희열로 덮치는 순간이 온다. 세상이 열리고 일정 관점을 획득하게 되는 순간이다. 프로베니우스로 시작한 책은 점차 신화, 종교, 철학, 문학, 심리학, 예술, 미학에로까지 확장되었고, 학문들의 경계는 내게 무의미해졌다. 내 삶과 의식에도 경계가 없어졌다. 읽는 것이 나의 삶까지 바꾸어 준 것이다. 좁은 오두막은 내게 온 우주였다. 그렇게 읽다 보니 34년에는 어느새 사라 로렌스 대학 정교수가 되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내 인생 최대의 끌림, 사실 여러분에게 가장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신화를 통해 이룬 학문적 위업보다 사실은 이 끌림이 나에게는 더욱 소중하다. 아, 벌써 눈치를 챘는가. 그렇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복, 나의 아내, 오 사랑스런 나의 진, 그녀를 만난 건 내 비교 신화학 강의실에서였다. 당시 미국 현대 무용의 신화를 이룩하고 있던 마샤 그레이엄(아래 소개 참고)의 무용단원으로, 늘씬하고 이쁜, 게다가 지적이기까지 한 그녀가 나의 신화학 강의를 들은 건 행운이었다. 첫 강의,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 짓던 그녀에게서 나는 운명의 강한 끌림을 느꼈다. ‘아, 이 사람은 나와 함께 해야 할 사람이구나’ 직관이 서로에게 해주는 말을 우린 처음부터 듣고 있었다.그 끌림은 그녀와 나를 48년이라는 결혼 생활로 묶어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몸을 다루는 어린 무용가임에도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사랑은 ‘신의 임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은 나와 너를 떠나 우리라는 관계에 서로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개인보다 더 귀한, ‘우리라는 관계’에 우리 두 자신을 복속시켰다. 그건 내가 항상 강조하는 컴패션(com+passion) 정신이다. 컴(함께 하다)과 패션(고통), 즉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이다. 결혼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은 두 사람이 참가하는 엄연한 의례요 약속이다. 결혼에 헌신할 때 정말 멋진 연애가 시작된다.

아, 한 가지, 여러분에게 꼭 밝히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아내와 하와이 원주민 부족 해변가에서 가끔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보름달이 뜨는 날 행하는 우리만의 의식이다. 옷을 벗고 춤을 추는 것이다. 아내는 무용가니까 몸을 나보다 더 잘 다루리라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나도 만만치 않다. 내가 한 때 뉴욕시 대표 마라톤 선수였던 걸 기억해 달라. 춤출 때는 그저 내가 자연과 하나겠거니, 아무도 보지 않겠거니 생각해야 한다. 순식간에 아주 행복해진다. 야자 나무 잎 사이로 교교하게 흐르는 달빛 세례를 받고 있으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된다. 한 번 여러분도 꼭 해보길 바란다. 동네 산 속이라도 좋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다 신의 아이가 만들어질지도…..ㅋㅋㅋ

그리고 나의 장례식, 나와 띠 동갑인 아내가 나 보다 오래 살 것이어서 나는 일찌감치 아내에게 내 장례식에 대해 유언을 해두었다. 나의 영결식은 내 인생의 첫 끌림이 시작된 곳, 뉴욕 자연사박물관 인디언 토템 기둥 아래서 치러질 것이다. 내 장례식은 기쁨의 축제여야 한다. 나는 떠나지만 또한 떠나지 않기에. 씨앗이 땅에 묻히고 그 씨앗들이 곧 곡물로 재생하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 속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축제에는 공연이 빠질 수 없다. 내 친구 미키 하트의 록 그룹 ‘위대한 죽음(Great Dead)’은 오묘한 타악기 연주로 참석한 이들의 오장육부를 통쾌하게 뒤집어 줄 것이고 로버트 블라이의 덜시머(dulcimer:타현악기) 연주는 사람들의 시감(詩感)을 맘껏 깨워줄 것이다. 그리고 내 아내 진은 맨발로 춤을 출 것이다. 그녀의 춤은 내 삶이 충분히 아름다웠다는 것을 온 몸으로 증언할 것이다. 죽음 마저 내게는 아름다운 끌림으로 다가온다.

(1985년, 내가 죽기 이년 전의 모습으로 오늘 여러분들에게 다가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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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의 아내 진 어드만의 무용 스승, 마샤 그레이엄

20세기 초 발레에 반기를 들고 모던 댄스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두 주자를 기억하는가. 이사도라 던컨과 루스 세인트 데니스. 이들의 시대가 저물면서 데니숀 무용학교(루스와 그의 14살 연하 남편 테드 숀이 세운 학교)에서 독립한 제2세대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모던 댄스가 당대를 반영하는 표현예술로 빛을 발하게 된 것은 데니숀의 탁월한 두 제자 마사 그레이엄과 도리아 험프리의 시대부터다. 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존재하는 그 시대를 예술의 주제로 삼았다는 것이다. 발레의 탄생 이후로 춤은 늘 왕자나 공주, 혹은 신들과 요정이 벌이는 사랑과 비극에 탐닉했다. 그것은 그리스로 날아갔던 던컨이나 동양에 심취했던 루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진정한 모더니스트들은 사랑이나 즐거움 뿐 아니라 오히려 분노와 공포, 죽음과 절망 등 인간 내면의 어두움과 추한 것까지도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다. 심리극의 천재라 불린 그레이엄 역시 인간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길 즐겼고, 춤에서 인간의 다양한 유형들을 표현했다. 무엇보다 마사 그레이엄은, 무용이 하나의 진지한 예술임을 인정받게 되면서 20세기 초의 대표적인 무용가로 당대의 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데니숀의 학생이었던 도리스 험프리는 모던댄스를 데니숀의 인위성에서 탈출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춤은 모든 인간에게 잠재된 언어다’ - 험프리

진 어드만, 캠벨의 아내는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 소속 아티스트였다. 그의 스승 그레이엄은 평생 독단적이라 할 만큼 자신의 예술을 고집했고, 그 길을 걸어갔다. 그는 청교도적인 미국 사회에 억압된 욕망을 분출시킨 심리극의 천재였다.(그의 남편은 후대 무용가들에게 나체를 하나의 의상으로 인식시킨 연하의 에릭 호킨스, 이후 그가 떠나자 그레이엄은 그를 잊지 못해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다)

‘나는 발레를 결코 파괴하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단지 내 길을 갔을 뿐이다.’

그레이엄은 50여년 동안 2백편이 넘는 작업을 안무하면서 미국 현대무용의 역사를 이루었다. 진 어드만이 막 그 무용단에 입단한 30-40년대, 그레이엄은 미국문화에 관한 작업을 주로 다루었다. ‘무용은 그것이 뿌리를 둔 한 나라의 정신을 드러낸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었다. 4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그레이엄의 그리스 시기로 불린다. 그녀는 춤을 통해 그리스 신화와 문학 속의 인물들을 재조명했다. 이 시기 작품들은 융의 심리학처럼 인물들의 내면을 분석하는 매우 연극적인 성격을 띤다. 이들 춤에 진이 등장했을 것이고, 진을 통해 그레이엄은 캠벨과도 교류하였을 것이다. 그레이엄은 캠벨과의 교제 중에 신화가 얼마나 훌륭한 영감의 원천인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그레이엄은 87년 캠벨의 장례식에 참가한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특별한 장례식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슬픈 영결식 대신, 최초의 신화적 영감을 얻었던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열린 캠벨의 추모 공연은 그녀에게 매우 인상적이었을 것이다.그래서일까.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했지만 그녀는 91년, 세상을 뜨면서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대신 추모공연을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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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신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미궁 이야기


먼저 신화의 하일라이트를 만나보자.(이야기는 내가 지었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 안전에 나와 앉은 그의 아들 테세우스, 비장하게)
“아버지 제가 가겠습니다. 크레타에 가서 그 미궁(라비린토스)의 괴물을 물리치고, 더 이상 우리의 조국 아테네의 소년소녀들이 그 괴물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막겠습니다.
(아이게우스, 근심어린 표정으로)
“거긴 너무 위험해. 네가 갈 곳이 아니야.”
(테세우스 거의 간청하듯이)
“아버지 절 보내주세요. 가서 크레타 속국으로서의 설움을 꼭 씻고 돌아오겠습니다.”
(아이게우스 단념하듯이)
“그래, 그럼 가거라. 너는 이미 나를 찾아오는 동안 페리페테스, 시니스, 스키론,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악당들을 차례로 처치했으니 미궁의 괴물도 반드시 처치하리라 믿는다. 부디 몸 조심하고 꼭 살아 돌아오거라. 돌아올 때 배에 흰 깃발을 꽂아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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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크레타 궁, 미노스 왕을 알현하고 있는 테세우스, 그에게 미노스가 말한다)
“네가 아테네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로구나. 그래 네가 자청해서 미노타우로스의 제물이 되겠다고! 아이게우스는 늠름한 아들을 두었구먼. 곧 괴물의 밥이 될 테니 내일 하루는 잘 먹고 잘 쉬도록 해라.”
(이때 미노스 왕 옆에 앉아있던 아리아드네 공주, 테세우스에게 맘을 빼앗긴다)
‘아,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 어쩜 저리도 멋있을까. 왜 내 가슴이 이렇게 뛰는거지. 아. 나간다. 따라가 말을 붙여 봐야지.’
“테세우스 왕자님.”
“아, 네. 공주님.”
“미노타우로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예요. 조심해야 합니다. 미궁에 들어가 살아나온 사람은 여직 아무도 없어요. 제가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를 설득해 어떻게든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드릴게요.”
“아리아드네 공주님, 당신은 정말 친절하시군요. 공주님의 마음씨는 저 하늘의 별보다 더 아름다우십니다. 정말 고마워요.”
“그럼 내일, 바로 이 배롱나무 아래서 다시 만나요, 배롱나무 아래입니다, 잊지마세요.”
(하루가 지나고 배롱나무 정원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여기예요, 테세우스 왕자님. 이것을 가져가세요.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칼과 특별한 실타래예요. 입구에 이 실타래를 걸고 계속 풀며 들어갔다가 풀어놓은 실을 잡고 나오세요.”
“아리아드네 공주, 꼭 살아 나올게요. 이제 당신을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꼭요, 절 기다려주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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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온 테세우스, 아리아드네와 감격적인 상봉을 한다)
“아, 공주! 당신 때문에 내가 다시 살아 돌아왔소. 오직 당신, 당신 만을 생각하며 그 무시무시한 시간들을 견뎠다오. 당신은 나의 빛이었소. 청컨대 공주, 내 인생의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시오.”
“왕자님, 살아 돌아오셔서 너무 기뻐요. 당신을 따라 어디든 가겠어요.”
“내일 밤, 달이 서쪽으로 이울면 왕궁 뒤 나룻터로 나오시오. 나와 아테네로 가는 거요.”
(두 사람, 몸이 부스러지듯 안는다)
(하일라이트 장면 여기서 일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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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스토리

먼저 '테세우스' 라는 영웅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테세우스는 아네테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고향에서 자랐다.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커다란 바위 밑에 칼과 신발을 놓아두고 아이가 그 바위를 들어올릴 수 있을 때 자신을 찾아오라고 부탁해두었다. 테세우스는 성장하여 그 칼과 바위 아래 칼과 신발을 찾아 아버지의 나라로 떠났다.

아테네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아버지에게 아들로 인정을 받는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크레타의 왕에게 소년 소녀들을 괴물의 밥으로 바치는 예습이 있었다. 크레타와의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그 괴물은 머리는 소 모양이고 몸은 인간 모양인 미노타우로스였다. 이 괴물은 아주 복잡한 미궁에 살고 있었는데, 최고의 장인 다이달로스가 지은 미궁에 들어가 살아나온 자가 아무도 없었다. 테세우스는 불쌍하게 희생되는 소년소녀들을 위해 스스로 제물을 자청하여 나아간다.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을 만난다. 그 때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 반해 다이달로스를 설득하여 미궁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아낸다. 바로 미궁 앞에 실타래를 걸어놓고 풀어가면서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다시 그 실타래를 따라 나올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다.

다음은 아리아드네 이야기

약간의 배경설명을 먼저 하자면, 그녀의 아버지 미노스(Minos)는 제우스가 황소로 변해 변해 에우로페에게 접근하여 낳은 아들이다. 미노스의 부인이자 아리아드네의 엄마인 '파시파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잘못한 남편 때문에 소를 사랑하는 저주에 걸리게 된다. 여기서 세기의 장인 다이달로스(영어로는 대달로스, 아들은 이카루스)가 등장한다. 왕비를 불쌍히 여긴 다이달로스는 왕비를 위해 어여쁜 소를 만들어주고, 그 안에 들어간 파시파에와 소가 사랑하여 자식을 낳게 되는데 그것이 반인반우인 미노타우로스이다. 미노스는 괴물이자 아들인 미노타우로스를 누구든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미궁, 즉 라비린토스에 가두게 된다.

신화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는 '테세우스'의 아버지의 나라 아테네는 크레타와의 전쟁에서 패해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매년 소녀 7명과 소년 7명을 미궁에 사는 미노타우로스를 위해 조공으로 바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태어나기 전에 헤어진 아버지 아이게우스왕을 찾아 아테네로 갔다가 아버지가 겪는 고통을 알고 자신이 그 괴물을 퇴치해 조국의 고통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소년 소녀 무리에 섞여 크레타로 갔다.

테세우스가 소년과 소녀들 틈에 섞여 크레타에 도착하자, 미노스 왕 앞으로 나갔는데. 마침 그 자리에 동석한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잘생기고 늠름한 모습을 보고 첫 눈에 반해버린다. 실은 아프로디테 여신이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를 사랑하도록 만들어 테세우스를 도와준 것이었다.

아리아드네는 다이달로스를 설득해 미궁을 빠져나올 방법을 알아냈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괴물을 찌를 칼과 미궁에서 빠져나올 실 한 타래를 주었는데,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인 다음, 실타래의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조국과 아비를 배신하고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그러나 아리아드네의 행복은 잠시. 이들은 아테네로 향하는 도중 낙소스 섬에 잠깐 머물게 되는데 그녀가 잠든 사이테세우스는 도망을 친다. 그가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한 이유는 꿈 속에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때 그녀는 테세우스의 아이를 잉태한 상태였다. 자신을 위해 헌신한 아리아드네를 버린 테세우스는 나중에 정치적 목적으로 아리아드네의 동생인 파이드라와 결혼한다.

낙소스 섬은 디오니소스의 성지였다. 아리아드네가 자기 운명을 한탄하고 있을 때 디오니소스는 그녀를 발견하고 위로하며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 버려졌던 아리아드네가 디오니소스신의 아내가 되어 행복한 삶으로 해피엔딩이 되는 끝을 보면, 비록 사랑을 위해 고국을 배신하고 도망쳤지만 결국 버림받는 신세가 되었던 그녀로서는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 이야기

미궁은 다이달로스(‘명장’이라는 뜻)의 작품이다. 다이달로스는 아테네의 전설적인 장인으로누이의 아들을 제자로 받았으나 그이 능력이 자심 보다 뛰어난 것을 질투하여 벼랑에서 밀어 죽여버린다. 이 사건으로 아테네에서 도피하여 크레타로 오게 된다. 미노스는 자신의 괴물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수 있는 미궁을 만들라고 다이달로스에게 명령한다. ‘그 안에서 꿈을 꾸면 꿈에서도 나올 수 없는 곳’이 바로 다이달로스가 만든 크레타의 미궁이다.

테세우스가 탈출하자 열받은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와 아들 이카루스를 미궁에 가둔다.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던 다이달로스는 새의 날개를 만들어 하늘로 날아서 탈출을 시도시도한다. 그는 밀랍과 깃털을 이용하여 자신과 아들을 위한 날개를 만들었다. 그런 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 때문에 날개의 밀랍이 녹고, 낮게 날면 바다의 물보라에 날개가 젖어 무거워진다고 아들에게 주의를 주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오니아 해안 사이를 지날 때, 이카로스는 나는 기쁨에 들떠 흥분한 나머지 너무 높이 올라가고 말았다. 태양열에 날개의 밀랍이 녹으면서 그는 바다에 추락했다. 그 바다는 이카로스의 이름을 따 ‘이카리오스 해’라 불리게 되었다. 슬픔에 젖은 다이달로스는 바다에서 아들의 시체를 건져 매장했다. 이 신화에서 비롯된 '이카로스의 날개' 는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상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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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신화를 택한 이유

현대인들은 모두 미궁을 가슴 안에 담고 산다. 그러면서도 그 미궁을 탈출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아름다운 처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없어서?

본문을 보니 우리를 미궁에서 이끌어줄 실타래는 아주 정성껏 만들어졌다. 그것도 다이달로스에 의해서.

“그는 실타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아마(亞麻)를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들판에서 거두었다. 수세기에 걸친 경작, 수십 년에 걸친 채집, 수많은 가슴과 손의 힘겨운 작업…. 이 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마를 훑고, 간추리고 헝클어진 실무더기에서 실을 자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38 p).

그렇게 정성껏 만든 튼튼한 실타래가 우리 앞에 던져졌다. 이제 미궁으로 들어가면 된다.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다.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된다(39p). 그런데도 우리는 이 모험 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왜 우리는 미궁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는가.

여기 캠벨의 영웅들은 다르다. 어떤 결정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위험이 적은 길을 택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그러나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미궁으로 들어간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그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길을 나설 수 있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천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천복은 그들이 미노타우로스와 맞서 미궁을 탈출해야 할 이유가 되어 준다.

우리 연구원들은 이미 미궁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발견하고 힘든 결정을 내렸다. 들어갔으면 괴물을 물리치고 나와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미노타우로스의 밥이 된다. 우리 안의 미노타우로스는 무엇인가. 각자는 각자가 해결해야할 미노타우로스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누구보다 자신들이 잘 안다.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미궁에서 ‘신’을 발견할 것이고…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무사히 미궁을 탈출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44p)’에 멋진 귀절이 있다. 그것이 나의 설명을 대신해 줄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달라진 건 없다. 그러나 미궁을 탈출한 우리는 더 이상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 ‘공포는 여전히 눈 앞에 있고 고뇌의 울부짖음도 여전히 귀에 들리나 막막한 두려움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고통 받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삶의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복되지 않은 힘의 자각으로 생기를 얻게 되고 보통 때는 가려져 보이지 않던, 생명의 심연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빛이 되어 우리를 비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화는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 신화라는 미궁 속에서 신화가 상징하는 바를 알아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있다. 우리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믿고 미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 미궁의 입구에서 기다리는 아름다운 공주 아리아드네는 미궁 탈출을 시도한 자에게만 의미를 주는 존재다. 우리는 테세우스의 아리아드네가 아닌, '나'의 아리아드네를 만나야 한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바다와 태양의 중간을 날아야 한다.
너무 높이 날아오르지 마라.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기에
네 날개의 밀랍이 녹아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너무 낮게 날지도 마라.
너무 낮게 날면 파도가 날개를 적실거야.”

이카루스의 추락은 흔히 인간 욕망의 무모함을 경계하는 데 인용된다. 사람들이 작은 재주나 능력을 믿고 오만하게 굴거나 자만심 때문에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할 때 이카루스의 추락을 말하곤 한다. 그의 추락은 날개가 잘못된 탓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과욕 때문이고, 통제되지 못한 욕망은 결국 비극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카루스의 추락이 절망적이기만 한 것일까? 오히려 이카루스는 인간에게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인물은 아닐까?

날개가 없는 것은 추락하지 않는다. 비상하려 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추락은 날아올랐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이카루스는 인간에게 이상을 향한 위대한 이륙의 표상이 되었다. 이상을 향해 날아오르는 인간의 날개 짓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한 비상 뒤에는 추락조차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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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09:43:47 *.210.3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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